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태평양 섬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국가들은 기후 위기 대처를 위한 한국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월 26일(현지시각) 피지 수도 수바에 위치한 주피지 대사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난 박영규 주피지 대한민국대사는 태평양 섬 국가들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우선 관심사인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있어 한국이 지원을 확대해 주고, 경제·개발 등 실질 분야에서도 중장기적으로 공고한 협력 기반을 구축하여, 신뢰할 수 있는 역내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대부분 인구 규모가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 정도인 소규모 국가이고, 경제 규모도 크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며 "그래서 이들은 국제사회와 각국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원을 요청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사는 "이 나라들이 기후 변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자력으로는 어려운 것 같다"며 "우리나라는 태평양 도서 국가들에 비하면 기술, 경험, 재정적 측면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피지에서 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 사업 같은 것도 구체적으로 돕고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정부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민간기업 등과 함께 피지의 2개 섬에 태양광발전소를 짓고 있다. 박 대사는 "외딴 섬은 전력이 공급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주로 디젤 발전기를 돌리는데 이게 오염이 상당히 많다"라며 "그래서 태양광으로 바꿔주는 것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나 환경오염을 줄이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는 태양 패널을 조금 높이 설치하고 그 밑에서 농작물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그 땅에서 채소 등을 재배해서 직접 먹을 수도 있고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마셜제도에서는 해수온도차 발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 대사는 "마셜제도 정부가 해수온도차 발전 기술에 관심을 갖고 우리 정부에 지속적으로 사업 지원 요청을 해 온 바 있고 올해 신규사업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태평양 섬 국가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하는 국제박람회기구(BIE)에 태평양 섬 국가 중 10개 나라가 포함돼있는 만큼, 이들의 지지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지의 경우 해당 지역 국가들의 회의체인 태평양 도서국 포럼(Pacific Islands Forum·PIF)의 사무국이 위치해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엑스포 유치 활동과 관련, 피지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는 "엑스포 유치 활동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와 달리 특이한 점은, 정부와 기업이 같이 협력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는 개발협력 등의 규모를 늘리면서 협력 및 지지를 유도하고 있고 삼성이나 SK, LG,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통해 이들 국가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사는 "한국과 피지는 50년 이상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고 한국 정부가 피지 정부 및 국민을 위해 다양한 협력 사업을 이행해 온 우방국"이라며 "피지 정부가 부산박람회 유치를 지지해 주도록 적극 요청하고 있으며,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다퉈 태평양 도서국가 찾는 미국과 중국
한국에게는 당장 엑스포 유치가 중요한 과제지만, 이후에도 태평양 섬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지정학적 위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등을 고려했을 때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일례로 중국과 솔로몬제도는 지난해 4월 19일 안보협정을 체결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솔로몬 제도에 대사관을 다시 여는 등 태평양 섬 국가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박 대사는 "태평양 지역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의 경우 태평양 지역에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해군·공군 기지를 두고 운영하고 있고 태평양 항로는 3대 주요 교역 항로 중 하나로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의 주요 해상 무역통로"라며 "중국 또한 지난 수십 년 간 태평양지역을 전략적 협력대상으로 인식하고 우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솔로몬제도와는 작년에 안보협력협정을 체결하는 등 태평양 진출을 더욱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태평양의 풍부한 해양수산 자원 또한 중요한 요소"라며 "14개 태평양 도서국가들은 인구와 영토는 작지만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유하고 있고, 이 지역의 참치 어획량은 전 세계의 60~70%를 차지하며, 심해광물도 잠재적 경제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고 전했다. 박 대사는 "14개 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유엔에서 군소도서개발도상국(SIDS) 그룹을 형성하고, 유엔 아시아태평양 그룹(총 54개국)에서 4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한다"며 "투표로 결정되는 사안이 많은 국제무대에서, 태평양 도서 국가들이 행사할 수 있는 수적 영향력 또한 크다"고 말했다. 일본도 태평양 섬 국가들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 대사는 "일본은 역사적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에서 전쟁을 많이 했고,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이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관계가 있다"며 "과거 2차 대전에서 했던 여러 행동들에 대해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태평양 섬 국가들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파퓨아뉴기니와 피지에 대사관이 있고 이들 국가의 대사관이 나머지 나라들의 업무까지 함께 관할하고 있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외교 활동에 다소 제약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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