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든 영유아에게 동일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유보통합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많은 쟁점만 뒤로 한 채 ‘누리교육과정’이라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공통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다. 이 교육과정 안착을 위해 유아교육법을 개정하고, 후속 조치로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법을 도입하여 어렵게 10여 년을 지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영유아들에게 제공된 교육·보육 서비스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고, 기관 간 격차도 여전하다. 시설유형이나 소관부처에 따른 지원 차이로 기관 간 격차는 더 벌어졌고 서비스의 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 동일한 누리과정 중앙예산이 내려와도 소관부처가 어디냐에 따라 실제 지원규모가 달라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 격차를 심화시켰으며 교육의 질 불균형을 불러왔다. 이런 가운데 2022년에는 시·도교육감들이 교육부 소관인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에게만 급식비를 별도로 제공해 어린이집 유아에 대한 차별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누리과정을 동일하게 운영하는데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 지원 차이가 있어 영유아 차별이 생기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영유아는 교육권과 행복추구권, 차별받지 아니하고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영유아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그 의무를 다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영유아들은 스스로 기관을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교육철학, 맞벌이 여부 등이 고려된 판단에 의해 선택을 당한 기관에서 생애 첫 교육기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기관 선택에 따라 차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면 학부모와 영유아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을까. 위와 같은 문제를 인식했기에 지난 대선에서도 양당 후보가 유보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보통합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부처일원화를 먼저 하고 세부 로드맵을 구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보통합은 이원화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각종 체계를 통합해 대한민국의 0∼5세 모든 영유아가 이용기관에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보육서비스를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4월 유보통합을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올해는 유보통합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절차를 실행에 옮기는 등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어린이집 관련 업무를 교육부로 이관하여 ‘관리부처 일원화’를 하기 위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2023년 9월 이태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보건복지부의 보육사무를 교육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교육부가 유보통합의 쟁점을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안정적인 유보통합 추진을 도모하려는 게 법안의 취지다.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유보통합을 반대하는 일부 단체가 연합해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한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보통합은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지,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추진되는 정책이 아니다. 갈 길이 구만리인데도 초반부터 불협화음을 내는 건 영유아의 앞날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함께 고민하고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그만이다.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보며 유보통합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고 뜻을 같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집 교사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그들이 할 얘기가 없어서, 유보통합을 반대하는 단체의 주장에 공감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영유아들을 지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여기며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수고를 안다면 특정 교사집단의 의견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영유아를 만 0~2세, 3~5세로 분리하고 교사도 위 연령 기준으로 이분하자는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 누리교육과정 도입 초기인 2013년, 어린이집 유아들에게는 누리교육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교육감들의 성명 및 실제 미지원으로 전국 집회가 빈번했다. 그때 경기도교육청에 항의 전화를 해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교육세는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이지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만 부담하는 세금이 아니다. 동일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부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여부를 달리할거면 수혜자에게만 교육세를 부과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대체 어느 법에서 대한민국 유아들을 차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는가.”라며 교육재원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교육재원 또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부담한 세금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관리부처 일원화 법안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곧 시작될 예정이다. 부처통합은 유보통합의 시작이자 정책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단계다. 법안 통과 문제로 시작부터 차질이 발생하고 동력 또한 떨어지는 등 추진과 무산을 반복했던 유보통합의 역사가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통일보다 어렵다는 30년 난제인 유보통합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한 발씩 양보해서 법안 통과에 적극 협조해주기를 요청한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입장이 다르다고 상처가 되는 발언을 하며 흠집 내려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성숙한 모습으로 유보통합 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안 통과에 협조하되 우려가 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게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또는 특별회계법 마련 등 유보통합 재원 확보 방안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부탁한다. 유보통합 시 기관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재원 확보 방안 없이 부처통합이 이뤄지면 어린이집은 계속 차별받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기관 간 격차로 차별받아 온 대한민국 영유아들을 생각하면 유보통합은 더 미룰 수 없는 문제다. 영유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모두 하나가 되어 성공적인 유보통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