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수본 등 수사기관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및 생존 피해자 450명의 금융정보를 조회한 일을 두고 유가족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마약수사' 등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별건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희생자와 생존 피해자들의 계좌 및 카드 사용내역을 무더기로 들여다본 것은 합법을 가장한 인권탄압"이라며 "이 일의 지시자가 누군지 밝히고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앞서 지난 1월 금융정보 영장을 발부받아 참사 희생자 158명과 생존자 292명 등 총 450명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 금융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시 검찰에 송치된 송은영 이태원 역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밝히기 위해 금융정보 조회가 필요했다고 밝힌 상태다. 송 역장 송치 후 서울서부지검은 '참사 당일 (피해자들의) 이태원역 이용 사실 및 시간을 확인'하라는 취지의 보완수사를 경찰에 요구했고, 경찰은 이에 따라 금융정보 영장을 발부 받았다. 혐의 쟁점인 '무정차 통과'와 관련하여 역장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선 참사 피해자들이 이태원역을 이용했는지 확인해야 했고, 이를 위해 피해자들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일부 피해자들의 계좌 입출금 내역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영장 범위 바깥의 정보다. 경찰은 '금융기관의 업무상 실수'라는 입장이지만, 이날 유족들은 "법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입출금) 내역이 수사기관에 제공된 것은 명백한 위법상황"이라며 "단순히 실수라는 해명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450명에 달하는 개인의 금융정보를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조회한 일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조회 대상자가 혐의 대상자도 아닌 상태에서 △내역조회를 사전 동의 없이 긴급히 진행할 필요도 없었으며 △450명 개개인의 카드내역이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대책회의 권영국 변호사는 "유동인구의 운집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통계적인 수치가 필요한데, 전체적 카드 내역 조사도 아니고 조사대상을 특정해 내역을 조사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경찰이 발표한 명분과 달리 해당 금융정보 조회 건은 "수사요건에 맞지 않는 수사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서채완 변호사는 "역장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450명에 달하는 이들의 금융정보를 모두 수집하는 것은 (수사과정상의) '필요최소성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된다"라며 "(영장 발부 없이도) 조회대상의 동의를 받으면 정보 수집이 가능한데, 이런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이 개인의 거래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명의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명시(제4조)하고 있으며, 명의인의 사전동의 없이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엔 '법원의 제출명령 또는 영장 발부'를 조건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수사 당시 경찰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금융정보를 조회하는 대신, 영장을 발부받는 우회루트를 '선택'한 셈이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유가족들은 (정보조회에 대한) 그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고, 금융기관에서 날아온 사실통보서 하나만 받았을 뿐이다. 조회 목적도 '범죄수사'라고만 알 수 있었고 누구를, 무엇 때문에, 왜 수사하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라며 "유가족들 입장에선 정부가 피해자들을 '피의자'로 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활동가는 "금융실명법상 (금융정보 영장을 통한 정보조회의 경우) 통보주체가 수사기관이 아닌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정보제공의 자세한 사유를 들을 수 없다. 통신정보 조회의 경우처럼 당사자가 수사기관에 밝히라고 할 수도 없는 구조다"라며 "제도 자체의 허술함도 있지만, 이 허술한 제도를 수사기관이 악용한 것이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인원을 특정해 금융정보를 조회한 이번 경찰의 수사 사례는 그 자체로도 인권침해 우려가 크다. 검사 및 수사업무 종사자의 인권보호 책무를 규정하고 있는 인권보호수사규칙은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을 존중하는 등 2차 피해를 방지할 것(제51조)을 명시하고 있다. 유족들과 대책회의 측은 "수사기관이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이유가 피해자에 대한 별건 수사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권 변호사는 "(마약사범 엄단을 주요 사업으로 정한) 정부가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마약 관련성을 조사하려 했다는 의혹이 이미 여러 차례 알려진 바 있다"라며 "수사기관이 여전히 '피해자들이 마약과 연류됐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그에 대한 수사를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야권과 시민사회 측에선 "성과를 위한 정부의 마약단속 기조가 참사의 직·간접적 영향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인 바 있다. 유족들은 이날 서울서부지검 민원실에 제출한 항의서한에서 "금융거래조회 통지서를 받은 유가족들은 희생자들과 생존 피해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소위 '마약거래수사' 등 개별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별건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해 이러한 의혹들도 조사를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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