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윤석열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노동제 개편안을 두고 "한 세대도 아니고 두 세대 전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69시간제 개편안에 관해 '정부는 이게(69시간제가) 선진국형이라고 주장하는데 맞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그렇게 오래 일하는 선진국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이 같이 지적했다. 장 교수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데, 가장 긴 나라인 멕시코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슬프다"며 "저는 찬성하지 않겠지만 1970년대라면 노동시간 늘리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지금 21세기에 세계에서 한 스무 손가락 안에 꼽히게 잘 사는 나라가 어떻게 노동시간을 늘려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하느냐"고 탄식했다. 장 교수는 "지금은 혁신하고, 기술에 투자하고,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승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금개혁 문제를 두고 장 교수는 "요즘 이대로 가면 30년 후에 고갈된다, 이런 이야들을 하는데, 정부 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연금개혁과 별개로 지금도) 많다"며 "예를 들어 복지제도를 강화해서 출생률을 높이거나, 기술을 더 개발해서 생산성을 높인다든가"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또 "노동인구가 현저히 줄어들어도 인구 일인당 생산성이 엄청나게 올라가면 그걸로 (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며 "그러니 '이러이러한 정책을 써서 그런 일(연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 이런 논의를 해야지, (정부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걸로 가정하고 30년 후에 고갈되니 이렇게 바꾸자, 이거는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가 제시한 가정이 없다면 연금은 더 엄격하게 조절될 수밖에 없다. 장 교수는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남성 30세 이전에 자녀 셋 이상을 둘 경우 병역을 면제하는 제도를 제시한 사례,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늘려준다고 한 사례 등을 들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사회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며 "(저출생 현상) 이게 단순히 소득이 높아져서 이런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보다 소득이 거의 두 배 되는 스웨덴, 덴마크 이런 데 보면 출생률이 1.5명 수준이다. 우리는 0.8도 안 된다(0.78명)"며 "거기는 여러 가지 법과 제도를 통해가지고 여성들이 차별 안 받고 경력 단절 안 받고 애 낳으고 키우고, 한 번 애를 낳으면 1년씩 유급 육아휴직을 받고, 노동시간도 짧아서 애를 키울 시간이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출생률 걱정된다는 정부가 69시간 일하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애 키울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질타했다. 장 교수는 특히 "제일 중요한 건 그런 나라들은 복지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아등바등해가지고 자기가 나서서 돈 잘 안 벌어도 생계가 유지된다"며 "공공주택이나 주택보조금 등이 잘 돼 있고, 육아시설, 교육시설도 다 싸서 그렇게 막 나가서 길게 일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복지 정책으로 현금성 복지냐, 보편복지냐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보편복지가 옳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예로 들어 선택적 복지가 강하면 고소득자는 세금을 내는 만큼 돌려받지 못해 복지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커진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반면 북유럽 국가를 두고 장 교수는 "거기는 세금이 미국보다 훨씬 많은데 국민의 90퍼센트 정도가 지금 내는 세금 수준에 만족한다고들 한다"며 "내는 만큼 (복지 혜택으로) 돌려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교수는 "보편적 복지가 잘 돼야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금을 많이 내는 중산층들도 (제도에 만족해) 복지제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한편 최근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가 재정을 엄격히 제한해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것 역시 강하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저는 참 이해가 안 간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는 재정 상태가 제일 좋은 나라의 하나"라며 "우리나라 국채비율이 40퍼센트를 조금 넘는데, 그걸 갖고 '나라 망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탄식했다. 장 교수는 이어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런 강소국들 정도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30퍼센트대이고 (한국과 같은) 40퍼센트대 되는 나라가 별로 없다"며 "오죽하면 보수적인 OECD도 한국은 재정을 더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하겠느냐"고 답답해 했다. 장 교수는 "물론 장기적으로 빚을 늘려가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써야 한다"며 하지만 한국은 "팬데믹 때도 다른 나라는 GDP의 10퍼센트 수준으로 재정정책을 썼는데,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은 불과 2~3퍼센트 정도밖에 안 썼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돈을 아낀 만큼 한국은 국민의 빚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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