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소외감을 집요하게 파고든 정치인
그러나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정치 행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혐오와 배제와 갈라치기의 반복이다. 게다가 기득권 타파와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그도 결국 여의도 원내 입성이 급해진 지금은 자신의 오랜 지역구였던 노원병을 버리고 대구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정치는 한국 정치의 나쁜 것들은 대충 다 담고 있다. 이준석은 특히 2030 남성들에게 축적된 불안, 박탈감, 소외감, 분노, 피해의식, 억울함, 콤플렉스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여기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최대한 드높였다. 대선기간 광주에 가서 '언제까지 민주당한테 끌려다닐 거야, 너희는 쇼핑몰도 없잖아' 식의 메시지로 지역민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신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래를 이야기했던 이제까지의 정치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과거 지향, 네거티브 기반 언술에 특화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이 나이가 적어서 '싸가지 없다'는 등 태도 관련 비판을 과도하게 받는다고 억울해하는 듯하다. 억울해할 것 없다. 그에게서 공동체 생활의 소양과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 그와 안철수 의원과의 악연은 유명한데 그렇다고 다른 의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한 것도 아니다. 지난 대선기간 당대표였던 그는 점잖기로 유명한 권영세 선대본부장의 경고도, 김태흠 의원이 "제발 자중하시라"는 읍소도 들은 척만 척 자기 고집대로 행동했다.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당 대표를 탄핵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갈등의 정치인
특히 당대표였음에도 대선기간 두 번의 가출(?)을 감행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후보 중심의 선대위 체제에 들어갔음에도 당대표 패싱,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불만족 등 온갖 시비를 걸며 당무 거부에 나서며 잠적했고 당은 '대표 찾아 삼만리'에 나서야 했다. 윤석열 후보는 그때마다 '울산 회동,' '의원총회 포옹'의 형태로 끌어 안았지만 '내가 정치는 선배'라며 곧바로 이어지는 훈수에 "더 이상은 이 자식과 안 되겠다"는 다짐을 새겼다고 한다. 온 우주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독선이자 오만이다. 그는 당대표 시절 자당 의원들과 100대 1의 싸움도 불사했고 자당의 대선 후보에게는 비단주머니 운운하고 연습문제를 내주며 어린아이 취급을 하기도 했다. '넌 몰라,' '내가 맞아' 하며 초지일관 가르치려 드는 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고집불통 '꼰대'의 모습이다. 대선기간 온갖 갈등과 분란의 당사자였고 또 캠프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중에 '양두구육'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윤석열을 위해 선거운동을 한 자신을 자책한다는 모습을 볼 때면 저 정치인의 언행은 정신분석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참을 수 없는 승부욕'에 더해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과시욕이다. 얼마 전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이준석이 던진 영어 훈계(?)가 세간의 화제였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인종 차별'이라 설명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의 '참을 수 없는 과시욕'이 발동한 것이다. '너 한국말 잘해? 나도 영어 잘해" 그냥 그것이다. '파란 눈 미국인' 앞에서(인요한은 한국인이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낼 기회를 이준석은 놓칠 리 없다. 당시 발언은 한국어였더라도 먼 길을 찾아온 인요한에겐 충분히 모욕적이었다. 여기에서 이준석의 '말장난'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이 인종 차별도 조롱도 아니라면서 "정치나 외교 영역에 있어서 정확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그래서 영어로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 위원장이 했다는 "이준석과 밀실에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발언을 뭔가 대단한 문제인 양 알리바이로 삼았다. 토크콘서트 하는데 무슨 '외교 영역의 정확한 뉘앙스'가 필요한가. 인 위원장의 말이 '이준석과 둘이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다'는 '뉘앙스'인 걸 이준석만 모르나? 그 해프닝은 그냥 이준석의 앞뒤 가리지 못하는 자기 자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십 년 가까이 살며 강의도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인요한의 한국말이 이준석의 영어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훌륭하다. 뉘앙스도 그렇고.시위하는 장애인에게 방송국 가서 토론하자는 당대표
많은 사람들이 이준석의 남녀 갈라치기, 여성혐오, 장애혐오를 지적한다. 이에 이준석은 자신은 혐오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한다. 그러나 그의 여성과 장애 관련 혐오 내지 무시 발언은 곳곳에 있다. 지난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당시 당대표였던 그는 이들의 시위가 '비문명적'이라며 "그게 더 나은 해법인지 아니면 방송사에 가서 토론하는 게 옳은 방식인지" 따지자고 했다. 하버드대의 학식과 당대표의 정보력을 가진 사람이 시위하는 장애인들에게 '방송국 가서 토론하자'는 수준이라면 그건 약자들의 처지나 그들이 왜 이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력이 빵점이거나 몰상식이다. 정치할 자격이 없다. 많은 이들이 그의 화법에 감탄한다. 나 역시 그렇다. 온갖 수치와 사례로 무장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기 모순이 많고 특히 극단적인 사례를 내세우며 그 위에 자신의 주장을 살짝 얹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미국의 비평가 로렌스 그로스버그는 아무리 황당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이를 보강할 증거는 사방에 널려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몇 개의 파편화된 사례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여성에 대한 폭력 관련하여 페미니스트 진영이 "여자라서 죽었다"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간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그는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볼 법한 극단적 표현들을 내세우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여성문제를 폄하한다. 또 그는 여성계가 "택시기사와 같은 어려운 직군에서는 남녀 성비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고위직은 할당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문제시한다. 나는 여성계가 실제로 '택시기사 성비는 맞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준석의 말대로라면 식당 홀서빙 인력도 성비를 살펴야 하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정부가 정책으로 대응할 문제와 시장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뒤섞어 마구 던진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이준석이 한 인터뷰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고 기겁을 했다고 한 사실이다. "사실상 사람으로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사례들의 합집합을 모아놓고 '넌 불쌍하지 않니'라고 묻는 것"이라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를 보고 기겁을 했다. 그게 소설 아닌가? 문학작품을 가지고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는 평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소설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공감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다. 참 희한한 정치인이다. 그는 여성의 삶을 살아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해 그랬을 것이라 짐작은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을 읽고 '기겁'을 하나. 그래서 그가 내놓은 여성문제의 해법은 뭘까? 정치의 경우 정당이 개방형 당직을 여는 것이라며 "능력 있는 여성이라면 토론 배틀이나 정책공모전 같은 건설적 경쟁을 통해 바로 정치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12년 동안 정치 헛 했다. 토론 배틀 나가는 게 여성에게 '건설적 경쟁'인가?이준석은 '좋은 정치인'인가? 한국정치의 미래인가?
이준석은 그가 비판해온 윤 대통령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두 사람 다 모르는 게 없다. 한 사람은 59분간 혼자 이야기하는 신공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가르치려 드는 것도 모자라 다른 당 공천 전략까지 훈수를 둔다. 정작 우리가 이준석에게서 궁금한 것은, 그가 무엇을 혐오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갈라치기와 배제의 세상? 집권당 대표가 장애인과 방송국에서 TV토론해서 기어이 승부를 가르고야 마는 세상? 한국 정치가 워낙 후진적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이준석 같은 청년 정치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저런 정치인과 일생을 걸고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준석의 부상은 한국정치의 낙후성, 그리고 단군 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못살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한 가지. 많은 이들이 국민의힘 총선 승리를 위해 윤 대통령이 이준석을 결국 끌어안을 가능성을 점친다. 대선 때 이미 두 번 그랬다. 집권 후 내쳤지만 과연 다시 한 번 끌어안을 것인가. 여기에서 쟁점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국회의원이 된 이준석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총선 끝나면 본격 레임덕의 시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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