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늦춰지는 사례도 전세사기에 포함할 건가
우선, 특별법상 보증금 미반환 주택의 범위가 너무나 넓다. 임대차관계에서 보증금 문제로 인해 이사 날짜를 맞추느라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상당수 임대인은 다음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전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는 식으로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계약일자에 딱 맞춰서 다음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으면 곤란을 겪게 된다. 이들 모두를 특별법 구제대상으로 봐야 하는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피해자가 된다면 제날짜에 집을 못 빼는 모든 임차인이 피해자가 된다. 보편적인 이런 상황에서 공공이 전세보증금 채권매입에 나선다는 건 불가능하다. 계약 만료 후 임대보증금 미반환시 임차권등기명령, 보증금반환청구소송 등의 구제 절차가 이미 존재한다. 두 번째 문제는 전세보증금 미반환시 국가가 전세채권 공공매입에 나선다면, 도대체 얼마를 기준으로 보증금 채권을 매입할 것이냐다.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무슨 돈으로 얼마에 사라는 거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에 동의한다. 임대차관계에서 임차인과 임대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모두 다르고, 처지와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현실의 가격이란 개별성이 매우 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 인천 미추홀구의 전월세내역을 검색해서 데이터를 내려 보면 동일 건물, 동일 면적에 있는 오피스텔, 다세대주택이라도 전세보증금이 2배, 3배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미추홀구 도화동 **빌라의 30㎡형 전세가격은 같은 기간 5500만 원 2건, 6000만 원 1건, 1억 원 1건이다. **빌라 34㎡의 다세대주택 전세가격은 같은 기간 1억 원 2건, 4000만 원 1건이다. 이들 채권을 얼마에,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법으로 매입할지를 결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별법이 규정하는 바와 같이 보증금의 50퍼센트(%)이든 30%이든 80%이든, 그 어느 비율이든 간에 이 비율을 정하느라 끝없는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일반적인 채권시장에서는 수익과 위험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 하지만 전세시장은 다르다. 전세보증금 채권의 수익과 위험을 분석할만한 데이터가 없고, 적정한 매입가격과 가치를 분석할 수 있는 기관이 전무하다. 전세채권을 담보로 전세자금대출상품을 취급해온 은행마저도 그간 정부보증으로 위험을 모두 회피할 수 있었기에 전세채권의 위험 평가 없이 방만하게 대출을 실행해왔다. 이는 모두 임차인의 부채로 남아 그들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만약 임차인 보호를 목적으로 정부가 전세금채권 100%를 보장한다면, 더 문제가 커진다. 과거 정부가 무방비로 전세자금대출 보증서를 남발한 결과 전세가격이 폭등했던 것처럼, 보증금채권 100%를 국가가 보장해준다면 아마도 전세가격은 더욱 폭등하고 전세사기는 더욱 악성화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원리에 따라 위험이 없으면 가격은 상승하는데, 바로 이 경우다. 정부가 보증금채권을 매입한 데 따른 수익은 민간이, 위험은 공공에 떠넘겨진다. 전세보증보험의 확대가 전세가격을 올리고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임차인 우선매수권은 '빛 좋은 개살구'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임차인의 층위는 매우 다양하다. 일부 또는 전부 보증금 미회수가 예상되는 피해자들 역시 전세보증금을 당장 다 돌려받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위험한 주택에 전세로 들어간 데에는 임차인의 과실도 있다. 매매금액과 전세금액의 차이가 불과 1000~2000만 원에 불과해 위험하지만 전세로 살다가 조금 더 자금을 마련하거나 대출을 받아서 투자가치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안전한 구축 아파트나 빌라보다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깨끗하고 예쁜 주택에 살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들의 잘못이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아파트 중심주의, 주택을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통탄할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고, 임차인이건 임대인이건 우리 모두는 투기판이 되어버린 부동산시장의 현실 앞에 어쩔 수 없는 개인일 뿐임을 강조한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전세사기꾼들은 팔리지 않는 빌라를 전세로 팔았다. 오랜 기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제정 등을 통하여 무주택서민들의 주거생활 안정을 보장하고, 임차권을 보호하며, 임차인의 주거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발전해 왔으나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상이 너무 넓거나, 불분명하거나, 실무적으로 제도가 미비한 특별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당장의 전세사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윤석열 대통령은 경매유예를 지시했으나,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모든 임차인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 임차인은 채권자다. 그러므로 최대한 높은 금액에 누군가가 낙찰을 받고, 자기 몫의 배당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임차인의 상황에 따라서는 신속한 경매 진행이 더 유리한 경우도 있다. 선순위 대항력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임차인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부 채권회수가 가능하다. 선순위 근저당권이 있어 대항력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최우선변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으므로 무일푼으로 집을 나가야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금융기관이 아닌 대부업체 등으로 채권이 매각된 경우는 경매유예를 강제할 수단이 없고, 경매유예가 필요한 경우인지 아닌지를 경매절차에서 판별하기도 어렵다. 정부 여당과 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임차인 우선매수권 특별부여 또한 필요한 사례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본래 경매 절차에서 우선매수권은 공유지분일 경우에 한해 그 중 일부 지분이 경매로 넘어가 최고가 매수신고인에게 낙찰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기존 공유자에게 부여된다. 기존 공유자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혜택이다. 그런데 전세보증금마저 대출로 마련한 임차인의 경우 더는 주택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자금 여력이 없는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우선매수권을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서 임차인에게 부여한들 정작 지원이 필요한 임차인이 아닌, 자금여력이 있는 임차인에게만 실질적 혜택이 집중되는 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자금 여력이 있는 임차인이라면 굳이 경매로 넘어간 그 집을 살 필요도 없다. 다른 한편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임차인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완화해주는 정책 또한 피해자들을 도리어 더 큰 빚의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다.임차인 대신 공공기관에 우선매수권을
공공성과 주거 안정을 도모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공공주택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고려하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경매 절차에서 임차인이 아니라 정부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여 경매 진행 중인 주택을 매입하고, 매입한 주택을 다시 피해자 지원에 사용하는 방안이다. 이는 야당의 특별법이 말하는 공공매입과 다르다. 원희룡 장관은 "주택(물건) 공공매입은 민사법률관계상 그에 대한 매수대금이 선순위채권자에게 가게 돼 있어 돈이 피해자에게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공매입에 선을 그었으나, 지난 22일 입장을 선회하여 LH공사의 매입임대제도를 활용하여 피해주택이 경매에 나오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여 매입하고 이를 다시 피해자 지원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장관의 말처럼 경매절차에서 공공기관이 우선매수권 행사를 통하여 주택을 매입한다면 장점이 많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 주거시설 낙찰가율(감정가격 대비 낙찰가의 비율)은 50%선이다. 전세사기로 경매가 쏟아지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이 국가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서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기 좋은 최적기다. 미추홀구의 경우 기존에 시행되던 매입임대제도를 활용하여 LH공사가 매입한 오피스텔의 2019년도 매입가격은 2억5000만 원에 이른다. 그러나 최근의 낙찰가격은 1억대 초중반이다. 과거 대비 거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는 과거의 높은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하는 감정가보다 낙찰가가 훨씬 떨어진다. 강북 수유팰리스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LH공사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한 것을 두고 원희룡 장관은 "내 돈이면 안 샀다"며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경매 절차를 통하여 관리하기 좋고 양호한 주택, 낙찰가격이 저렴한 주택만을 선별해 국가가 우선매수권을 활용하여 취득한다면 이런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취득한 주택을 당장의 주거지원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직접 제공하면 된다. 피해자는 자신의 보증금은 경매 배당절차를 통해서 일부 회수하고, 피해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주택지원을 받으면 일상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대책으로 임시거처를 제공하고 있지만, 임시거처 활용률이 낮다. 임시거처가 원래의 주거지에서 멀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원 가까이 삭감하여 야당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삭감되기는 했으나, LH공사는 이미 매입임대주택사업을 하고 있다. 야당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확보를 명분으로 하여 예년의 예산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추경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공공이 우선매수권을 인정하는 조항만 손보면 되므로 법령개정 사항도 비교적 간단하고 논란의 소지가 적다. 그리고 경매절차를 유예할 필요도 없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향후 예상되는 미분양 아파트, PF부실 대출로 인한 사업장을 인위적인 가격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경공매절차를 통하여 국가가 저렴한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도 있다. 경공매절차에서 국가가 공공우선매수권을 갖는다면 앞으로도 국가가 부동산을 공공 자산화하고, 토지를 비축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부작용이 크고, 부동산 가격을 오히려 더 폭등시키는 역할을 하는 강제수용 방식의 토지 확보보다는 경공매절차를 통하여 필요한 토지와 부동산을 순차적으로 확보해나간다면 시장에 주는 부작용이 훨씬 적고, 생산과 인구감소의 시대에 적당한 방법이 될 수 있다.정쟁할 시기 아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기는 투자정보가 아니라, 최소한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부동산 지식 교육이 필요하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허황된 욕심에 부동산 업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 자신을 지킬만한 소양과 지식은 갖춰야 한다. 또한 시간과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가더라도 여러 절차를 통해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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