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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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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너무 힘들어요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안녕하세요. 진료실 안팎에서 아픈 분들을 만나고 있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입니다. 오늘은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방문진료를 다녀보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가족들이나 요양보호사들이 돌보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됩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홀로 돌보는 어르신, 와상 노모를 20년 넘게 모시고 있다는 딸, 10년 넘게 해외에 나가 살다가 말기 치매 어머님의 마지막이라도 모시겠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딸 부부까지… 다양한 돌봄의 현장을 만나고 있습니다. 재택의료센터 대상 환자 중에 이제 90세가 넘은 어르신이 한분 계십니다. 원래도 치매가 있어서 약을 드시는 분인데 몇 년 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재활이 제대로 안 되어 거동이 힘들어지셨고 이후 수차례 낙상으로 늑골과 고관절이 골절되어 현재는 누워만 계십니다. 이 어르신을 60세가 넘은 아들이 돌보는데 혼자 먹이고, 닦이고, 씻기고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제가 젊어서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거든요. 그거 갚느라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얼마 전 아드님이 혼자 어머님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키던 중에 발이 휠체어에 끼였다고 하여 왕진을 나갔습니다. 좌측 무릎이 실제로 부어있지만 어르신은 크게 불편감을 호소하지는 않아 일단 지켜보자고 했는데, 이후 겁이 난 아드님이 어머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자꾸 죽고 싶다고 하시고, 죽고 싶다고 하지 않을 때는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둘 다 해드릴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급기야 어르신이 "나 좀 죽여줘. 좋은 일 좀 해." 이러셔서 아드님이 "어머니, 내가 어떻게 해, 죽으려면 혼자 한번 해봐요"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셨는데, 그날 어르신이 스스로 목을 졸라 먹었던 음식을 다 토하고 집이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님께 그런 말을 한 것이 너무 죄송해요. 어머님이 너무 안타까워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셔야 하는지."

외래 진료실로 온 아드님이, 그 큰 남자 어른이 제 앞에서 끅끅 우십니다.

"제가 여기저기 다 다녀봐도 아드님 만한 보호자가 없어요.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하셨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위로의 말 뿐이어서 등을 토닥여드리며 티슈를 건넸습니다.
ⓒ박지영
서울신문의 기획기사를 모은 책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에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간병 가족의 어려움을 물었을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이 '간병에 끝이 없다는 것'이라고요. 뒤를 이어 '경제적 궁핍', '내 생활이 없어지는 것',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간병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 돌보는 분들을 힘들게 합니다. 방문진료를 하면서 가족들의 이런 어려움을 알아채고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현재 상황이 어떤 수준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고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돌봄 제공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여명이 길지 않은 어르신의 혈압이나 혈당 수치를 엄격하게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면 보호자도 여유가 생깁니다. 주 보호자가 혼자 고립되어 돌보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보호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도록 말씀드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환자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설명드립니다. 또 장기요양서비스를 연계해 드리고, 지자체의 틈새돌봄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도록 의학적 소견서를 작성해 드립니다. 욕창이나 흡인 위험, 낙상 위험이 있는 분들을 돌볼 때는 어떻게 하셔야 하는지, 욕창 매트나 낙상 예방을 위한 미끄럼 방지 매트나 손잡이 설치는 어디서 알아보고 구하시는지, 각종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교육해드리는 것도 방문 진료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후에 돌아가시게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야하는 것들도 알려드립니다. 필요한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연계도 해드리고요. 돌봄은 정말 지난하고 힘겹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잃는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기회가 되어 오랜 기간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셨던 경험을 쓴 책 <아픈 이의 곁에 있다는 것>의 저자 윤수진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말씀을 옮겨봅니다.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것은 삶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돌보면서 스스로 낮아지고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돌봄이 나쁜 경험으로만 남지 않고 가치있는 경험이 되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돌봄의 선순환이 생기는 사회가 되도록 변화의 목소리를 내어 주세요."

지금도 집에서 아픈 분들을 돌보시는 수많은 분들께 존경과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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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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