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획득한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변제공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및 유족의 가족들은 정부의 이같은 행태가 피해자를 또 다시 죽이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11일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정부 방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피해자 가족 및 유족들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입주해 있는 서울시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변제공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녀 이고운 씨는 "(아버지가 대법원에서) 이겼던 재판을 무마시키며 공탁을 건다는 건 아버지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피해자분들도 다시 죽이는 것과 똑같다"며 "정부와 타협은 없다.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히로시마 중공업 피해자인 고(故) 정창희 할아버지의 장남 정종건 씨는 "(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스스로 우리나라의 법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며 "공탁은 전면 무효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일 외교부는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정부 방안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 4명과 상속인 파악이 되지 않는 유족에 대해 공탁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는 공탁을 하더라도 피해자 및 유족의 채권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피해자의 변호인은 이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3일 정부의 공탁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난 김세은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변제공탁은 변제를 위해 하는 것"이라며 "공탁이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공탁소에 공탁을 하게 되면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은 것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공탁이 유효하다고 인정될 경우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 (원고가) 가지고 있는 채권이 공탁금 출납 청구권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본 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이 없어지는 것이고 다른 채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을 없애려는 정부의 시도는 법원에 의해 중단됐다. 광주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 등은 피해자와 유족이 "제3자 변제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 의사표시"가 있었다며 공탁에 대해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탁 당시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대상자인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은 언제든지 판결금을 수령하실 수 있다"며 "정부는 재단과 함께 공탁 이후에도 피해자와 유가족 한 분, 한 분께 이해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피해자 가족 및 유족들은 회견 이후 심규선 재단 이사장을 만나 공탁 절차의 중단을 요청했으나, 심 이사장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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