청년 50만 명이 '그냥 쉬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원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면 우선 청년이 겪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주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동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청년 50만 명이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결과다. 이는 2003년 1월 공식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취업상태나 실업상태가 아닌 비경제활동 인구 중에 육아나 재학 중, 또는 심신장애 등의 사유에도 포함되지 않고, 취업준비나 구직활동 없이 말 그대로 '그냥 쉬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후 청년의 고용상태는 2022년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올해 들어서 악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작년에 신입 채용을 한꺼번에 진행하면서 올해는 경력직 중심의 채용만 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좋은 일자리 수가 줄었고, 직장내 갑질이나 안전 등 노동환경의 취약성 개선은 더딘 점과 산업전환에 대한 로드맵이 흐릿한 점 등 청년이 진로를 결정하고 일자리로 진입하는데 장벽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청년 공공 일자리까지 감소하고 있어 청년층의 활력 저하가 지속될까 우려된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청년층의 취업 빙하기가 20여 년간 지속되었고, 그 결과로 당시 20대였던 청년이 40대가 될 때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일본의 취업빙하기는 단순히 청년 개인의 어려움을 너머 일본 사회 전반의 활력을 저하시켰다. 특히 이 시기 이후 일본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세대의 문제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활력 저하,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심화로 악화되기도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은 취업 빙하기의 상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청년의 활력 문제에는 조기 개입이 필요하고, 사회적 고립 상태에 빠진 청년들에게 작은 성취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 즉 사회적인 쓸모를 느낄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청년이 일자리를 가지 못하고, 진로를 찾지 못하는 문제는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활력과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도 '그냥 쉬었음' 상태의 청년이 50만 명에 육박하는 오늘의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청년희망적금, 저소득 청년 30만명이 해지
저소득 청년 근로자의 자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희망적금'은 연 9%의 금리효과가 있지만, 작년 출시 이후 7개월만에 가입자 286만8000명의 10.%%인 30만1000명이 중도해지했다. 매월 최대 50만 원을 2년간 납입하면 만기에는 원금에 더해 저축장려금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서 가입경쟁이 치열했던 정책이었다. 청년희망적금의 대거 중도해지를 두고, 실제 정책이 필요한 저소득 청년이 월 납입금조차 부담스러워서 해지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금리 인상으로 금융상품 갈아타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동시에 나왔다. 그러나 청년희망적금의 가입조건을 생각해보면 저소득 청년의 주머니 사정이 더 나빠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청년의 자산실태 관련 연구에서 청년의 소득에 비해 부채가 3배 이상 넘는 비율을 살펴보면 청년층 내에서도 주머니 사정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년층의 소득에 따라 5분위로 구분했을 때, 1분위(소득이 낮은) 청년과 4분위(소득이 높은 편) 청년 그룹의 소득대비 부채비 300% 이상인 비율이 각각 27%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1분위 청년은 2019년을 기점으로 높아져 코로나19 이후 실업, 안정적인 일자리 감소 등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4분위 청년은 2020년을 기점으로 높아져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투자열풍의 영향이 이어지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청년은 모두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청년 모두가 '영끌'로 한탕을 노린 것 또한 아니다. '청년이 원하는 정책'에는 청년층 내의 소득과 자산, 지역과 학력, 부모님의 자산과 스펙, 성별 등에서의 격차와 불평등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벌어져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청년팔이는 그만, 기본부터 다시보기
청년의 생애과업인 독립, 소득활동(취업, 창업 등) 그리고 결혼과 출산의 공식이 깨진지 이미 오래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0.78로 역대 최저의 결과를 보인 것도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노동시장을 정규직 트랙과 비정규직/프리랜서 등 불안정 트랙으로 굳어진지 오래되었고, 복지제도는 정규직 트랙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니 비정규 트랙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치솟는 집값으로 청년 10명 중 6명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고, 서른이 넘어서도 독립하기 힘들다. 결혼은 또 어떤가.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혼인 가능성이 1.65배 높고, 첫째 아이 출산율 또한 2배 수준이다. 행정수도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것은 일의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남성의 육아참여가 가능한 공공부문 종사자가 많다는 요인이 크다는 점만 보더라도 초저출산은 단순 결혼 기피 문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청년기본법'이 제정되고, 국가단위 청년정책 기본계획과 지자체 단위 청년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이 겪고 있는 다층적인 문제의 근본에 닿지는 못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지역별 일자리 격차가 더 벌어져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현상의 속도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청년의 수도권 쏠림이 심할수록 청년층 내 일자리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도권 내 거주지 확보 경쟁 또한 치열해진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제외한 괜찮은 일자리가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희망자가 아닌 청년은 생활 기반이 줄어든다. 청년이 원하는 건 과도한 경쟁을 거치지 않더라도 생활이 가능한 일자리와 당장 일을 잃었을 때,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소득과 교육기회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 수 있는 적정한 주거와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 정도의 자기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라도 사회적 성취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100세 시대라는데, 청년 시기에 조금은 더 여유 있게 내일을 그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가는 그저 소박한 청년의 꿈을 다양한 기회로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시작은 '괜찮은 일'과 '일을 찾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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