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총인구는 2004년 200만 명대, 2017년 190만 명대가 무너졌다. 2022년 말 기준 전라남도의 총 인구는 181만 명으로 조만간 180만 명대도 붕괴될 전망이다. 20년 새 20만 명이 줄었다. 인구지표의 중요도를 감안한다면, 이른바 인구절벽 혹은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는 당연하다. 요컨대 인구문제는 지역 현안 중 중요도와 시급성에서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산술적 인구감소는 생산가능인구 급감과 초고령화로 이어지며 지역 생존을 걱정하게 만든다. 지난 10여 년간 인구 문제는 국가와 지역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각종 출산율 회복 대책과 함께 출산장려정책은 국정과제의 단골메뉴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벌써 4차 계획까지 수립되었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중앙부처에 인구 관련 부서를 설치했다. 지방정부도 인구, 청년 명칭을 한 부서를 신설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투자사업 도입과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뒷받침도 있었다. 인구정책 관점도 생겨났다. 자연인구, 사회인구, 상주인구 등 기존 용어에 관계인구,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관점도 등장했다. 고향사랑기부제, 워케이션, 스케이션 등 인구 관련 새로운 트렌드도 등장했다. 지방소멸은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토론회의 단골 주제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지역 인구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시원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당사자인 지방정부는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전라남도의 경우, 지방소멸지수 등장 이전에 이미 읍면동 단위 총인구, 가임여성인구, 노령인구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2017년 이후 인구정책 종합계획을 수립·운영했고,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전남청년 내일로·마을로 등 인구 브랜드 시책을 도입했다. 또 경북과 함께 지방소멸대응위기지역지원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지역비자 신설 등 전남형 이민정책을 모색하는 한편 인구 관련 메가 프로젝트 발굴에 나섰다. 그렇다면 여태 정부의 인구정책은 실효성이 있었을까. 기존 저출산·고령화 대응정책의 틀을 벗어났을까. 기술혁신 등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정부정책과 사업은 헛다리를 짚은 게 아닐까. 지금까지 다양한 사업을 도입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면, 우리의 사고와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요컨대 정부의 획일적 사고로는 지역 문제를 이해하지도 풀어내지도 못한다. 우선 중앙과 지방정부는 '인구 문제'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문제는 난제(wicked problem)이다. 특성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접근방식은 많은 사업과 재정을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수백 조 재정투입 대비 사업의 효과성을 따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여러 면에서 확실한 정부실패 사례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부처합동이라는 추진 주체를 방패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정부의 인구정책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지역을 모른다는데 있다. 획일적으로 지역을 구분하고 같은 그룹에 같은 정책과 사업을 강제해왔다. 도시와 농어촌이 다르고, 읍과 면의 조건이 다르지만, 같다는 것을 전제로 공식을 만들어 시행했다. 경기도의 농촌과 전라남도의 농촌이 결코 같을 수 없다. 지역을 잘 안다는 엘리트 의식과 태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망쳐왔다. 부처별로 사업을 설계하고 평가체계를 만들어 지자체 제안서 평가를 바탕으로 재정을 차별화하는 방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투자사업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동시에 지역단위 인구정책을 도입해야하는 이유다. 인구관점은 다양한 사고의 도입과 활용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복지 관점을 넘어 인구통계, 여성주의, 산업, 지역개발, 행정관리 등 여러 접근방법을 시도했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정책은 사회복지 관점을 중심으로 백화점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최근 인구통계적 관점에서 지방소멸의 위기를 경고하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출산장려 차원에서 출산지도 제작을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은 사례도 있었다. 이제 출산보다는 출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지역 정치인은 여전히 투자와 기업유치를 외치고, 이를 위해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을 주문한다. 문제인식의 프레임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데이비드 존 파머(David John Farmer)라는 미국의 행정학자는 행정에 다양한 관점(perspective)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기업, 경제, 정치, 비판이론, 포스트구조주의, 정신분석, 신경과학, 페미니즘, 윤리, 데이터 등 다양한 관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종합화하는 사고실험을 통해 문제 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구문제도 지역현실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구정책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 수십 개, 수백 개 사업 발굴보다도 더 중요한 선행과제다. 며칠 전 어느 지자체가 주관한 인구 관련 토론회에 다녀왔다. 주거, 출산·보육·다문화, 일자리, 관광·문화·복지, 교육, 투자 등 영역별로 다양한 제안이 있었다. 동시에 태아보험료, 안심출산, 자립준비청년, (부부) 불금데이 등 각종 지원방안도 나왔다. 자녀 1인당 1억 원 지원(매년 500만 원씩 20년 지원)이라는 파격적 주장도 있었다. 최근 전남 화순에서 실시하고 있는 만원 아파트도 화제였다. 심지어 허경영, 지난 대선후보의 이름이 거론됐다. 허경영 후보가 주장한 내용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 인구 문제 관련 획기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그동안 지역 인구 문제를 연구하면서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에 '귀의'했다. 인구 문제는 과학적, 전문가적 사고로는 풀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인구 문제는 지역에서 실험과 배움의 대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구정책은 다양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현장에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협력과정이다. 사전에 특단의 대책이나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구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은 현장에서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많은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현장의 관점에서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두 가지 문제 해결방식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검토해 특정 문제상황에 사용할 때 대안들이 많아진다. 중앙의 시각, 지식의 위치서 최선의 해결책을 전제한 기존의 접근은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현장에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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