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붉은 강물이 흘렀다
-삼랑진 검세리 학살지 1. 그해 칠월의 끝한낮의 태양은 식어갔고여름날 저녁의 더운 입김 아래마을은 한숨과 공포에 젖어 있었다사방이 어둠에 잠기고 세상이 잠들 무렵비명을 지르듯 기차는 달렸고낙동강 검세리 철길 부근은한 무리의 검은 그림자로 소란하였다컴컴한 철길 옹벽에 사람들을 세우거나묶인 채로 세워지는 무리로 운명은 나누어졌다한밤중을 뒤흔드는 총소리와처참하게 강물에 던져지는 사람, 사람들아니라고, 아니라고 몸부림쳐도산 채로 수장을 당하거나총에 맞아 떠밀려서 사라져간 사람들낙동강은 핏물로 번져 흘렀다 2. 죄 없이 죽어야만 했던 한 나라의 사람들이양산의 중리마을 모래톱에 걸렸거나대한해협을 지나 대마도에서 발견되었다 3. 기차는 오늘도 달리고삼랑진 시루봉 강변 따라 이어지는 철길 아래나란히 굽어지는 자전거도로은색 바퀴를 굴리며 몇 대의 자전거가 옹벽 아래를 지난다바람결에 흔들리는 무성한 풀과 나뭇잎핏물을 품었던 낙동강이눈물을 삼키며 흘러, 흘러간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