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발목 잡는 전장연은 비판받아야 한다."
매우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시에서 특정 시민단체를 '비난받게' 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전장연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공무원과 시민들을 피해자의 위치에 세웠다. 단순히 전장연의 문제로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거대 권력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자체가 자신의 정책과 방향이 다르거나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공적 권력을 이용해 억압하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보도자료의 제목과 목적, 나열된 정책 내용의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언급된 모든 문제의 배후로 전장연을 지목하고 있다."독일에는 30만 명의 장애인과 간질환자 등이 관리를 받는 시설이 있다. 이들에게 하루 1인당 4제국 마르크가 지출될 때, 1년 국가의 총지출은 얼마인가? 만일 이 돈을 신혼부부에게 100제국 마르크의 보조금으로 지원한다면 몇 쌍에게 지원할 수 있는가?"
시험문제는 단순한 계산 문제로 보이지만 인간을 효율성과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 자체가 아닌 사회적 비용 지출과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나치 정권은 반공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기치로 독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등장했으나 노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을 숙청해 사회의 공론화 기제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럼에도 독일인들은 철저하게 나치 정권에 복종했는데, 위의 시험문제와 같은 선전 선동의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은 장애인을 '공동체의 짐', '비용을 쏟아 붓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고, 시민들 역시 교묘하게 강요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침묵을 넘어 나치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동조하였다. 그리고 T4 작전이란 이름으로 나치 정권에서 30만 명 이상의 장애인이 학살되었다. 지난 1월 '전장연 지하철 시위 2년, 피해액 2700억, 1회 평균 1시간 4분 지연'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신문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서울시는 한술 더 떠 피해액이 약 4450억 원에 달한다고 하였다. 4450억 원은 서울시의 주장대로라면 시설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 지원 예산 차액을 기준으로 탈시설 1년차 장애인 5602명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다. 장애인복지에 이 정도 예산을 투입했다면 전장연은 시위를 진작 멈췄을 것이다. 또한 추산된 피해액을 근거로 향후 지하철 시위에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지하철 시위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액만큼 장애인복지 예산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서울시는 전장연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이익의 실체가 존재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사실 전장연 요구는 거창하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 단지 장애인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다하라는 것뿐이다. 시민들이 숙고해야 할 문제는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공동체의 그 어떤 구성원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를 억압하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행태 또한 정권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또 다른 집단의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단순히 내가 장애인이 아닌 것이 다행이고, 내가 탄 열차가 전장연 시위 시간대에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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