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어떤 정당이나, 특히 과거 선전 선동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저희가 언론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이동관이 첫 일성으로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급했다. 기자가 "(공산당) 기관지 같은 언론이 지금 있느냐. 어떤 언론이 그런 언론이냐"고 묻자 "국민들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동관에 따르면 공산당 기관지 언론은 실재한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일까. 무슨 스무고개 하듯 내놓은 이동관의 발언은 일종의 '도그 휘슬(dog whistle)'이다. '개 호루라기'는 사람에겐 들리지 않지만 개가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초음파를 내는 도구다. 정치학에서는 특정 지지 그룹의 호응을 얻기 위해 암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걸 말한다. 정치 저관여층에겐 전달되지 않지만, 특정 지지 그룹은 '도그 휘슬'을 알아듣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거나 그를 지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부정적인 관심을 끌고 싶진 않은데 논란성 이슈에 대해 지지 그룹을 선동하고 싶을 때, 혹은 부인할 수 없는 당위성으로 포장하면서도 특정 지지 그룹의 편향성에 호소하고 싶을 때 사용된다. 트럼프가 미국 의회 앞에 모인 성난 지지자들을 향해 "Have the courage to do the right thing. Fight!(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라. 싸우라!)고 말한 것은 일종의 '도그 휘슬'이다.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라'는 말은 흠 잡을 데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은 일부 성난 지지자들에게 '의회에 쳐들어가라'고 해석된다. 그리고 트럼프는 자신은 폭동을 선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건 입증할 수도 없다. 보통의 '인간'들에겐 의회에 난입하라는 의미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도 '미국 백인'들을 겨냥한 도그 휘슬이란 비판을 많이 받았다. 많은 극우 정치가들이 '도그 휘슬'을 이용해 난민·이주민 혐오 정서, 인종차별 정서를 건드리고 '페미니즘'을 조롱하며 지지층의 내심에 어필하려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 건 오래된 일이다. 이동관이 '공산당 기관지' 같은 언론을 언급하고 '본인들은 잘 알 것'이라며 애둘러 얘기했지만, '특정 세력'은 아마 환호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공산당을 언급함으로서 일부 한국인들의 내심에 여전히 존재하는 '빨갱이 콤플렉스'를 자극한 것인데, 아마 일부 아스팔트 우파이나 '극우 유튜버'들은 '공산당 언론'을 몰아내야 한다며 실재 존재하는, 공산당과 전혀 상관 없는 몇몇 언론들을 콕 집어서 비난할 것이다. 매카시즘 시대에나, 냉전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이런 유형의 '도그 휘슬'은 분단 국가에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좀비처럼 현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그 휘슬'을 잘 사용하는 한국의 정치인 중 하나다. 그는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며 "우리가 오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한다면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런 실천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위성으로 포장된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오월정신까지도 '진영 논리'에 가두어 특정 지지자들에 어필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도그 휘슬'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극우 세력을 자극하는 언사를 자주 펴 왔다. 윤 대통령이 연설마다 수십차례 언급하는 '자유'가 그런 것이다. '자유'는 한국 사회 맥락 속에서 피묻은 이념 내전의 최전선에 내몰렸던 단어다. 70년 전 한국전쟁 이후 엄청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지불한 한국 사회에서 일부 '반공 보수'는 여전히 "좌파가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없애려고 한다. 이는 나라를 북한에 바치기 위한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자유'는 한국 사회의 현대사가 주물한 특정한 토대 위에서 특정 계층에게는 특별한 암호로 해석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북한으로 가버리라'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것도 그 증거다. '자유'는 윤 대통령의 '도그 휘슬'과 같은 것이다. 물론 윤 대통령 뿐은 아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도로 무단 점유'를 명분으로 내세워 퀴어 페스티벌을 억압하는 것도 전형적인 '도그 휘슬'이다. 그는 '반 동성애자'들의 표심에 호소하고 싶지만, '동성애자의 페스티벌에 반대한다'는 직접적 메시지가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우회로를 선택했다. 홍 시장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직설적인 발언을 했다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전략은 조금 더 교묘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준석 전 대표도 그런 면에서 '선수'다. 페미니즘, 장애인 시위와 관련해 그가 '불법과 합법'을 언급하고, '역차별'을 호소할 때 그것이 누구를 향한 말인지,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얘기인지 우린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장애인 혐오자'도 '페미니즘 혐오자'도 아니라고 하지만, 장애인 혐오와 페미니즘 혐오 정서를 가진 이들은 '도그 휘슬'을 알아차리고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며 나아가 행동(투표든 시위든)을 강구하게 된다. 이준석 본인이 이런 원리를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도그 휘슬'이 서구 정치권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다양성을 배척하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을 지지층으로 거느린 정치가들이 중도층의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교 다양성 사회에서 '기독교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는 배제의 슬로건은 "가족 가치(주로 동성애를 비판하는 기독교도인들이 쓰는 말)"와 같은 평범한 '도그 휘슬'로 둔갑한다. 선거 캠페인에서 "가족 가치"를 언급할수록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뭉친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영국 총리를 지낸 보리스 존슨은 2016년 4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조상' 때문에 영국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도그 휘슬 인종차별'로 비난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케냐 혈통이다. 도그 휘슬러들은 주로 '불법', '비국민', '주류', '가족'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무슨 뜻인지 알지?'라고 지지층의 내심에 호소한다. 이런 사례는 무수하다. '도그 휘슬'의 가장 큰 문제는 '이중 언어'라는 점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를 언급했을 때, 유권자 중 누군가는 '일할 수 있는 자유'나 '언론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걸 떠올리며 투표하지만, 누군가는 '자본의 자유', '북한 체제 해체', 심지어 "적화 통일에 협조하는 대한민국의 반국가 세력을 때려잡자"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투표한다. 하나의 메시지를 두고 전혀 다른 이해를 갖는 두 명의 유권자가 그 메시지를 발신한 한 명의 후보를 택하는 건 민주주의가 가진 오래된 오류의 일종으로 본다. 이걸 적극 이용하는 세력은 중도층을 자극하지 않고,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극렬 지지그룹에 어필할 수 있다. 그러면 표를 최대한 많이 끌어모을 수 있다. 다시 이동관으로 돌아오자. 그가 '공산당 언론'을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아주 고약하고 낡은 '도그 휘슬'이라 비판받을 만 하다. 이동관이 하필 '공산당'이란 단어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그것도 그가 하고자 하는 모종의 '과업'과 관련해 극렬 지지층에게 모종의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공산당 기관지'같은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언론인지 아닌지 "본인들이 잘 알 것"이라고 하는 건 지지층들만 '아는' 특정 매체를 지칭한 효과를 갖게 된다. 두말 할 것 없이 그건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몇몇 언론들이다. 정치적 반대파를 '국가 전복 세력'이라 암시하고 '레드 콤플렉스'나 약자 혐오에 기대어 하는 정치, 그 말로는 별로 좋지 않다. 트럼프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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