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특이점을 의미한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인공지능의 발달 수준을 곡선으로 나타낸다고 했을 때 그 곡선상에 특이점이 있다면 그건 차라리 인공지능에 신경망이 도입된 지점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이진경 서울과기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꼭 그렇지는 않아요. 챗GPT를 '생성형' AI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 단어를 조합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 있고, 기존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새로운 구절이나 문장을 생성해 낼 수도 있죠."(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인공지능에 관해 호기심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독자'를 콕 찍은 책이 나왔다. <선을 넘는 인공지능>(이진경·장병탁·김재아 지음. 김영사). AI 동향 전달이 아닌 '다른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를 목표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철학자 이진경 교수와 AI 전문가 장병탁 교수가 15차례 나눈 대담집이다. 김재아 소설가와 출판 편집자도 대화에 참여했다. 출판사가 밝힌대로, 독자들을 AI 신세계로 이끄는 친절한 안내서는 아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을 넘나드는 철학자의 사유와 'AI가 사람을 닮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뭘까'를 매일 고민한다는 공학자의 시선이 만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한다."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는 건 그 자체론 분명 좋은 일이죠. 사람이 이제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게 정반대로 걱정거리가 되는 건, 고용과 임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자본주의 때문이죠. (…) 인공지능이 인간에 공생적인 보완재가 되기 위해서는 고용과 무관하게 최소 생계를 보장해줘야 해요."(이진경)
장 교수도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알아서 각자도생하게끔 두어서는 안 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호응했다. 사실 이런 현실적인 이슈는 15차례 대담의 언저리다. 두 사람의 주된 테마는 인간 수준의 지능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다. "자신의 존속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 "눈치 없는" 인공지능에 '신체'가 허락된다면?"(AI가) 사람처럼 유연하게 사고하지는 못하죠. 그러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지능도 신체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 언어를 통해 학습할 때조차 신체와 관련된 원초적 감각이 기반이 되어서 녹아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 점이 현재 AI의 가장 큰 한계로 보여요."(장병탁)
"지능이란 외부 조건에 대해 적절한 신체적 대응 방법을 찾기 위해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신체 없는 지능은 어쩌면 전제조건 없이 공중에 붕 뜬 거라고 할 수 있죠. (…)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의식이 있으려면 자아가 있어야 하고, 그게 있으려면 신체적 생존의 지속을 자신의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이진경)
'AI 월드' 적응을 서둘러야 할 것 같은 노심초사에서 한걸음 물러나, '인간 흉내내기'에 진심인 어떤 기계를 거울삼아 인간 의식과 자아, 감각, 감정의 체계에 관한 사유를 한번 쯤 해볼 수 있다면, 인간과 AI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한 책의 목적에 얼추 부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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