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마주제와 선진 경마
마사회는 경마 비리가 크게 불거졌던 1992년을 지나서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했다. 사실 1990년에 '이미' 마주제 변경 관련 마사회법을 정비하며 '미리' 준비했던 개인마주제였다. 경마 비리는 단지 구실일 뿐이었다. 개인마주제는 마사회 직원이었던 조교사, 말관리사, 기수를 각각 자영사업자, 비정규 임금 근로자, 독립계약소득자로 분리해 관리하는 얼개로 바꾸어 냈다. 마사회가 막강한 전권을 그대로 행사하는 다단계 착취 속에 책임만을 면피하는 구조를 구축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관계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였다. 마사회는 스스로 경마 산업 관련 시행체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9년 경마기수 실태조사에서 마사회가 기수 운영, 조교사 운영, 마방 운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말에 과반이 넘는 이들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었다. 9점과 8점을 준 35%까지 더하면 90%가 넘는 이들이 말관리사와 기수 위에 조교사, 조교사 위에 마사회가 있음을 인지하고 지적한 것이다. 조교사와 기수의 면허 취득과 갱신에도, 말관리사의 채용에도, 조교사의 마사대부 심의에도, 마주를 포함한 경마 시행 주체 모두의 이현령비현령식 징계에도,… 생존에 직결된 모든 것을 강력한 지배력과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통제하면서도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공공기관이 바로 마사회다. 그중에서도 서울경마공원이나 제주경마공원보다 늦게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시작부터 '선진 경마'라는 죽음의 레이스를 도입한 특징이 있었다. 조교사는 순전히 순위 상금으로 먹고살라며 경쟁만을 부추기는 마사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말관리사와 기수는 조교사의 횡포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구조. 기본급은 적게, 경쟁성 상금은 1위에 편중되게, 고용은 불안정하게, 임금은 불투명하게, 그게 허울좋은 선진 경마의 실상이었다. 말관리사와 기수는 산재 위험을 감수하는 극한의 절벽으로 내몰렸고, 다치며 매달리거나 혹은 죽어서 떨어지거나 해야 했다. 실제 경주 중 낙마로 사망한 기수도 한둘이 아니었다. 마사회 측의 연구보고서(2014)에 따라도 타 산업 평균 재해율과 비교할 때 말관리사의 평균 재해율은 17배, 기수의 평균 재해율은 50배였다. 스러져 간 생명은 '선진 경마'가 사회적 타살 구조임을 온몸으로 입증하고, 마사회가 전국적으로 관철 확산시키려 한, 살인적인 경쟁의 구조를 죽음으로써 막아선 희생이기도 했다. 2020년 5월 기수, 말관리사와 집단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일부러 다리 안 좋은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해서 부러뜨리고 '보험 처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한 '보험 처리'를 면담자 1은 "스트레스"라고 했고, 면담자 2는 "잠이 안 오는 일"이라고 했고, 면담자 3은 낙마의 위험을 감수하며 "목숨 걸고 타는 거"라고 했다. 말의 나이가 4살이 넘으면 보험금도 나오지 않는다니, 그런 '보험 처리' 걱정이 없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4살 넘어가면 "특히 부산경마장 안에는" 정상적인 말들이 없다고 했다. "간단히 얘기해서 젊었을 때 몸을 완전히 혹사시키면 빨리 늙고 빨리 병들고 빨리 죽고. 사람하고 똑같은 거예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엄청나게 강한 훈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죠... 무한경쟁이니까" 노조가 싸워서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바꾸고, 순위에 못 들어도 상금을 나누는 방식을 얻어냈더니 마주에게서 말을 계속 출전시키라는 지시가 들어온다고 했다. 억 단위로 말을 주고 산 마주는 투자한 돈을 빨리 뽑고 싶어 하는 게 생리라고 했다. "더 혹사가 들어가는 거죠. 말이 쉴 시간이 없는 거죠... 역이용되는 거죠. 무조건 돈으로만 적용되니까." 7명의 죽음은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했다. 장애를 입고 울면서 나간 이가 천 명이 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마주제와 선진 경마로는 답이 없다는 말이었다. 말은 말을 하지 못하고 단명할 뿐이고, 사람은 죽어나거나 유서를 쓰고 죽어 나가는, 마사회의 말 경주. 결론은 경쟁이 경마를 박진감 넘치게 하리라는 마사회를 바꾸어야 말은 물론 노동자가,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남은 사람들의 몫
"연차니, 누가 돌아가셨니, 생일이니, 이런 거 저희 한 번도 없었고."
"저는 둘째 낳을 때도 집사람한테 못 갔었어요."
"저는 어머니 환갑자치 간댔다가 욕 바가지를..."
"나는 얘기도 안 했어요... 어머니 칠순이에요."
말관리사들이 2018년 3월에 한 얘기였다. 2020년 1월의 말관리사들은 "눈치를 보며"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 고용불안이 "그나마 조금은" 안정됐다, 조교사가 비속어도 사용하지 않고 "자르겠다"는 협박도 줄었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 외 "바뀐 거 없다. 약속한 부분도 대부분 안 지켜" 문제라는 거였다. 아니 크게 바뀐 것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산재를 은폐해 왔다면 "요즘은 산재나 공상 중에 선택하라고" 여지를 준다는 것이었다. "다쳐도 사람 없으니 일하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오픈이 돼서 그런 부분은 병원 가서 치료하기도 하고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눈물 나는 이야기였다. 2020년 마사회가 양대 노총과 2017년 8월에 체결한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 상황을 점검했었다. 당시 마사회의 의중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상생발전위원회 운영 방식을 들고 싶다. 소통을 위한 자리라지만 브리핑하고 통보만 하고, 듣기 위한 자리라지만 건의해도 수렴과 반영은 하지 않는, 논의도 의결도 결정도 없이 그저 '한다'라는 보여주기와 '연다'라는 생색내기의 위원회였다. 상생의 뜻과 발전의 의지가 없이 하는 척만 하는, 무늬만 상생발전위였다. 작년 11월 문중원 기수 유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경마처장 등 비리에 관련된 책임자들이 처벌은 커녕 여전히 간부인 마사회. 그런 마사회가 올해 2월 각계의 전문가, 경마 참여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한 혁신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30개 혁신과제의 추진 성과를 점검했는데 퇴역 경주마의 복지를 고려하고, 경마 현장 재해율을 감소시키고, 승자독식의 상금구조를 완화하고, 노후한 합숙소를 복지시설로 변모시키겠다는 것이 긍정적이었다. 이로써 마사회 개혁 협의회는 개혁안을 채택하는 임무를 마쳤다. 개혁이행 점검단으로 개혁안의 안착을 위해 상시 가동하는 기간은 생략됐다. 마사회에 실행이라는 몫을, 농림축산식품부에 관리 감독이라는 몫을 남겼다. 그렇지만 '하청에 재하청, 착취에 재착취의 구조로 과연 혁신이라는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문중원 기수의 유서에는 "말들은 주행 습성이란 게 있는데 그 습성에 맞지 않은 작전 지시를 내려서 아예 인기마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많았지. 도대체 누굴 위한 건지..." "레이팅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트린다고 작전 지시부터 아예 대충 타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순위에 들 수 있는 능력 있는 말을 일부러 살살 타도록 해서 승군을 막는 '작전 지시', 3위 대신 4위를 해라, 고의로 하위군으로 가서 그 경주의 순위 상금을 노리라는 '작전 지시'였다. 기수는 말을 훈련하지 못하고 말을 타지 못하면 계약료만 지급받을 뿐이다. 기수는 자신에게 훈련을 맡길지 말지, 출전의 기회를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조교사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된다. 말관리사도 마찬가지로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조교사에게 찍혀선 안 된다. 말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굶기거나 훈련을 고되게 시켜 순위를 바꾸거나, 출주율을 높이기 위해 다리가 아픈 말까지 출전시키라는 지시에도 응해야 한다. "마주들이 친구들을 대동하고 마사에 방문하여 말의 상태, 성적의 전망에 대해 질의를 하고, 또 관리사에게도 베팅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마방을 이끌어야 하는 팀장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은 '말관리사 직접고용구조개선협의체' 회의 의사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사회가 휘두르는 대로, 마주가 요구하는 대로, 조교사가 시키는 대로, 양심에 반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와 부당한 지시는 거부하고 동등하게 상의하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 불법과 부패와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경마가 사라지려면 어느 구조를 선택해야 할까. 직접고용으로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마주 앉는 마사회의 자세가 그 첫 단추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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