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은 북핵 위협에 함께 노출돼있다. 그 어느 때보다 안보협력이 중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워싱턴 선언은 일단 한국과 미국의 양자 간의 베이스로 합의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워싱턴 선언 채택에서 채택된 한미 핵협의그룹(NCG)에 일본도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핵협의그룹 참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면서 미일간에도 "2+2를 포함한 고위급 협의를 통한 일미 간의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일미, 일한, 일한미 간에서 긴밀히 공조해 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이면서도 한미 핵협의그룹에 참여에는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윤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일본도 북핵 고도화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왜 일본은 핵협의그룹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비핵 3원칙과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하순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핵공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자 일본 내에서도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러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28일 일본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핵공유에 대해서는 '비핵 3원칙'과의 관계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로선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비핵 3원칙은 일본이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미 워싱턴 선언에는 미국의 핵탄도미사일잠수함(SSBN)의 기항 등 핵 전략 자산의 전개도 담겨 있다. 일본이 여기에 참여할 경우 비핵 3원칙이 훼손될 수 있는 셈이다. 비핵 3원칙을 강조해온 기시다 정권이 핵협의그룹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비핵 3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해왔다고 볼 수는 없다. 1960년대 후반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비핵 3원칙을 여러 차례 공표하자 미국은 밀약을 요구했었다. "긴급 사태가 생길 경우" 미국 핵무기의 일본 내 재반입을 확약해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또 평시에도 핵무기를 탑재한 미군 함정이 일본에 기항하거나 통과할 때, 미일 양국은 철저하게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처럼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비핵 3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미일동맹 사이에 확장억제와 관련해 어떤 논의가 있는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왔다. 이는 워싱턴 선언처럼 공개적인 방식으로 확장억제 강화를 과시하는 한미동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윤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강조하면서 '빈손 외교' 논란을 잠재우려고 해왔다. 이는 윤 정부가 "사실상의 핵공유"에 매달린 나머지 도청 논란 및 경제 분야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사실상의 핵공유도 아니다"라는 반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반면 기시다 정부는 미국의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까지 포함한 확장억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핵공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전략폭격기-대륙간탄도미사일(SLBM)-핵탄도잠수함 등 원거리 삼축체계를 비롯한 미국의 핵·비핵 군사력이 막강한 만큼, 굳이 미국 핵무기의 일본 내 재반입이나 기항·전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외교에는 공짜가 없다고들 한다. 한국이 이미 강력하게 존재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더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신기루를 좇을수록 우리가 잃게 될 것도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한반도 안팎에선 미국 핵과 북핵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밖에 있는 미국 핵은 신뢰할 수 없다며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수록 신뢰는 겉돌게 되고 실속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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