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서 나온 기괴한 개념의 조합
소통의 기본은 명료성이다. 명료성을 가지려면 문장 안에 어울리는 단어와 개념이 필수적이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논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기이한 개념의 조합을 보았다. 내용은 좀 길지만, 단순하게 표현하면 '사회서비스의 산업화'이다. 사회서비스는 최근 부각된 돌봄의 이슈와 함께 종종 접하는 용어이고, 산업화라는 용어 역시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그런데 사회서비스와 산업화를 붙여놓으니 기이함을 넘어서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손쉽게 자주 쓰는 인터넷 포털에 사회서비스란 용어를 검색해보면 '사회서비스는 개인 또는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두산백과, 네이버 검색). 중요한 것은 서비스 수혜자의 삶의 질 향상이며, 사회성이라는 개념이다. 산업화를 찾아보면 '국가경제의 부가가치 생산과 취업인구에서 2차 산업의 비중이 1차 산업을 능가하는 산업구조의 변동과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검색). 한편 산업화는 물질적 성장 및 사회구조를 바꾸는 역사적 전환과정이지만, 노동소외나 만성적 실업, 불평등이나 공동체 규범의 해체, 범죄 등의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 것으로 부연되어 있다. 이 정도만 검색해 보아도 기괴하게 느꼈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회서비스를 산업화 시켜 경제를 활성화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발상은 서비스 부문을 강조하는 탈산업사회의 관점에서 '사회'를 제외한 채 서비스만 바라본 것이고, 산업화라는 용어에 달라붙어 있는 경제성장의 신화만 계산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시장', '경쟁'이라는 용어가 동일 선상에서 강조되었기 때문이다.이미 산업화 된 한국의 사회서비스
4년에 한 번 전국의 각 지자체는 지역사회보장계획을 수립한다. 향후 4년간 해당 지자체의 사회보장과 관련된 계획을 수립하고 모니터링에 대한 부분까지 제시하는 중요한 중장기 계획이다. 지역사회보장계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지역주민 욕구조사 이다.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노인돌봄'과 '고용'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단연 높다. 돌봄이 사회서비스의 핵심 영역이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며 서비스업이 증대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고용을 동시에 해결하는 사회서비스의 역할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서비스를 더욱 시장화하고 나아가 산업화 하겠다는 발상이라면, 이는 대단한 오해이자 무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대단한 오해인가? 첫 번째로 한국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오해이다. 사회서비스 영역과 관련된 자료를 조금이라도 검색해본다면,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산업화 관점에서 사회서비스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보면, 마치 그간 산업화 시도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산업화의 기조 아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양산해온 것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바로 현재 겪고 있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질 저하이다. 이미 직간접적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단기간에 확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온 정책적 기조를 생각해보면 다시금 산업화 하여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이상하다. 이미 산업화의 길을 걸어온 한국의 사회서비스 현장은 춥고 아프다. 양적 규모의 성장에 따라 질적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서울시 공공돌봄의 나아갈 길' 토론에서 발표된 양난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돌봄서비스에 근무하는 종사자의 월 평균임금은 2021년 기준 169.4만 원으로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282만 원의 60%에 불과하다. 또한 신영민·김태일(2022)의 연구에서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과 한국을 비교해보았을 때 돌봄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았고, 근속연수는 오히려 가장 짧았다.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시간당 임금은 절반 수준이다 보니 그간의 사회서비스 산업화에 대한 반성과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회서비스를 산업화를 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를 가고자 함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두 번째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성격과 속성에 대한 오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6~2019년 사회서비스 산업의 사업체 수는 21만 5000개에서 23만 2000개로 7.9% 증가하였고, 종사자 수 역시 346만 1000명에서 390만 6000명으로 12.8% 증가하였다(안수란 외, 2021). 이러한 증가세는 이미 충분히 산업화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종사자 규모별로는 1~4인, 5~9인의 사업체 비율이 높았다. 이러한 소규모 사업체는 개인 사업체로써, 전체 규모 중 무려 63%에 달하는 비중이다.사람에 투자하는 산업화는 꿈일까?
사회서비스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얻는 것은 너무도 아름답고 이상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에 투자해야 하는가? 서비스 제공자도 사람이고 수혜자도 사람이니 사람에 투자하여야 하고, 서비스 종사자들이 일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사회적 인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공공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이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사회 전반에 얽히고설킨 문제로써 단순하게 산업화가 곧 경제적 성장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잘못된 공식에 기반하여 선언적으로 쏟아낼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길을 걸어온 선진 복지국가들은 사회서비스를 기반으로 하여 재도약의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실상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구체적이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가 급한 시대에 전망이 밝은 영역을 발굴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장려하여야 할 일이다. 그러나 왜 하필 사회서비스인가. 산업화의 부작용을 고치고 싸매도 모자랄 판에 돈이 될 것으로 보고 덥석 무는 것으로 보일 뿐, 어떠한 고민도 지향도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사회서비스는 돈이 되어야 할 영역도 아니다. 무엇이든 경제적인 잣대로 계산하여 오로지 숫자와 물질적인 수준으로 설명되는 나라는, 국가라는 복잡다단한 조직체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그간의 방향성을 되짚어보고 다시 시작하여야 할 때이다. 진정으로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서비스가 되려면 산업화, 시장화, 경쟁과 같은 단어는 오히려 퇴출 되어야 할 언어이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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