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문제와 단편적인 대책들
언론에 현재까지 거론된 전세사기 대책을 열거하면 전세사기 피해 종합금융지원센터 설치, 전세사기 피해자 저금리 대환대출, 특별법 제정을 통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매주택 우선 매수권 부여 등이다. 기타 대책도 제시됐지만 나머지는 백가쟁명식의 제안수준이다. 정책수립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빠른 대안마련 속도와 대조적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현행 법률과 제도의 틀 안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마련하려다 한계에 부딪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정부 대책이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피해자들에게 다소의 위안을 줬을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피해자를 예방하는 측면에서는 큰 허점을 남겼다. 작년 12월경에 뉴스를 통해 알려진 '빌라왕'에 이어 '건축왕'이 일으킨 전세사기는 앞으로도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청년들이 최우선적으로 바라는 것은 피해의 구제이고, 가해자 엄벌은 다음 순서라고 생각된다. 가장 완벽한 피해의 구제는 '피해 가능성 제로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피해자 구제방안은 단편적인 수준을 넘어 문제의 근본 해결 방법이어야 한다. 인천 건축왕의 피해자 한 분이 남긴 유서 내용인 "뭔가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이게 계기가 돼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대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우선변제 소액임차인의 범위 확대, 전세사기 목적 부동산 경매중단 등도 좋은 아이디어는 맞지만 이들 또한 지금의 전세 보증금 제도를 전제로 한 대안이다. 보증금 백퍼센트인 전세제도의 보증금 비율을 가령 60∼70% 수준으로 강제로 상한을 두는 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를 조속히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언론이 전세사기 가해자들을 범죄자로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법치주의 형사사법 질서 상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우리나라에서 가해자들을 실제로 사기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설사 처벌이 이뤄져도 가해자들의 끈질긴 불복절차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처벌의 완성은 한참 훗날의 문제다. 그날까지 또 다른 새로운 피해자가 계속 생성될 것이고 피해자는 완벽한 보호 없이 대중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건축왕 또는 빌라왕의 주거권(전세보증금) 침해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령(이하 주임법이라고 함)에는 우리나라 '전세 흑역사'가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981년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제정 이유를 "... 무주택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고 임차인의 불편을 해소함은 물론 그 임차권을 보호하여 안정된 임차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택임대차를 규정하는 민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특별법인 주임법이 제정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임대인의 무법행위였다. 임차인의 입장에서 임차권을 위협하는 최우선 상대방은 임대인이었다. 오늘날의 건축왕 내지 빌라왕도 주임법이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무단 임대인'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건축왕 내지 빌라왕은 임대인의 구색만을 갖춘 '껍데기 임대인' 혹은 '가장 임대인'이라는 점이다. 가해자는 주임법과 우리 주거거래 문화의 허점을 파악하고 사기행각을 벌였다. 주임법 제정의 두 번째 이유는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보호를 위해서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얘기지만, 월세 대신 보증금이 백퍼센트인 전세 제도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지금의 전세 보증금 제도가 탄생하고 유지되기까지 그럴만한 배경과 필연적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제도 또한 그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허술해진 제도로 인해 피해자가 양산되고 이러한 현상이 되풀이 된다면 제도 자체를 정비하지 않은 것 자체가 범죄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월세수익을 대신하여 전세보증금을 활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가지 수익적 기능이다. 임대인은 월세 대신 거액의 보증금을 수수해 이를 다른 수익활동의 자본으로 사용하거나 기존 채무를 변제해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임대 목적 주택의 손해 담보적 기능이다. 전세 보증금은 임대기간 만료 후 반환받는 임차목적물인 주택에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담보물의 성격을 갖는다. 전세 보증금은 과거 우리 사회의 신용과 자산이 부족한 시절에 높은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한 임대인과 임차인이 자력적인 방법으로 고안한 사적 금융 수단으로서 그간 유효적절하게 자리 잡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과거와 비교해 우리는 전혀 다른 금융환경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전세 보증금 제도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존재하는 핵심 이유는 기존과 다른 목적 달성에 보증금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전세 보증금은 부동산 투자의 지렛대로 큰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갑자기 우리 사회에 '갭투자'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크지 않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를 활용해 누구든지 적은 돈으로 집을 사서 차액을 남길 수 있었다. 갭투자는 어느덧 부동산 경제용어가 되어버렸다. 초기의 갭 투자는 단순히 일정액의 차익을 실현하는 꼬마 수준 투자였으나, 그 후 점점 진화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었다. 급기야 빌라왕 내지 건축왕의 폐해까지 낳았다. 독감처럼 강한 처방약과 요란한 캠페인을 통해 일정기간 잦아들게 할 수는 있지만, 강조하건데 지금의 보증금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전세 사기 현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속절없이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간 피해자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지금 실천해야 한다. 헐거워진 제도의 나사를 빼고 새로운 제도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 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가 비록 이론적으로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실효적인 전세사기 방지 대안으로 기능은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의 방향
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는 전세 보증금을 강제로 일정비율로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100%인 보증금 비율을 가령 60~70% 수준으로 상한을 정하고, 나머지 30~40%에 해당하는 보증금 부문은 월세로 납부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의 임대차 방식은 전세와 월세로 구분할 수 있다. 보증금 비율에 따라 전세, 반전세, 월세로 나누기도 한다. 보증금 비율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세사기와 같은 보증금 편취 문제는 보증금 제한 비율에 따라 거의 백퍼센트까지 예방할 수 있다. 전세사기의 핵심이 보증금을 떼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떼먹을 보증금이 줄어들면 사기행각을 벌이더라도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로써 바지 집주인인 빌라왕의 깡통전세매물은 시장에서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며 건축왕처럼 주인이 직접 임대인인 경우에도 전세사기 범죄는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최우선변제 임차인의 보증금 확대와 맞물린다면 이 땅에 전세사기는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보증금 비중 상한제 도입에 따른 다른 문제점도 있다. 우선 돈의 흐름이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금융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 보증금은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경우가 상당하다. 2022년 10월 현재 전세자금대출 총액이 134조 원이라는 통계를 예로 들면, 보증금 상한제를 60%로 정할 경우 40%에 해당하는 보증금 53.6조 원은 대출 필요가 없어지고, 그만큼 전세자금대출 수요도 크게 줄어든다. 그 결과 은행의 대출이자 수익은 그만큼 감소할 것이다. 그런데 자본시장에 통화량이 줄어들면 금리 인하 내지 물가 하락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둘째, 당장에는 전세시장 전반에 걸쳐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임대인의 불만(임차인의 경우도 생길 수 있음)도 상당할 수 있다. 정책운영의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유인하기 위해 혼란과 불만을 줄이는 방법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는 일정한 전세 보증금액의 임대차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빌라왕 내지 건축왕의 전세 피해자는 대부분 주거취약계층이다. 충분히 자신의 보증금액을 지켜낼 수 있는 계층에까지 제도를 확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구체적인 보증금의 기준금액은 정책당국의 폭넓은 고려를 통해 결정해야겠으나, 지난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청년 및 주거취약계층의 전세보증금 대출기준을 참고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단, 너무 완벽한 제도를 위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신속한 제도 도입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로서 강제적인 보증금 상한제 적용은 임대차 거래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건축왕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는 계약 갱신 시기에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증금액을 올려주는 바람에 결국 한 푼의 보증금도 보호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계약자유의 원칙 침해여부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현행 주임법에는 보증금의 월세 전환율이 이미 규정되어 보증금의 월세 전환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보증금 상한제 도입은 정책의 결단 문제라고 본다. 보증금은 속성상 어차피 임대차 기간 만료 후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반환해야 할 채무다. 임대인의 채무를 제한하는 취지도 있어 정책 도입의 명분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우려되는 현실적인 문제로서 임대인의 일괄적인 보증금액 상한이 발생할 수 있다. 최고 가격제를 실시하면 암시장이 발생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시장에서 나타나게 된다. 지금처럼 주택시장 하락기에는 우려가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 오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대책으로 주거정책 당국과 지자체의 성실한 역할이 필수적이다. 임대료 5% 초과 인상 금지라는 규정을 적용하면 된다. 임대료 5% 상한제 대상에 보증금도 포함되기 때문에 법적 적용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럼에도 임대인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사전적 계도와 홍보 활동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부동산 보안관제'
전세 보증금 비율 상한제는 금융적인 조치이다. 빌라왕과 건축왕의 문제는 아마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직거래나 일부 악덕 부동산 중개업자가 중개한 사례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오래전에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도둑놈이 결심만 하면 그 어떤 집의 담도 뛰어 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다. 아무리 잘 설계된 제도라도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의 눈에서는 허점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보다 촘촘한 대책이 병행되었으면 한다. 일전에 어느 지역신문에 기고한 바 있는 '부동산 보안관제'를 도입해 주거 취약계층이 계약초기부터 임대차 기간만료 후 퇴거할 때까지 주거복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공인중개사 제도를 통해 국민의 주거임대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부동산 보안관의 1차적 자격은 공인중개사 자격을 갖춘 자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업을 하고 있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제외해야 한다. 부동산 보안관의 신분은 '공무수탁사인'이 된다. 주택 임대차 거래 시 임차인의 입장에서 조력자로서 활동하고 계약기간 중에 발생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관계에서는 조정자로서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사람으로서 업무적 전문성을 갖춘 무보수 명예직으로 이해하면 된다. 많은 국민이 공인중개사에 대해 조금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주요한 원인은 공인중개사 제도를 운용하는 정부부처의 태도에 있다. 부동산 관련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대책에 어김없이 공인중개사 처벌 강화가 들어가는데, 이러한 방법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신사회로 만들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인중개사의 범법행위와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적, 행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장치가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마련되었다. 이제 근본적 해결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본다. 개업공인중개사는 포함되지 않지만, 부동산 보안관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자를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개업공인중개사는 자신의 생업을 위해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어떤 애매한 상황에서 눈앞의 이익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개업하지 않은 공인중개사 자격자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주거문제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조력자로서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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