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4월 전 전기·가스 요금 인상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당초 방침을 뒤집고 발표 시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주69시간 근무제' 논란이 일었던 노동시간 개편안에 이어, 숙고 없이 정책 결정을 발표했다 여론 반발이 높아지면 거둬들이는 일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예상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31일 전기·가스요금 당정협의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정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면서도 "다만 인상 시기와 폭에 대해서는 오늘 산업부 측에서 여러 복수안을 제시했는데 어느 것을 선택할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 추이 등 인상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전문가 좌담회 등 여론 수렴을 좀 더 해서 추후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요금을 인상할 경우 국민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와 관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부산 방문 일정 중 기자들과 만나 "한전이 너무 방만하게 운영됐고 엉뚱한 일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우를 범했다"며 "그 책임을 다 국민에게 지우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자체적으로 방만한 곳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한 후에 국민들에게 어떻게 해 달라고 설득하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요금 인상 방안 결정 시기를 정했나라는 질문에 박 의장은 "지금 단계에서는 바로 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했다. 요금 인상 시기가 늦어지면 인상률이 더 오르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박 의장은 "지금 에너지 가격이 하향 추세에 있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앞서 박 의장은 지난 29일 전기·가스요금 당정협의회 당시 "1분기(가 끝나는), 4월 1일까지 정부가 최종안을 마련해 보도록 요구했다"고 했었다. 당시 기자들이 '이틀 만에 방안이 나오겠느냐'며 회의적 전망을 비추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나서서 "부처에서 (준비)해왔다"며 "당에서 요청, 주문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4월 1일 전에 만들겠다"고 거들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대한 이번 당정 간 논의 과정은 앞서 있었던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에 대한 정책결정 과정과 판박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현행 주52시간제를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고 입법예고까지 했으나, 막대한 여론 반발이 일었고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이후 윤 대통령이 "정부가 정책 구상 단계부터 당과 긴밀히 소통해 국민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27일 수석비서관회의), "여론수렴 과정에서 특정 방향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28일 국무회의) 등 당정협의와 여론 수렴을 강화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쏟아냈으나 결국 에너지 요금 인상 관련 조정 과정에서 보이듯 별다른 '약발'이 없는 모양새가 됐다. 한편 당정은 이날 오전 노동시간 개편 관련 당정대(당정+대통령실) 조찬 간담회를 열고 일반 국민 6000여 명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 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조찬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6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국민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도 실시해 여론을 충분히 듣겠다"며 "간담회나 면담 등을 몇 차례 더 계획 중이고, 현장으로 가서 직접 근로자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갖겠다"고 했다. 박 의장은 이 사안에서 역시 "마냥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겠지만 내용들이 완비될 때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신중 검토 기조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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