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때였다. 약속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친구를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하자 딸은 "바보같이, 톡을 했어야지"라는 말을 했다.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이나 개인용 컴퓨터도 없이 기계식 타자기를 쓰던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아이는 당시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세대만 지나도 세상을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세기가 지난 옛날을 현재의 프리즘으로 보게 된다면 그 시간의 굴절률 만큼 왜곡되기 마련이다. 국방부가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치워버리겠다고 나섰다. 이어 윤석렬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세력의 척결을 이야기했다. 공산주의 세력은 진보나 인권, 평화를 가장한 채 자유민주주의 체계를 좀먹고 있기에 발본색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산전체주의세력 판별 렌즈로 모든 것을 다시 비춰보면 아무래도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독립운동가 흉상도 미심쩍어 보일 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 우리는 왕의 이름으로 조선 역사를 기억하지만 500년 조선을 지탱해온 것은 백성들이었다. 선조가 한양과 민중을 버리고 도망을 쳐도 의병이 되어 일본군과 맞선 것은 민초들이었다. 우리가 못났었기에 식민지배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들의 눈에는 민중들이 보이지 않는다.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 정치권력자들이 나라를 일본에 넘겨버리자 조선반도 민중들은 쉬지 않고 투쟁했다.
근대는 새로운 사상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자유주의가 풍미했고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를 비롯해 셀수 없는 주의들이 파생됐다. 두 이데올로기가 서로 결합되어 민족적 사회주의가 나오기도 하는가 하면 공산주의도 여러 가지를 타고 분화했다. 일국 사회주의론으로 소련체제를 완성한 레닌주의나 연속혁명을 이야기한 트로츠키주의는 똑 같이 공산주의를 지향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계급의 적으로 간주했다. 조선 말기 천주교가 빠르게 퍼져나갔던 이유는 하나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충격적인 사상 때문이었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의 한 장면을 보자. 천주학을 접한 양반이 어느 날 하인을 불러 이제 자네는 나와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무라고 말했다. 하인은 드디어 주인이 정신이 나갔구나, 하고 그를 딱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하인은 주인을 따라 천주를 믿게 되었고 둘은 조정의 박해로 사지가 찢겨 처형될 때까지 친구로 함께했다. 근대 초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이유도 지옥 같은 현실의 대안체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중세 종교의 반인륜적 행태와 강고한 계급 지배 사회에서 공산주의 평등사상은 종교의 억압을 벗어나고 경제적 착취에서 벗어나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이데올로기였다. 피카소, 조지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엘리엇, 프랜시스 스콧 피츠 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 쇼 같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 역시 당대를 휩쓴 사회주의의 바람을 탔다. 대놓고 약육강식을 구현했던 제국주의 시기, 침략국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을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히틀러의 나치당과 일본 군국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을 지구상에서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독일 지배 아래 놓여있던 여러 곳의 가스실과 일본군 관할 수용소에서는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대량 학살이 자행됐다.
이런 연유로 조선에서부터 베트남, 인도, 아일랜드까지 식민지 해방 투쟁을 벌였던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일본의 조선 지배가 계속되자 한 때 독립을 주장했던 이들 조차 하나 둘 투항하고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을 때 마지막까지 항전을 이어간 사람들은 주로 사회주의 계열 무장 독립군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 충성했다고 비난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소련은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으며 세계 2차대전 때에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의 강력한 저항으로 독일군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도 담보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런 시대에 홍범도가 일본군이나 관동군 장교였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인가? 분단과 전쟁 끝에 이어진 냉전으로 한국과 소련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우파 군사 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으로 화해를 추구하고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홍범도는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고려인들까지 이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시대사적 인물이 될 수 있다. 국방부는 홍범도와 같은 빨지산 출신이 육사 교정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비애가 느껴졌다. 군인들에게도 인간이 걸어온 길, 인문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필요하다. 빨지산은 정규군에 저항하는 군대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를 파괴하는 침략군에게 맞서 싸우는 비정규 부대, 억압에 맞선 분노로 갑자기 전사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빨지산이라고 부른다. 빨지산은 사상과 무관한 용어다. 중국에서 일제에 항거한 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을 항일빨지산이라고 불렀지만 소련에 저항한 빨지산도 있고 한국전쟁당시 북한에 맞선 비정규부대도 반공 빨지산이었다.
프랑스어 파르티잔에서 온 말은 세계 2차대전을 계기로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비정규 부대를 통칭하며 전 세계로 퍼졌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의 저서로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 작가 프리모 레비는 화학자였지만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나치즘과 무솔리니 파시즘에 저항한 파르티잔이었다. 파르티잔이란 말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한국식 발음 빨지산이 되었다. 대표적인 빨지산이 프랑스의 반나치 전사들이었던 레지스탕스였다. 레지스탕스라고 하면 멋있게 보이고 빨지산이라고 하면 공산전체주의세력처럼 들린다면 이념에 갇혀 같은 것을 표현하는 다른 용어에 휘둘리는 편협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에 저항한 빨지산의 이야기다. 이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빨지산을 다룬 이야기라며 폐기해야 한다고 흥분한다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다. 1944년 8월 24일 아침 프랑스군 제2기갑연대 9중대 병력은 반궤도 장갑차를 앞세워 파리 해방을 위해 시내로 진격했다. 제9중대는 "마드리드", "과달라하라", "부루테네"라는 스페인 내전 때의 전투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중대원 대다수는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였던 스페인 공화국군 파르티잔 출신이었다. 반나치 전선에는 드골 장군 같은 우파 민족주의자도 있었고 사회주의자들도 있었다. 프랑스는 우파든 좌파든 가리지 않고 해방을 축하했으며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나치 부역자들을 찾아 처단하는 것이었다. 조선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은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공산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있고 항일 운동의 필요성 때문에 공산주의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는 함께 힘을 모으려 노력했다. 또한 모두가 분단이 아닌 조선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싸웠다. 독립 투사들은 조선이 남과 북으로 갈려 민족끼리 총을 쏘아대는 미래는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다. 북한 정권 탄생 이전에 항일 전선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들을 북한의 이념에 경도된 자들이라 규정한다면 해방 이후 반공의 깃발을 높이든 친일파들만 국가적 영웅으로 기억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의 역사는 분단으로 귀결됐고 남과 북은 첨예한 체제 대결의 현장이 되었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일성 수령이라는 수사가 말해주듯 북한은 개인숭배가 만연한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주장했지만 오래동안 군사독재체제가 이어졌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80년대까지 남과 북은 두 독재자가 군림하는 전체주의 국가였다. 1980년 광주 이후 남한에서 진행된 민주화 투쟁의 결실은 비로소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라는 토대를 쌓은 것이다. 이 기초 위에 민주공화국의 가치인 공공성을 뿌리내리고 인권, 생명, 생태, 다원주의의 나무를 키워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점령당했다. 무한경쟁의 한가운데에서 입시경쟁, 취업경쟁, 아파트 경쟁....낙오되면 가망이 없는 사회에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지경이다. 북한과의 체제 대결은 7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이룬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 80년대면 모르겠지만 이제와서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나라로 전락한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것도, 또 북한 추종세력이 당장 남한을 무너뜨릴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상하기만 하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몰아 제거하려는 것은 그나마 성취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왜 승리했다면서 패배자를 흉내내려하는가? 자유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자유를 기초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도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가 어떤 사상을 가지든지 자유라고 헌법은 말한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일본도 공산당이 선거에 나서고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상이 인간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면 그 사상의 한계로 인해 몰락하는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라가야지 국가권력이 나서서 억압을 하게되면 그 이유만으로 생존력을 얻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북한 추종세력이 아니다. 이념전쟁과 설익은 역사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백주 대낮에 흉기에 찔려 목숨을 읽거나, 폭탄 민원에 숨이 막혀 죽음을 생각하거나, 빵 만드는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찢기거나, 붕괴 된 공사현장의 시멘트 더미에 깔리거나, 축제에 참여했다가 압사를 당하거나, 물이 불어난 지하차도에서 생명을 잃거나, 장사가 안돼 가게를 접어야 하거나, 취업이 안돼 희망을 버리는 사회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여기가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더 이상 아기 낳는 게 두려운 땅이 되어버린 곳에 필요한 것은 민중들의 삶을 돌보는 것. 바로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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