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좋아하고 동료를 아끼던 사람
'나는 말이 좋아서 일합니다' 2018년 5월에 발간한 '고 박경근·이현준 열사 투쟁 백서'(이하 백서)의 제목이다. 박경근이 떠난 지 꼭 1년째 되는 날에 펴냈다. 백서의 첫 장에 쓰인 말은 다음과 같다."자부심을 많이 가졌어요. 걔들은 말을 너무 좋아했어요. '나는 말이 좋아서 일합니다, 행님' 항상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걔들이. 말에 대한 사랑이 좀 많았었어요, 둘 다."
2019년 9월 부산 자택으로 찾아갔을 때 박경근의 어머니 주춘옥 님의 첫마디는 "정의파" 아들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강하면서도 지 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마주나 높은 사람들이 억압하면 끝까지 그 사람들, 약자를 밟는 사람한테는 끝까지 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이 좋아서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했던 그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말관리사로 9~10년이 지난 시점에 '진짜 썩어빠진 마사회'라고 '시궁창처럼 썩었다'고 판단 내렸을까. 무엇을 느꼈기에 입사 13년 만에 '좆 같은 마사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것일까. 그이가 세상을 떠난 것에는 "지보다도 밑의 아이들을 많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의리파" 성정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33조 가면서 팀장을 맡아 가지고. 16조에 있을 땐 일만 하면 됐는데. 미주알고주알 다 아는 기라. 돈을 몇 프로 벌면 이렇다 하는 걸 다 아니까 우리 아들이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는기라. 너무 힘들어 놔노니까 동생들 때문에 조교사한테 가서 이리 해달라 해도 조교사가 듣고 까딱 안 하니까. 우리 아들이 이 길을 선택한 거야."
주춘옥 님은 아들의 사망에는 "내 하나 희생해가지고 동생들만 편안할 수 있으면" 하는 작심이 있었다고 이해한다. 떠나기 며칠 전에도 "엄마, 이 세계가 진짜 더러운 세계라고. 상상도 못 하는 비리가 있고, 상상도 못 하는 썩어빠진 마사회라고. 이 세계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전화했기 때문이다. 팀장과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사건 발생 열흘 전에도 마사회의 문제점을 국회의원에게 유선 상담하기도 했다."외국인들 경마장 안에 많이 있었다. 외국에서 와서 참 불쌍타고. 밥 한 끼도 못 묵고 한다고. 자주 우리 집에 데꼬 왔다. 밥을 내가 해주고. 외국인 아들도 좋다 하고. 엄마 먼 나라에서 와서 참 불쌍해요. 여서는 밥 한 그릇도 똑똑이 못 묵고 외국인이라고 모든 기 차별도 있고. 내 겉은 사람이 요런 사람을 따독거려 주고 따시게 해줘야만이 자기네 나라 가서도 한국이라는 나라 각박한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겠냐고. 엄마 좀 힘이 들겠지만, 따신 밥 한 그릇 해달라고 전화가 오면 성심성의껏. 거기에 있을 때도 지 밑에 있는 동생들도 우리 집에 자주 데꼬 오고. 우리 아들이 김치찌개니 이런 거 밥도 해가고. 같이 동생들하고 안에서 묵그로 자주 해가고."
마사회라는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를 챙기고, 팀원인 말관리사를 동생만큼 아끼고, 집에는 주 2회를 가더라도 말간 근처 다락에서 자면서까지 말을 살피던 박경근이었다. 하지만 발주 훈련이 부족한 첫 출전마가 출발 직전 흥분해서 어깨를 다친 날에도 박경근이 들어야 했던 것은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말 안 다쳤냐,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인간모독이었다. 사망한 박경근을 두고 언론에 흘리는 것 역시도 가정불화로 인한 자살이라는, 의도한 왜곡이었다. 박경근은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위해 남용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 고용이다. 박경근이 떠나던 2017년 5월 기준 마사회의 비정규직 비율은 81.9%였으며 말관리사는 이 통계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2011년 11월에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말관리사가 있었다. 개선이 없는 상황은 연이은 죽음을 불러올 뿐이었다. 2017년 5월 27일 박경근이 떠난 뒤에도 협상은커녕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8월 1일 이현준이 그 뒤를 따르고 보름 뒤에서야 노사가 비로소 합의할 수 있었다."야비한 게 보상을 1억을 주겠다, 초상 치고 나서 다시 합의를 하자고 하더라... 내가 끝까지 85일을 버틴 게 뭔가가 자기들이 반성을 해야는데, 반성을 하는 기미가 없어요. 자기들은 뭐 대단한 그 기고 마필관리사들은 발바닥 때만치도 안 여기고... 마사회 사람이 '자기 아들 냉동실에 여 놓고 그래 '시간 꺾기'하고 싶으냐'고 그 소리도 한 사람도 있다. 내 아들 하나 희생으로써 나는 그 안에 있는 마필관리사들이 편안해질 수만 있으면 시간이 더 10년이 걸린다 해도 같이 한번 싸우고 싶고. 끝까지 자기네들이 잘몬했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난 하고 싶었다."
"방송에 직고용 다 됐다고 해서 진짠 줄 알았지. 헛 뉴스다. 아직까지 관리사들 직고용된 사람 없는 거 같다. 공기업은 베풀어야 한다. 직고용하고 자기들은 배당을 작게 가져가고 관리사들에게 베푸는 게 도리다. 자기 욕심 너무 채리면 안 된다. 해결 어느 정도 된 줄 알았는데 한국마사회 발전할 거 같으면 관리사들 직고용해서 편안하게 일하게끔 하는 게 내 소원"이라던 주춘옥 님. 2019년 9월의 이 같은 바람은 현재형으로 이루어졌을까. 백서에는 마사회 쪽에서 '(조교사)협회 통해 1~2년 진행하다가 무산시키면 안 되겠냐'고 작당 모의한 걸 제보받은 내용이 나온다. 하는 척만 하고 그런 시늉만 하는 본질의 노출인데 2017년 6월의 일이다. "지금은 바뀌려고 하는 시기? 바뀐 것도 아니에요. 언론과 방송을 보면 '우선 조치사항'으로 잘된 거 같지만, 실제로 된 거는 없고. 계속 싸워야 하는 실정이죠." 백서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고, 2018년 3월의 이야기다. 2023년 마사회는 과연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죽음으로 고발하고 떠나간 이들을 딛고 고쳐 바뀐 것은 무엇이고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이제 그 이야기를 나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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