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초반으로 낮아진 물가, 경기하강, 금융불안 고려해 동결"
9일 <연합뉴스>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1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이 연속 동결을 예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세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상의 명분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일 텐데,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만에 가장 낮은 4.2%로 내려와 인상 압박이 많이 줄었다"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2분기에는 하락 요인이 더 많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후반으로 진입할 것"이라며 "이 경우 금통위는 더 이상 물가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김진욱 씨티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4%에 근접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한은의 적극적 통화정책 필요성을 완화할 것"이라며 동결을 점쳤다. 가라앉는 경기도 기준금리 동결의 공통적 배경으로 꼽혔다. 주 실장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세계 경제 침체를 경고했고, 미국 지표도 그렇다"며 "지금은 경기 침체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이슈로, 금통위가 이를 고려해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오는 5월 내놓을 수정 경제 전망에서 현재 1.6%인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1.0∼1.5%까지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5%에서 3.3∼3.4%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봤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 등으로 고조된 금융위기 가능성도 한은의 추가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조 연구위원은 "글로벌 은행들의 파산으로 신용공급 경색 우려가 커졌고, 국내 금융시장과 자금시장에서 아직 부동산 관련 비은행권의 불안도 해소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연속 동결하면 인상 종결로 봐야…다시 올리면 시장 혼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예상대로 다시 3.50%에서 묶는다면,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최종금리 3.50%에서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앞서 2월 23일 한은은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반 동안 이어온 인상 기조를 깨고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 동결을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달에도 동결이 결정되면 '금리 인상 종결론'이 더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4월 동결 이후 당분간 금리는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현재 기준금리가 이미 중립금리 수준을 웃도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은 완화되고 경기가 둔화 내지 침체 양상을 보이는 만큼 금리 인상 기조는 끝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주 실장도 "이번까지 두 번 연속 동결한 뒤 갑자기 5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면 시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일단 금리 인상기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5월 한 차례 기준금리를 더 올린 뒤 외환시장이나 환율에 큰 문제만 없다면 3.50%가 최종금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경기침체 선제 방어 위해 하반기 금리 낮추기 시작"…8월 인하설도
지난 2월 기준금리 동결 직후 한은 금통위나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질문에 "인하를 논의하기 아직 이르다"고 답했지만, 전문가들과 시장에선 이미 연내 인하를 점치는 견해가 부쩍 늘었다. 이번 설문조사 대상 전문가의 절반가량도 하반기 인하를 예상했다. 주 실장은 "금리 인상기에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먼저 올렸으니, 인하기에도 우리가 먼저 내릴 수 있다"며 "물가 상승률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먼저 안정되는 추세인 만큼, 10월이나 11월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7월께부터 경기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부각될 텐데, 이때부터 금리인하 필요성도 논의될 것"이라며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한은이 8월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하반기 3%대로 떨어지면 금리 인하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의 김 이코노미스트도 올해 8월부터 기준금리가 낮아져 내년 4분기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하 폭은 올해 하반기 0.5%p, 내년 연간 1.0%p로 추정됐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 역시 "4분기에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며 "고금리 여파가 점차 경기 둔화로 나타나는 가운데 물가 상승률이 하락세로 확인되면 4분기 미국 연준과 함께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한미 금리차·환율·유가 등에 따라 5월이후 추가인상 가능성" 분석도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한미 기준금리 격차와 환율 불안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렵고, 오히려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장에서 3.5%로 인상이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데, 시장은 자신들의 희망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올린 뒤 달러 수급 상황이나 물가, 유가 등 변수를 봐가며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단정하기 이르고, 금통위도 이번에 동결을 결정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로 한은은 연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메시지는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물가보다 금리가 낮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상태가 지속되는 만큼 지금 통화 완화 기대를 키우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연구위원도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매우 높은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은은 내년 이후에나 미국의 인하를 지켜본 뒤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한미 금리 격차가 계속 1.5%p 이상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원/달러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연준이 지난달 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를 0.25%p(4.50∼4.75%→4.75∼5.00%) 올리면서, 현재 한국 기준금리(3.50%)는 미국보다 1.50%p 낮은 상태다. 1.50%p는 2000년 10월 1.50%포인트 이후 가장 큰 금리 역전 폭이다. 만약 한은이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5월 연준은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만 밟아도, 미국(5.00∼5.25%)의 기준금리는 한국(3.50%)보다 1.75%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 폭으로서는 새 최대 기록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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