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연후를 며칠 앞두고 민주당으로부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 지명자의 인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고인 진술을 준비하던 중 10월 2일 민주당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여당에서 증인 및 참고인 출석 모두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출석이 불가능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도 없거니와 분노가 치밀었다. 청문회에서 문제들이 대거 밝혀져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라는 기왕의 행태를 예상했음에도 최소한 후보자의 문제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공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절차이기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힘들게 참고인 진술을 준비했는데 그 기회마저 공중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2008~2010년 문화부 장관 재임 시 유인촌 내정자가 행했던 문화예술계에 대한 부당한 압력과 탄압의 중요 사례들 어느 하나도 온전히 해명되지 못한 채 청문회가 형식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국회의 서면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 중 불리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모두 그런 일이 없었다거나 동문서답 식의 단답으로 일관해 있으니 말이다. 2. 10월 3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국회의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제기한 서면 질의에서 전직 기관장들이 제기한 해임 무효확인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한 데 대한 유인촌 내정자 의견이 어떤지를 묻는 부분에 "대부분 절차상 문제 등에 따른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어서 해임했으나 패소하면 그만이라는, "아니면 말고 식"의 파렴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문화예술인 전직 장관으로 강조했던 "품격"이라고는 일말도 찾을 수 없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대한 유례없는 집중 감사(44일간 10명 상주) 결과 처분 요구서(5월 18일)에서 밝힌 본인에 대한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12월 23일)의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달랐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본인이 승소한 행정소송에서 본인에 대한 징계 사유가 "대부분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미래교육준비단장으로서 본인이 집행한 U-AT 통섭교육 사업에 대한 악의적이고 왜곡된 평가와 위법적인 권력 남용에 의한 것이었음이 법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애초 여러 가지로 제시된 징계 사유는 모두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는데 그중 가장 어이가 없는 한두 가지 사례만 들어보겠다. 문화부가 지적한 제1 징계 이유는 본인이 "32억5000만 원 국고 행사 결과물이 당초 행사 취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예산을 낭비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감사팀은 문화콘텐츠진흥원에 사업 평가를 요구했는데, 30권이 넘는 결과 보고서 중 연구 보고서 10권에 대한 간단한 요약문만 1일 전에 심사위원들에게 보내고 심사 당일 그 요약문에 의거해 2시간 반 정도 평가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출석한 콘텐츠진흥원 쪽 증인에 의하면 '이번 평가의 경우에는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시간이 없으므로 최대한 빨리 평가해 달라는 요청이므로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평가가 단지 시간 부족에 따른 절차상의 문제가 아님은 '사업 내용에 대한 질적 평가'에 해당하는 항목이 20%에 불과했고, 나머지 80%는 <사업의 타당성 검토>에 배정한 사업평가 배정표에서도 확인되었다. 더구나 U-AT 통섭교육사업은 콘텐츠창작교육사업으로서 그 핵심 결과물은 연구 보고서만이 아니라 전시공연 창작물인데, 그 성과는 2008년 10월 8~11일 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중극장과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공연에 집약되어 있었으나 문화부 감사팀은 콘텐츠진흥원에 의뢰하면서 애당초 그 결과물인 동영상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게다가 8개 교과로 구성된 '시범교육사업'에 대한 9권의 결과보고서 역시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화부가 본인에 대한 정직 사유로 제시한 제1 근거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운영으로 사업의 부실한 결과가 나왔는지 여부에 대한 질적 평가'가 아니라 당시 콘텐츠진흥원과 카이스트 CT대학원에서 진행한 'CT 사업과 중복되므로 애당초 할 필요가 없는 사업'이라는 정해진 답을 얻기 위한 평가 과정에 기초한 것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법원은 이런 이유들로 제1 징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유인촌 내정자는 이 건에 대해서도 "절차상의 문제로 알고 있다"고 답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 한 가지 더 기막힌 사유는 본인이 미래교육준비단 단장으로서 '장관의 사업 중단 지시를 불이행해' 국가공무원법상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을 위반한 경우'라는 것인데, 법원은 문화부와 소속기관의 직제와 한예종의 설치령에 의거해 본인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있는 총장의 지시에 따라 사업을 수행한 것이므로 징계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법원은 문화부, 기획예산처 등 유관기관을 거쳐 국회로부터 45억 원까지 예산을 승인받은 이 사업을 계속 수행하라는 총장의 지시가 "위법, 내지 불법적으로 보이지 아니하며", "이 사건 사업에 대해 문화부 장관이 일방적인 중단 명령을 내린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총장의 교육과정 편성 권한이나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위법적인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고 1심에서 판시한 바 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은 2008년 6월에 한예종이 제출한 2009년 예산 30억 원을 20억 원으로 삭감했다가, 9월~11월 국회에서 계속 사업을 위한 예산 증액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2008년 12월 최종 0원으로 삭감한 바 있다. 이는 한예종과 국회의 요청을 무시한 일방적인 사업 중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원의 판시에 따르면 명백히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위법적인 조치"인 것이다. 이에 대해 유인촌 내정자는 과연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3. 이런 무도하고 위법적인 조치들은 나치가 1932~1933년 데사우의 바우하우스를 탄압해 결국 폐교로 몰아갔던 역사적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1932년 데사우 지방의회를 장악했던 나치는 바우하우스가 '좌파'(볼셰비키와 불온한 세력 등)에 의해 주도된다는 이유를 들어 차기년도 예산을 반액 삭감했고,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학교를 압수수색하며 교수진을 압박해 결국 자진 해산을 유도한 바 있다. 물론 한예종의 경우는 이와 다소 차이가 있다. 2008년 8월까지는 차기년도 예산을 반액 삭감했다가, 2008년 9월 초 문화미래포럼의 심포지엄에서 한예종에 대한 전면 개혁 및 감사 요구가 있은 후 2008년 12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점은 유사하다. 이후 2009년 상반기에 문화부는 전면적인 '기획감사'를 통해 학교 구조와 운영의 전면 개편에 해당하는 12건의 처분 요구를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U-AT 통섭사업을 주도한 미래교육준비단 해체 및 협동과정과 서사창작과 폐지, 총장직 사표를 수리하면서 교수직 사직으로 처리함과 동시에 본인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5월 18일 저녁 6시 감사 결과 처분요구의 기습 통보 및 19일 아침 언론을 통한 내용 공개 이후 수개월 동안 지속된 한예종 교수진과 학생들의 거센 항의가 없었더라면 2008년 9월 문화미래포럼에서 요구했던 '한예종의 단계적 해체'를 실행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실제로 2008년 9월 초 문화미래포럼은 심포지엄을 통해 한예종에 대한 종합 감사를 요구하며 한예종의 단계적 해체를 요구한 바 있었다. 감사의 세 가지 주요 항목(교육목표를 포함하여 국립교육기관으로서의 공공성 추구 여부, 여타 교육기관과의 불필요한 중복투자 여부, 투자 예산의 효율적 운영 여부)의 예시와 더불어 '대학 시스템을 폐기한다는 의미에서 종합예술학교를 해체하고', 각 원의 이론과와 협동과정을 폐지하는 1단계를 거쳐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은 폐지하고 단일하고 축소된 형태의 영재조기교육 학교로 남는 2단계를 통한 '한예종 구조조정 대안'이 그것이다. 이런 요구들은 2009년 5월 18일 문화부 감사 결과처분요구서에 대부분 반영되었고, 문화미래포럼이 2009년 3월 <독립신문> 등의 여러 인터넷 매체를 통해 '통섭 교육(학제간 융합교육)'에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것도 모두 감사 결과에 반영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문화미래포럼과 문화부는 이렇게 무도하고도 결과적으로 위법한(교육과정에 대한 대학의 자율성 침해라는 위법) 요구를 '언론 플레이'를 통해 강요했을까? 문화부는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문 변호인단을 운영하고 있기에 법을 몰라서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정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장관이나 정책 집행자 개인에 대한 책임 부담은 없다는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위법적인 '권력 남용'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또한 패소 시 정부가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은 국민의 혈세에서 낭비되어도 좋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다수의 소송에서 패소할 수밖에 없는 무리하고도 위법적인 행정 처분을 내렸던 유인촌 내정자를 1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대통령이 문화부 장관으로 다시 지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7년에 설계하여 국회로부터 최종 예산을 승인받고 2008년~2009년 예산을 절감해가면서 국내 최초로 U-AT 통섭교육 사업을 추진했다고 포상은커녕 오히려 중징계 처분을 받고, 2010~2011년 2년간 명예 회복을 위해 행정 소송을 제기하면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건을 작성하며 심신의 고통을 받았던 과거의 악몽을 되돌아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국회의 서면 질의와 답변 및 신문 보도 등에서 드러난 지점들을 통해 그 답을 추론해 보자. 4. 유인촌 내정자는 기관장 교체에 관한 서면 질문에 대해 "정치적으로 임명된 기관장의 경우 정권 교체 시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국회 차원에서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서면으로 답변했다. 이미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기관장 임기를 정치적인 이유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국회 차원에서는 다시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다. 그런데도 이런 모순적인 주장을 여러 답변들에서 수정 없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유인촌 내정자가 법보다 정치가 앞서며, 법보다 제도가 중요하다고 '비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법과 상식과 논리를 정치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식의 이런 주장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쟁점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대중연예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후쿠시마 오염수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표현할 수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경우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르기 때문에 공개적 표현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최근 '오염수 방류 우려' 입장을 개인 SNS에 쓴 연예인에 대해 여당 대표가 "개념 없는 연예인"이라는 비판을 한 것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적 발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대중연예인은 "공인"이기에 공개적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공인 중의 공인'인 여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인적 발언"이라면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말하는 것이 관례에 적합한데도 유인촌 내정자는 이렇게 상식과 논리를 뒤집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블랙리스트 미이행 과제 관련 질문에 대해 "향후 예술인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권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면서도, 윤석열 정부는 정치풍자, 사회문제를 다루는 예술을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며 예술이 아니라고 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을 묻자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예술을 도구로 삼거나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순서를 바꾸면 정치 풍자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예술은 예술을 도구나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기에 예술이 아니므로 이런 예술관을 가진 예술가들의 경우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권익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도 유인촌 내정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조차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셈이다. 물론 유인촌 내정자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조항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이 조항에 대한 '해석', 즉 정치 풍자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예술에 대해 "예술을 도구로 삼거나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방식으로 일종의 '돌려차기'를 행하는 그의 '해석 기술'에 있다. 이런 해석은 2008년 8월 27일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균형화 전략'과 이와 거의 유사한 내용을 담은 2008년 9월 문화미래포럼이 국회 문방위 고흥길 위원장에게 제출한 '문화예술계의 현안과 과제'에서 제시한 예술과 정치에 대한 판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핵심은 두 가지로, 하나는 "문화 권력화(문화를 통한 국민 의식의 좌경화)" 실태에 대한 분석 및 좌파에 대한 의도적인 자금줄 차단과 체계적인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금을 우파 쪽으로만 배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문화예술 전반이 우파로 전향하도록 추진"하는 데 있다. 유인촌 내정자는 국회 서면 질의응답에서 본인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는 '문화 균형화 전략' 문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답변하고 있지만, 그 문건에서 주장하는 대로 2009년 이후 정치 풍자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다수의 문화예술단체나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대폭 차단되었기 때문에 동일 제목의 문건을 본 적은 없다고 해도 '문건 속의 생각'은 그에 의해 그대로 관철되었던 셈이다. 이런 문제들을 야기한 유인촌 전 장관을 다시 문화부 장관으로 내정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MB 정권 시절 문화예술 분야의 '좌파 척결' 공작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이는 최근 문화부 예산안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문화부는 K-콘텐츠에 대한 예산을 대폭 증액했음에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창제작 지원' 사업을 대폭(190억 원) 삭감하고, '윤석열차' 웹툰 논란이 있었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지원금을 48% 삭감했다. 또 출판계 예산 중 '문학나눔 도서보급'(56억 원),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55억 원),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11억 원) 사업을 폐지해버렸다. 이외에 MB 정권에서 큰 피해를 본 한예종의 예산 중 중요한 운용비 예산 108억 원을 삭감했다. 최근에 창립하여 유인촌 내정자를 지지한 '문화자유행동'이란 우파문화예술계의 등장도 MB 정부 시절 활약했던 문화미래포럼의 후신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유인촌 내정자는 문화예술계의 암흑 시절이었던 MB 문화정책의 귀환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5. 이즈음에서 우리는 '정부의 역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먼저 정부와 정권의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권은 어느 당파가 집권하는가에 따라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정부는 특정 당파의 소유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축적된 법과 제도의 구성물이므로 정권의 입맛에 따라 그 세부 운영마저 좌지우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은 좌파든 우파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혁명을 통해 헌법을 바꾸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계의 각종 법률과 제도들을 정권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자유'를 공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들의 '제한된' 정치적 입장을 정부 전체는 물론 국가와 시민사회 전체에 대해 강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 중 이렇게 사상 표현과 예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인 경우는 국외적으로는 나치 체제를, 국내적으로는 유신 체제를 들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관과 맞지 않는 세력에게는 사회 안정을 해치는 '빨갱이', '좌파', '불온 세력', '국익을 해치는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사상 표현의 자유와 주요 기본권 등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은 결국 역사적인 비극을 초래했고,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예외' 사례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나치 체제나 유신 체제의 존속 기간은 길어야 15년에 불과했다. 물론 역사적인 예외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시 한 번은 코미디로 반복된다는 맑스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은 유인촌 내정자를 임명함으로써 90년 전 또는 50년 전의 비극을 이번에는 '코미디'의 형식으로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유인촌 내정자의 답변을 보면 하나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수많은 다른 질문들에 대해 시종일관 '이명박 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는 문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질문들에 대해 엉뚱하면서도 경직된 답변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문자 그대로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이런 연상은 당시 유인촌 내정자 등이 현장에서 실제 사용했던 명단의 제목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배제 작가 명단' 같은 한글 제목의 문건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마저 촉발시킨다. 이런 발상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배제 작가 명단'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다라는 기상천외한 주장도 가능할 수 있겠다. 청문회 자체를 하나의 블랙 코미디 같은 퍼포먼스로 간주한다면 말이다. 하얀 캔버스 하단에 파이프 그림을 그려 넣고 상단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써놓았던 저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적인 발상을 정치적으로 '패스티시(혼성모방)'하여 청문회를 조롱하는 방식처럼.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정말 없었다면 과연 자신들과 정치관이 다른 이들의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제한'할 수 있었을까? 소위 '불온한' 작가의 명단 없이는 심사대상이 되는 수천수만 가지 작품들의 다양한 표현 방법과 소재 등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판단과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을 일치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어 심사 결과 혼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가 이제 본격화되었기에 블랙리스트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AI로 하여금 블랙리스트에 해당할 만한 작가들의 고유한 작품 패턴들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도록 하여 명단 없이도 작품만 보고 걸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같은 것이 그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완벽하게 말이다. 현재 문화부 소관 법률 중에서 개정에서 시급한 것과 그 개정 방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 환경의 변화에 맞춰 문화 관련 법령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유인촌 내정자의 답변에서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느끼는 이는 오직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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