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행정이 업무를 개시하여 정책 이행을 위한 로드맵과 세부 과제 등을 수립하여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하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보통합 정책의 경우 정부 조직을 개편하기에 앞서 ‘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단’을 발족하여 그동안 다양한 관련 집단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30년 동안 이원화되었던 제도이므로 분리되었던 역사만큼이나 집단 간의 요구와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어떤 문제와 난제들이 있는지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단’을 발족하고 추진 위원회 및 자문단 등을 만들어 학계, 현장,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시기에 유아교육계와 보육계는 유아교육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다양한 정책 포럼과 토론회를 연이어 개최하였다. 그러자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유·보 분리 체제의 문제점과 부작용 및 불평등한 사안들이 속속들이 드러났고 각 집단들 사이에서는 열띤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이런 논쟁 속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보통합 이슈는 수많은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또한 이전의 역대 정부들이 유보통합 정책을 거의 밀실로 진행하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유보통합 생각함’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정책 관련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도 개설되었고 진행과정에 관한 자료들이 탑재 되기도 했다. 추진단과 자문단 그리고 유아교육과 보육 학계는 여러 입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정책안을 발표하면서 일희일비하기도 하였고 정책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 있다. 이 와중에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은 초저출생으로 인한 영유아 인구 감소로 폐원을 하는 곳들이 급속히 증가했고, 갑자기 집 앞에 있는 기관이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된 상황에서는 두 기관에 대한 수요와 공급조차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통합적인 수급 관리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정책이 준비 되고 있는 과정이라지만 당장에 피해를 보고 있는 영유아 부모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2024년 입학을 준비하는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입학 상담 시즌을 맞이한 현장의 시계는, 정치권과 정부의 누리게 흘러가는 시계와는 달리 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영유아 부모들은 기관에 입학 상담을 한다 해도 정원이 차지 않는 경우 해당 어린이집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을 수 있기 때문에 입학을 결정하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교육부- 교육청으로 이어지는 관리 체제가 만들어져 취학권역 별로 통합적인 취학 수요 조사와 배치 계획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국회의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인 ‘정부조직법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일부 교육계와 정치권에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대개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로, 통합을 위한 정확한 로드맵이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청사진이 그려진 상태에서 천천히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계획을 일괄적으로 마련하고 그에 따라 차분하게 정책을 이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주장은 매우 합리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의 상황은 매우 시급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해에 약 50만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현재는 일년에 25만명이라는 숫자조차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 절벽을 맞이한 지역에서는 이미 단 한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며 아이를 출산하면 대학과 유학까지 무상으로 지자체에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천히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관리 체제를 통합해야한다는 주장은 마치 이방인이 길을 지나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말 같이 허황되게 들린다. 무엇보다도 상이한 여러 집단의 욕구들을 조율하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려면 책임있게 업무를 수행할 행정 조직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들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교육 재정의 문제이다. 유보통합에 들어가는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만 일원화하면 초중등의 교육 재정이 파탄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영유아 부모는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다. 국민들이 교육세를 낼 때는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만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태아기부터 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영아기부터 연간 수조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는 영유아 부모들에게 교육세는 초중등 아이들에게만 써야 한다는 주장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영유아 부모들이 세금 거부 운동이라도 해야 할 주장인 것이다. 더욱이 과거의 누리과정 대란을 겪으며 여당과 야당이 협력하여 ‘유아교육특별회계’를 만들어 3-5세에 투입되는 유아 학비는 이제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 또한 국고로 투입되는 영아 보육 재정은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어 보육이 교육부로 이관되면 자연스럽게 함께 따라온다. 부처 통합시에 이관되는 인력과 그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수반된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유보통합이 단순한 부처와 기관의 통합만이 아니라 영유아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으므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보다 많은 재정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질 향상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시행하게 되는 정책이므로 재정 또한 순차적으로 투입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는 동안 영유아 인구는 10만이 넘게 줄어들게 되므로 소요 재정 또한 줄어든다. 그렇다해도 교육의 질을 상향하여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영유아교육보육 체제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사들의 자격을 상향하고 처우를 개선하며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물리적 환경 등을 개선하려면 반드시 현재의 수준보다 상향된 유아교육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025년이면 일몰되는 ‘유아교육특별회’계를 가칭 ‘교육'돌봄 회계’로 개정하거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소요 재정을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2024년도 교육 재정이 많이 감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유보통합에 따른 재정 부족의 우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산정 방식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물론 일부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 재정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국가의 경제가 위축 될 경우 고정된 교부율을 적용하는 현재의 교부금 산정 방식이 교육 재정을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급변하니 그에 맞게 교육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대학까지 무상화를 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전체 교육 재정은 보다 안정적인 새로운 방식의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전체 교육 재정 개편 논의 속에서 영유아기부터 대학에 이르는 교육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계와 정치권 및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즉 “유보통합으로 형님들이 써야 하는 재정을 아우들이 강탈해간다.”는 식의 주장을 하기 보다는 모든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교육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적이고 합리적이다. 교육 재정이 영유아들에게만 노키즈존도 아닐터인데 상기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영유아 부모들에게는 매우 섭섭하고 무심한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다. 아동 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시카고 대학의 헤크먼 박사는 교육 재정의 편익 효과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교육 재정 투자에 따른 편익 효과가 가장 높은 시기가 영유아기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교육 격차는 이미 만3세 이전에 결정되므로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영아기와 유아기에 집중적인 교육적 개입을 해야한다는 경제학 분야의 주장은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다소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이미 생애 초반에 평생 짊어지고 갈 불평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런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교육 재정을 배분해왔다. 이제는 그런 비효율적인 재정 배분 방식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생의 시기 중 영유아 시기의 발달은 가장 급속한 속도로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정 환경의 격차로 이미 불평등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영유아기에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과 질 높은 상호작용 그리고 정서적 지지와 활발한 움직임을 허용하는 양질의 교육 환경이 제공될 경우 아이들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한 불평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줄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현재 유보 행정을 일원화하기 위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달 중 법안이 상정되고 심의가 이루어지게 된다.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후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의 개정 여부가 결정된다. 내 아이가 다른 부처가 관리하는 기관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재정 지원에 차별 받았다는 것을 이제 많은 영유아 부모들이 알고 있으며, 국회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보고 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정치권이 올바른 선택을 통해 영유아 부모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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