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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으로 본 제6공화국 연대기, '김건희-이재명' 보위 정치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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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으로 본 제6공화국 연대기, '김건희-이재명' 보위 정치를 분석한다 [장석준 칼럼] 새로운 정치 문법을 수립해야 한다
영화 <서울의 봄>이 장안의 화제다. 관객 수가 이미 700만에 이르렀고, 연말 송년 모임마다 이 영화 이야기로 뜨겁다. 물론 대화 내용 대부분은 반란 수괴이자 학살자 전두환에 대한 회한과 울분이지만, 덩달아 이름이 오르내리는 또 다른 인물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하나회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12. 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시작된 한 시대를 확실히 끝낸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김영삼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한 편이 불러온 집단적 회고 취미라고만은 할 수 없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이, 40여 년 전 반란을 일으킨 한 무리의 국가 공무원들이 오늘날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공무원 무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김영삼 재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하나회 숙청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실현해낸 그 옛날의 정치에 견줘 한없이 무능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현 정치에 대한 환멸과 야유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단지 영화 <서울의 봄> 흥행만이 우리의 시선을 20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유는 아니다. 양대 정당이 각기 김건희, 이재명,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5000만 국민 중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을 위해!) 기나긴 대치를 이어가는 현재 한국 정치의 모습을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도 제6공화국 탄생(1987년 전후) 이후의 짧지 않은 세월을 시야에 담아야 한다. 지금 제6공화국 정치가 보이는 말기적 증상을 제대로 짚으려면, 반드시 제6공화국 역사 전반을 복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6공화국 초기 20년 - '거인의 시대'

우리 시대 정치와 비교하면, 제6공화국 초기의 정치는 마치 천하를 들었다 놨다 한 거인들의 세상처럼 보인다. 하나회를 숙청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 김영삼 정부만이 아니라, 현실사회주의권과 수교를 단행하고 토지공개념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도, 외환위기를 조기에 수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킨 김대중 정부도 그렇게 보인다. 말하자면 1987년 개헌-대선 이후 제6공화국 초기 20여 년은 '거인의 시대'였다. 그런데 거인들을 연상시키던 이런 겉모습은 실은 1987년 민주항쟁의 지극히 제한적인 승리(사실상 실패)와 이에 따른 민주화 과정의 한계와 궁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선 기존 국회, 그러니까 전두환 정부의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주도하던 국회가 만든 현 제6공화국 헌법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진 민주항쟁의 중요한 저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정권 교체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모두 구 군부세력과 어떻게든 손을 잡고 그 힘을 빌려 집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한계와 궁지 탓에 당시 정치 세력들은 특정한 선택을 결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 선택은 제6공화국 첫 20년 동안 일정하게 반복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00년대 중반까지 독특한 정치 문법이 한국 정치를 관통하며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대통령이 매번 (야당이 아니라) 소속당을 숙청함으로써, 아니 '숙청'이란 말이 너무 위악적으로 들린다면 소속당을 단절적으로 쇄신함으로써 제6공화국 정치 질서 전반의 역동성을 유지, 강화한다는 문법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하나회 동료였던 민주정의당 내 전두환 정부 세력을 국회 청문회에 세워 권력 중심에서 밀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함께 민주자유당을 만든 노태우 정부 세력을 하나회 숙청 등을 통해 고립시키고 끝내는 전두환, 노태우를 모두 법정에 세웠다. 이렇게 여당 내 전 정부 세력을 숙청하거나 사법적으로 단죄함으로써 집권 보수여당의 정치적 중심은 계속 극우지대에서 좀 더 중도 쪽으로 이동했고, 한국 정당 정치의 지형 전체가 변동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 국가기록원
김대중 대통령은 여기에서 예외였다. 김대중은, 비록 구 군부세력 일부(김종필 세력)와 동맹하기는 했지만, 제6공화국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따라서,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노태우, 김영삼과 마찬가지로 직전 정부 세력을 사법적으로 단죄하려 했다면, 이것은 패턴의 계승이 아니라 변형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적대당이 아니라 소속당을 '심판'하여 주류 정당 정치 전반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인다는 패턴이 유지되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제6공화국의 마지막 '거인'이었다. 그때까지 제6공화국 정치를 이끌던 정치 문법을 명철하게 인식하고 철저히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무현은 집권하자마자 소속당 내 김대중 정부 세력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고, 이로 인한 옛 동지들 사이의 긴장은 결국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폭발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잘못 기억하는 것과 달리, 당시 탄핵을 주도한 것은 현 국민의힘 전신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 계승 세력이었다. 하지만 이 탄핵 사태를 거치며 여당은 김대중의 정당이 아닌 노무현의 정당, 열린우리당으로 변신했다. 한국 정당 정치의 경계선과 무게 중심은 다시 한 번 크게 이동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더불어 이는 제6공화국 초기의 정치 문법과, 유권자의 역동적 선택이 맞아 떨어지며 빚어낸 실질적인 정치 '개혁'이었다. 이것이 2023년에 돌아보기에 20, 30여 년 전 정치가 마치 '거인의 시대'인 듯 다가오는 핵심적인 이유다. 물론 그 시절 정치가들이 지금의 그 후예들에 비하면 실제로 '거인'에 가까웠던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요인은 1987년 민주항쟁을 사실상 패배로 만들고 만 뼈아픈 실책들을 뒤늦게 만회해야만 한다는 무거운 역사적 압박이었다. 적어도 이 압박을 절실하게 느낄 줄 알았던 것이 제6공화국 초기 정치가들의 '거인'다운 자질이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각 정부가 잇달아 어떻게든 이 자질을 뚜렷이 구현했기에 많은 이들이 제6공화국 민주주의, 1987년산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물론 이때도 양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하려는 경향은 지금만큼 강했지만, 둘 사이에 현재와 같은 퇴행적인 진영 대결만 전개되지는 않았다. 최초의 정권 교체 이후,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국민의힘 전신 세력을 중심으로 그런 식의 대결 정치가 등장할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것이 지배적인 광경이 될 수는 없었다. 전체 지형이 주기적으로 크게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관성적인 대결 정치 역시 변화의 바람에 초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될 것은 이 시기가 지난 뒤에 한국 정치에 나타난 병폐들이 이 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 정치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비루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바로 이 시기에 씨앗이 뿌려지고 싹을 틔웠다. 가령 검찰이라는 새로운 고위 관료 권력집단의 대두가 그러하다. 제6공화국 대통령들은 숙청극을 연출하면서 매번 검찰 기구의 사법 엘리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검찰 권력'은 결코 자력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제6공화국의 '제한된' 민주주의 자체가 그들의 산실이자 교실이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제6공화국 '말기' - '소인의 시대'

제6공화국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명확한 정치 문법이 통하던 제6공화국의 첫 시기가 언제 끝났는지는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그 시대는 끝났다. 이명박 정부 등장은 제6공화국의 두 번째 정권 교체였지만, 이명박은 김대중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적대당 소속인 직전 정부, 즉 노무현 정부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요즘 상식으로는 '원래 그러는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실은 198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존 패턴을 깬 이명박 정부의 이 선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몰고 왔다. 이후 양대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원한과 복수의 정념이 뿌리를 내렸다. 이 역시 전에 없던 일이었다. 양당 독점 정치는 제6공화국 초기부터 굳건히 작동했지만, 오늘날 익숙한 진영 대결 정치는 훨씬 뒤인 2000년대 말에야 비로소 제대로 꼴을 갖추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이명박 정부가 열어놓은 새로운 역사적 경로를 더욱 돌이킬 수 없게 굳혀 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누가 봐도 수사할 거리로 넘쳐났지만, 박근혜는 노태우, 김영삼과는 달리 소속당의 직전 정부 세력을 숙청하거나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복지국가, 경제 민주화' 같은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과 함께 이는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결정적인 자충수였다. 아무튼 이로써 제6공화국 초기에 반복되던 정치 패턴은 완전히 종식됐다. 그 뒤에는 다들 알듯이 2016-17년 촛불항쟁이 있었다. 그 여파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정부'를 자임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킨 기반이었던 원내 다당 구도를 살리는 개혁연합을 구축하는 대신, 이명박-박근혜 정부 세력에 대한 사법적 단죄에만 전념했다. 이름 하여 '적폐 청산'이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촛불'혁명'의 환영(幻影)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은 다름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의 반복이었다. 새로 등장한 정부가 적대당에 속한 직전 정부 세력을 수사와 심판의 대상으로 삼은 일이었다. 이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제6공화국에 새로 자리 잡은 정치 패턴이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통해 이 패턴은 제6공화국 초기와는 구분되는 새 시기의 지배 요소로서 굳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새 경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이명박을 심판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이명박의 자식'들이 정치를 움직이는 제6공화국의 또 다른 시기를 살고 있다. '이명박의 자식'들이라면, 확실히 '거인'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겠다. '거인'의 정반대인 '소인'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이다. 그러니 '거인의 시대'에 대비해 우리 시대를 '소인의 시대'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인의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무엇보다도 정당 정치를 비롯한 정치 전반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뒷걸음질 치는 시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지금보다도 정당 구조가 덜 발전하고 거인 정치가의 개인적 영향력이 컸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 정치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전진하게 만들었던 그 역학(力學)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대 정당은 지난 15년간 한 번도 진정한 단절적 쇄신을 겪지 않은 채 원한과 복수의 정념이 지배하는 진영 대결을 부추기며 수명을 무한 연장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군복 입은 권력 찬탈자 대신 법복 입은 비슷한 무리가 급성장했다. 제6공화국 초기부터 벌써 상승세를 타던 검찰 엘리트들은 두 차례의 전 정부 수사를 계기로 권력에 직접 도전할 위세를 확보한 집단으로 우뚝 섰다. 이명박 정부의 전 정부 수사로 흔들렸던 양대 정당의 한 축(민주당 계열)이 순전히 촛불시민연합 덕택에 집권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검찰 엘리트들은 문재인 정부의 전 정부 수사로 껍데기만 남은 양대 정당의 다른 한 축(국민의힘 계열)을 외피 삼아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우리 시대가 '소인의 시대'인 이유는 '소인'에 맞는 정치 문법이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 문법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는 소속당에 칼을 휘둘러서라도 화답하고 부응해야 할 시대적 과제 같은 것이 없다. 불평등 심화나 기후위기, 돌봄위기 등이 그런 자리를 차지해야 하겠지만, 지금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이런 문제들과는 전혀 상관없다. 원한과 복수의 정념을 연료로 삼는 진영 대결 정치는 이미 그만의 궤도를 맴돌고 있기에, 선출직 공직을 바라는 정치인들은 그 궤도의 논리에만 적응하면 된다. 그래서 이제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조차 아니라 적대당의 현 대표를 직접 수사하는 데 골몰한다. 군부독재정권 때나 보던 광경의 귀환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의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임에도 소속당을 단절적으로 쇄신하기는커녕 가장 부패한 당 내 세력과 거래하며 밀실 정치를 지속한다. 한편 반대쪽에서는, 애초에 더불어민주당 주류에 대한 도전자로 기대를 모았던 정치인이 대표가 된 뒤에 오히려 당을 진영 대결의 전적인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것은 그릇되었거나 시대와 동떨어진 문법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그냥 문법이라 할 만한 것 자체가 없는 세계다. 그렇기에 지금은 제6공화국의 '말기' 국면이다. 더이상 존립할 의미가 없는 체제가 수명만 연장하는 상태에 '말기' 말고 다른 어떤 진단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 문법의 수립

그럼 이 답답한 국면에 벗어날 출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거인'의 귀환, 즉 '우리 시대의 김영삼, 김대중'을 대망하고 현 시대의 특정 정치인들에게 이런 기대를 투영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거인의 시대'는 불완전한 민주화 과정이라는 그 시대의 운명에 응답한 결과였다. 그때의 정치 문법이 이미 한참 전에 붕괴한 상황에서 과거가 단순히 재연되길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다. 굳이 비유하면, 하나회와 달리 우리 시대의 권력 엘리트들은 '제2의 김영삼'을 통해 청소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선택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으로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것과는 다른 가능성이 살아 꿈틀대던 촛불항쟁 국면의 몇 달 동안이다. 이 시기에 대두한 원내 다당 구도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던 대중운동과 호응하면서,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정치적 결정을 실현시켜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내 다당 구도만이 아니었다. 이준석 신당이든, 이낙연 신당이든, 무조건 다당 구도만 만들어지면 만사형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중운동만 중요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새로운 정당 구도와 활기찬 대중운동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시끌벅적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정치 행위자와 양식, 관행이 등장해야 한다. 새로운 공화국을 채울 새로운 정치 문법이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6공화국(의 말기만이 아니라) 전체를 넘어서는 정치 문법을 수립하는 일이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460만명)을 넘어 누적 관객 수 500만명 돌파를 앞둔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서울의봄' 포스터가 모니터에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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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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