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영희샘이 추석을 맞아 안부 전화라며 내게 전화를 주셨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마당발 한의사 선배 이유명호가 이끄는 대로 한겨레 논설위원 김선주, 유시춘, 조선희, 서명숙, 김미경 등 여성들과 어울리고는 했다. 호주제폐지운동을 가열차게 하고 있던 터라 '십자매'라 칭하기도 했던 이 모임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리영희샘 부부와 수다를 떨며 산책하거나 연극을 보러 가는 등 어울릴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리샘은 남다른 기획력과 재주를 가진(^^) 우리 '리영희 오빠부대' 덕분에 모처럼 큰 기쁨을 맛본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추석날 선생님과의 전화는 40분간이나 계속되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냐"는 샘의 질문에 그해 설연휴에 맏며느리의 소임을 내려놓고 혼자 인도의 오로빌 명상공동체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샘은 급관심을 보이시며 꼬치꼬치 상세하게 이를 것을 요구하셨다. 여행 다녀와서 '나는 언제 저런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보나'하며 절망했던 이야기, 절망 중에 곧바로 만나게 된, 아니 알고 보면 이미 오래전에 연이 닿아 있었던 명상스승님과의 운명적 만남, 스승이 들려주신 기나긴 체험담과 스승님이 내어주신 공동의 과제는 명상공동체 마을 만들기더라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나의 명상스승은 자신의 존재가 외부에 드러나는 걸 극히 꺼리는 분이고 내가 넋을 놓고 들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은 하찮게 여기거나 기이하고 미심쩍게 여기기도 하였으므로 나는 리샘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이렇게 털어놓아도 되나 주저주저하였다. 그런데 리샘이 하도 "그래서, 그래서..." 보채시는(^^) 바람에 주절주절 그렇게 통화가 길어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대충 마쳤을 때, 리샘은 "오늘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흡족해하시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를 꼭 다시 정독해보라고 수차 말씀하셨다. 전화통화 다음 날 리샘은 팩스로 영문으로 된 기사(<가디언 위클리> 1992) <Utopia finally put in its place?>를 넣어주셨다. 기자 리차드 가트는 남편을 따라 멕시코에 살았던 미국 여성 로레인 스토바트의 신간 <Utopia: Fact or Fiction?>을 읽고 유토피아는 유카탄 반도에 실재했던 사회이며 토머스 모어가 지어냈다고 믿었던 허구의 인물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 선장은 마야 사회를 경험했던 베스푸치의 항해선 선장 곤잘로 드 코엘료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주장을 소개했다. 저자 로레인은 자기가 직접 겪었던 유카탄 원주민들의 생활방식이 후에 읽은 모어의 <유토피아>에 그대로 기술되어 있어 상당히 놀랐는데 당시 꽤 많은 유럽의 항해사들이 쿠바와 유카탄 반도 사이를 오가며 마야문명을 접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려면 누구라도 그녀의 주장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라고 기자는 이 책의 출간 의미를 설명했다.
유토피아가 실재했던 사회라는 주장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곧바로 다음 달에 대학로 '민들레 영토'에서 리영희샘과의 유토피아 강독회를 마련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관련자료를 접하면 오려서 책에 보관하는 습관으로 간직했다가 내게 보내주셨을 뿐이었던지 강독회에서 내가 유토피아가 유카탄 반도에 실재했었다는 기사내용을 거론하자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나는 내심 크게 실망했는데 리샘은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유토피아의 공동체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열변을 토하셨다. 토머스 모어는 공평무사한 판관으로 대법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나태함을 경계하여 거친 속옷을 입고 절제된 생활을 했으며 빈민들의 딱한 사정을 늘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신음하는 약자들에 대한 아픔을 간직했으니 지배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골고루 행복한 이상적 사회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책을 썼던 모양이다. (혹은 그랬기에 이상적으로 생각되는 마야, 잉카문명을 경험한 코엘료 선장의 경험담에 귀가 번쩍 트였을 지 모른다.) 모어가 쓴 이상적 사회 유토피아는 54개의 공동체가 연합한 국가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고 6시간 정도만 노동하면 생존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와 농촌의 사람들이 2년에 한 번씩 교류하며 집을 바꿔 산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고 지배하는 자도 지배당하는 자도 없다. 황금을 죄수들의 발에 묶는 족쇄로 사용함으로써 황금에 대한 소유욕을 경계하고자 했다. 리영희샘은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인 16세기 초반에 벌써 사유재산이 존재하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살 수는 없으며 재산이 소수의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이치를 간파하고 있었던 토머스 모어는 참으로 대단한 혜안을 가졌다고 하셨다.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돈을 없앴을 뿐 아니라 동시에 탐욕도 없앴다. 더 많이 갖고, 더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 공동체의 행복을 파괴하므로 '더불어 행복하기'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실천에 옮겼다. 덕을 중시하고 윤리적으로 엄격하지만 쾌락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은 상당히 자연적인 것으로 최대의 쾌락은 건강한 상태를 뜻한다. 자연 속에서 감미로운 기쁨을 누린다. 갈증 날 때 물을 목으로 넘기면서, 배고플 때 음식을 섭취하고 시원하게 배설하면서, 아이를 만들면서 쾌락을 느낀다. 음악소리를 듣고, 바람의 결을 느끼며, 명상을 하면서 영혼의 쾌락을 느낀다. 으뜸으로 여기는 정신적 쾌락은 착하고 선한 생활을 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으면서 얻는다. (나 역시 청산으로 귀촌하여 자연 속에서 살아보니 이것이 얼마나 고급진 쾌락인지 알게 되더라.) 유토피아가 모어의 창작품이라면 이는 모어가 뜨거운 인류애로 대단히 오랜 기간 사회의 부조리를 관찰하고 그것을 없애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엄청난 공력을 쏟아 부은 역작이라고 해야겠지만 만약 실재했던 사회에 대한 코엘료의 경험담을 받아 적은 것이라면 그렇게 큰 고민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 적은 것일지라도 당시 풍토 속에서 저항감 없이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연막을 쳐야 했을 터이니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소설 속 선장 이름 히슬로다에우스는 '미스터 허튼소리' 쯤의 의미이고 널리 알려진 대로 유토피아는 'not a place',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보호막을 쳤음에도 이 책이 출간된 지 3년 뒤인 1519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코르테스는 기어코 총칼을 든 군대를 데리고 유카탄 반도 약탈에 나섰다. 그곳에 황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전염병균과) 무기를 지닌 코르테스의 군대는 황금을 약탈하는 동안 마야, 잉카문명을 초토화했다. 탐욕스러운 자들이 무기를 가지고 들이닥치니 선한 에너지만으로 생활했던 사회는 단숨에 요절이 나고 말았다. 코르테스가 몇 년에 걸쳐 황금을 싹쓸이하고 떠난 후 이차로 은이라도 약탈하려던 자들이 은을 싹쓸이해서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도자기들 따위를 사들이면서 은으로 값을 치르는 바람에 은행(銀行)이라는 말이 생겼다던가. 이후 1, 2차 세계전쟁을 겪으며 인류는 평화공존을 큰 가치로 합의했지만 탐욕은 여전히 무기를 앞세우며 교묘한 행태로 육지와 바다와 하늘을 넘나든다. 리샘이 가지고 계신 <유토피아>는 1965년에 13쇄로 찍은 암파문고(岩波文庫)인데 번역자(平井正穗)는 책 뒤의 해설문에 '공상적이라 할지라도 공산주의자 토머스 모어의 글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이라고 썼다. 그 귀절 위에 선생님은 '유토피아=공산주의, 사회주의'라고 메모를 적어놓으셨다. (일본인들은 ‘공산주의자 토머스 모어’라고 마음 놓고 표현하는데 우리에게는 그 같은 자유가 없다는 게 새삼 놀랍다.) 실제로 유토피아는 이후 공상적 사회주의, 이상적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쳤고 300년 후에 태어난 마르크스나 이후 건설된 사회주의 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알고 보면 내가 동경하며 다녀왔던 인도 명상공동체 오로빌도 유토피아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솔직히 착취 없는 아름다운 세상, 약자의 고통에 눈 감지 않고 더불어 존중하며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려는 고급진 의지가 인류의 역사를 진화시켜 오지 않았던가. 최근 미국의 역사가이며 정치평론가인 댄 라자르는 100년 전 소련이 실업보험 등 복지혜택을 처음 도입했기 때문에 체제경쟁에 뒤지지 않으려는 미국도 서둘러 모방하며 선진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도 1972년 이후락이 북에 밀사로 파견되었다가 북의 의료보험제도를 보고 깜놀해서 돌아와 남쪽에서도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남쪽의 의무교육 연한이 9년으로 늘어난 것도 12년을 의무교육으로 하는 북에서 자극받은 것이고 말이다. 세상에 나쁜 것은 무기경쟁이지만 복지경쟁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상하좌우 어떤 방향인들 가지 못할까. 리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본에 매몰되어 경쟁으로 치닫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100년을 가겠는가? 이런 속에서는 멈춤이나 공생, 옆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시대를 지혜롭게 넘어설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대중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급작스러운 혁명으로 뜻을 이룰 수 없으니 자기성찰을 하면서 길고 멀리 내다보며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라." 몇 년 전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나 최근 화제가 되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정점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최상위층 사람들의 현실 속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거의 정신병자 수준으로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있는 건 그들뿐이 아니다. 양심을 버린 검사 판사 언론인들 역시 동물이 우글거리는 약육강식 정글자본주의판의 한 축으로 존재한다. 그들에게서 떠오르는 것들은 욕망, 집착, 음모, 거짓, 경멸, 공격 등으로 의식수준의 하위를 차지하는 단어들이다. 유토피아 사회의 속성인 평화, 기쁨, 감사, 존경, 포용, 사랑, 친절, 신뢰 등 의식수준의 상위를 차지하는 단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매몰된 탐욕스러운 자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유토피아의 쾌락은 사실 알고 보면 얼마나 고급진 것인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유토피아는 고급지다'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리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선물은 '귀한 우리 함께 잘 사는 고급진 사회로 가라'는 안내 말씀이다.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감사한 말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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