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죽음에만 반응하는 세상?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은 주로 2000년대 이후, 현장실습생이 일하다가 죽고 다치는 사건들이 조명되고, 청소년인권운동이 대두하며 전교조나 인권단체 등에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슈화됐다. 지금까지 현장실습 제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안전 및 노동 조건에 관하여 규제 강화와 완화 사이를 오락가락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 사건 등이 발생하고 문제가 제기되면 규제를 강화했다가, 이로 인해 현장실습 사업체와 인원이 줄어들면 다시 규제를 완화하여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의 반복이었다."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의 제도 변화에는 매번 '취업률'이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실증적인 분석에서는 현장 실습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 변화 후에는 실습 사업체의 질이 뚜렷하게 낮아졌음이 확인된다. 취업률과 사업체의 질(결국 노동의 질)은 반비례 관계에 놓여 있다."(강문식, '취업률과 노동의 질 사이 상보성을 넘어', <오늘의 교육> 61호, 2021년 3·4월)
말하자면 현장실습의 규모를 늘리고 취업률을 높일 것이냐, 현장실습에서 안전과 양질의 노동 조건을 보장할 것이냐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해온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정책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오직 현장실습생의 '죽음'에만 반응하고 문제를 시혜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죽는 일이 일어나면 이목이 집중되고 '어린 학생이 죽게 해선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면 적어도 사망 사고는 나지 않도록 안전을 위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대학도 못 간' 중졸·고졸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삶의 문제에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불평등, 졸업 후 노동 현실도 그리 개선되지 않는다. 죽는 일만 일어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취업 기회 확대를 바라는 학생들의 요구와 값싼 인력을 원하는 기업의 요구가 만나 다시 규제가 완화된다. 그리고 또 누군가 죽게 된다.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만, 그 사건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더욱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를 논의하고 풀어나가야 한다.'안전한 현장실습을 통한 취업 기회 확대'는 불가능하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현장실습 제도는 비록 "실습"이란 팻말을 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교육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산업 현장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 역시 현장실습을 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기 취업 내지는 취업의 전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수년 전 현장실습 제도 폐지가 추진되자 일각의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반발했던 이유 역시 주로 취업 기회의 축소를 우려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안전하고 좋은 현장실습'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앞서 소개했듯, 취업률과 노동의 질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경향을 보인다. 만일 좋은 노동 조건의 일자리에서만 현장실습을 하게 하면 현장실습·취업 기회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값싸고 쉽게 자를 수 있는 인력이 아니라면 굳이 취업에 연계해 현장실습생을 받을 이유가 별로 없다. 따라서 '안전하고 좋은 노동 조건의 현장실습, 그리고 이를 통한 취업 기회의 확대'는 달성 불가능하다. 현장실습을 하는 학생들 중 일부에게 좋은 노동 조건과 노동 경험을 보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수만 명에게 확대할 수는 없다. 현장실습 제도의 부분적 개선이 아닌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또한, 현장실습생의 여건 자체가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산재 사고는 여러 일터에서 여러 지위의 노동자들에게 발생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파견·하청 노동자 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산재에 노출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터에 강한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 노동자일수록, 규정을 무시하고 위험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등의 노동 형태는 산재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현장실습생은 여러모로 이런 불안정한 노동 유형들과 닮아 있다(비정규직 고용 등이 제한되면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는 주장마저 유사하다). 학생인지 노동자인지도 애매모호하게 되어 있고, 배우는 입장, 나이와 학력·경력 등에서 열위란 이유로 아랫사람 대우를 받게 되기도 쉽다. 무엇보다도 실습이 학교 및 채용과 연계되어 있기에, 실습생 입장에선 학교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기업의 부당한 지시나 요구도 감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갑을관계가 형성되면, 아무리 법규를 만들어도 그것이 일터에서 실제로 적용되기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현장실습 제도가 사망 사고나 산재의 직접적 원인은 아닐지라도, 취업과 연결된 현장실습 제도는 노동 조건과 안전에 부정적 배경으로서 작동하기에 개혁이 필요하다.학력 차별 금지와 생활의 보장이 대안이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통계적으로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열악한 비율이 높고,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하루빨리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경제 주체가 되어 노동하고 소득을 갖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취업에 급급할수록 기업과의 관계에선 '을'이 되기 십상이고, 노동 조건도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현장실습 제도의 목표가 취업이어선 안 된다. 취업을 시키는 것이 학교의 일이 될 수도 없다. 마치 학생들을 더 상위의 대학 입시에 합격시키는 것이 학교의 일이 되어선 안 되듯이 말이다. 직업계고를 평가하는 요소로 취업률이 활용되자,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학교가 학생들에게 질 낮은 일자리에도 현장실습을 나가게 하며 참고 버티라고 압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입시 결과를 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힘든 수험 생활을 버티라고 하는 인문계고의 현실이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위해 압박을 가하는 것도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이다. 특성화고들도 '우리 학교에만 들어오면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 '취업률이 높다'라고 홍보하는 일을 그만두고, 교육의 목표를 되돌아봐야 마땅하다. 사실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실습을 할 거라면, 학교의 감독 속에 교육 활동으로서 이루어져야 옳을 것이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으로부터 취업을 원한다면, 실습이 아니라 취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간 정부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직업계고를 나온 청소년들의 생활과 취업을 지원할 궁리를 하기보단,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하며 좋지 못한 노동 조건의 기업들도 현장실습을 하도록 권해왔다.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서 노동을 시작하도록 몰아가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려는 속내는 없었는지 의심스럽다. 나아가 우리는 직업계고를 나온 청소년들이 어째서 현장실습 등 취업의 기회에 목매게 되는지근본적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서 직업계고를 천시하고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실 탓이다. 대기업-정규직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안정적 삶이 보장되지 않고 차별과 불평등이 극심한 노동 구조 때문이다. 졸업 직후에 취업하지 못하면 구직의 기회가 대폭 줄어드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인정 않는 문화와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실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력 차별을 금지하여 기본적으로 모든 일자리를 고졸, 아니, '학력 무관'의 일자리로 만들어 가야 한다. 취업이 곧바로 안 되더라도 삶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익을 주장하고 단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청소년·청년들이 취업 기회를 바라보며 위험하고 부당한 일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도록 환경과 조건을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현장실습 폐지에 따른 적절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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