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던 내 아이
"병원에서 아이를 포기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포기를 해요. 살아보겠다고 나한테 온 아이인데, 살겠다고 이렇게 숨을 붙이고 있는데, 가려면 진작 갔겠죠."
27주 3일 만에 이르게 세상에 나왔지만 자가호흡을 할 정도로 건강했던 아이. 석훈이는 퇴원할 날을 받아놓고 있었습니다. 주치의가 학회로 병원을 비운 일주일 사이 석훈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황달이 오고 아이 몸이 새까맣게 변했는데 원인을 못 찾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원 처치 중 기도삽관이 빠졌고, 석훈이는 뇌의 90%을 잃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포기해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석훈이는 태어난 지 360일 만에 집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주치의가 개인 전화번호와 집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오라고 할 만큼 여전히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수시로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지는 석훈이의 몸을 엄마는 24시간 내내 토닥였습니다. "아이를 내려놓고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서 물도 안 마셨어요." 양손이 부어올라 수술할 때까지 2년여간 엄마는 토닥임을 멈추지 못했습니다.엄마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적
"처음 병원 재활의학과로 재활치료를 하러 갔을 때 석훈이를 안고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어요. 안은 너무 어두웠고, 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분명 한국인데 그곳만 다른 세계 같았어요.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요."
석훈이는 의사들도 특별 취급하는 최중증 환아였습니다. "의사 생활하면서 본 가장 심각한 상태라는 얘기도 듣고, 유명 재활전문의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엄마는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기관지 절제술과 위류관 수술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입으로 먹지 못하게 되면 그 수술들을 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미친 듯이 먹였어요. 먹는 대로 토해도 먹이고 또 먹였죠." 아프면 아프다, 싫으면 싫다 표현하라고 수년간 수천만 번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매일 누워있는 석훈이는 엄마의 노력으로 욕창 한 번 생긴 적이 없습니다. 비쌀 때는 회당 200만 원을 넘는 보툴리눔 주사도 3살 때부터 1년에 2번씩 꼬박꼬박 맞았습니다.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습니다. 고관절 수술만도 수십 차례. 석훈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뛰어들었습니다. 의료진은 석훈이를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석훈이 정도의 중증장애인이 기도삽관과 위류관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혼자 움직일 수는 없지만 석훈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은 없습니다. 뇌의 90%가 물로 차 있지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랍니다. 엄마의 집념과 간절함이 만든 기적입니다.지옥 같았던 코로나 3년
"다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해요. 왜 그렇게 수술을 많이 시키냐고. 절 위해서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갈 때 가더라도 아프면서 가지는 않았으면 해서요."
석훈이네 가족에게 지난 3년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코로나 직전, 간호사는 고관절 수술을 끝낸 석훈이에게 무통주사 놓는 것을 잊었습니다. 다음 날 엄마를 만날 때까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야 해던 석훈이에게 거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누군가 다리를 스치기만 해도 발작을 했어요. 병원에서는 그럴 리 없다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요."
하루에 5분도 자지 못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석훈이와 함께 엄마도 첫 3개월을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보툴리눔 주사를 1년에 4번씩 맞히면서 온갖 검사와 수술을 했어요. 결국 당시 수술 트라우마가 문제라는 생각에 3년간 싸우고 애원해 검사를 받았고, 다리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견을 받아냈어요. 그 통증을 없애기 위해 후신경 절제술로 척추 중간부터 신경을 마비시켰어요."엄마의 대장암 진단
"석훈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지체없이 바로 처리하고 해결하는데, 막상 제 문제가 닥치니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엄마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내내 속이 꽉 막혀있었고 수시로 게워냈습니다. 검사 결과 대장에서 용종 3개가 발견됐고, 엄마는 석훈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는 주말을 이용해 겨우 수술을 받았습니다. 3일 후, 병원에서 급히 불러 갔더니 조직검사에서 암이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1시간 동안 주저앉아 있었어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물만 나더라고요."
겨우 정신을 차린 엄마는 집으로 가서 석훈이를 데리고 가까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문득 '이게 훈(석훈)이 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제야 답이 나오더라고요." 엄마는 즉시 병원에 전화했고, 유명 전문의를 찾아 제일 빠른 날을 정해 수술과 치료까지 일사천리로 마쳤습니다. 검진부터 치료까지 걸린 기간은 고작 25일. 석훈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엄마는 말합니다. "사실 수없이 겪어온 일이에요. 그 대상이 석훈이가 아닌 저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제왕절개보다 더 아팠던 수술' 후 회복 기간에도 엄마는 자신보다 석훈이를 먼저 돌봤습니다. "석훈이를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올봄, 석훈이는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탔습니다. "가족끼리 첫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석훈이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웃는 거예요. 너무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섭더라고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웃음을 보여주는가 싶어서요."
모든 걸 포기하고 얻은 것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선택했던 그때의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제가 바라는 건 하나예요. 오늘 훈이가 웃는 것이요."
보툴리눔 독소주사는 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석훈이의 근육 강직과 통증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큽니다. 그럼에도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만으로 두 아이를 홀로 키운 혜령 씨가 매년 300만 원가량의 비싼 주사를 포기하지 않고 맞히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유모차 벨트를 끊을 정도의 강직으로 통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던 아이가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서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웃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매달 10만 원씩 꼬박 저축해 주사비를 마련했어요. 밥을 못 먹는 한이 있어도 이 돈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아요."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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