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겠지만, 정치위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권력관계가 응집되어 있는 국가를 무대로 하는 정치가 기후변화 등 복합위기를 예방하지 못했고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국은 정치적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고 국가의 능력도 없어 보인다. 올해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사정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류 정당 간 상호 심판론과 그 자장 안에서 반복되는 이합집산의 정치 동학에서 기후가 설 자리가 있을까 싶다. 한국 사회의 복합적 균열 구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실패와 제도적 제약 때문에, 그렇게 낡은 판이 유지되고 있다는 진단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21대 총선이 실시된 4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후 국회'에 대한 관심이 제법이 컸다. 그러나 위성정당 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기후 이슈는 빨려 들어갔다. 선거는 결국 '기후 침묵'을 강요했다. 문재인 정권의 후반기를 뒷받침하는 거대 여당은 이렇게 탄생했다. 임기 4년 동안 여당과 야당을 차례로 경험한 더불어민주당은 결과적으로 기후 국회를 만들지 못했다. 여러 나라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배출제로와 그린뉴딜이 추진되고 있지만, 22대 총선을 맞이한 한국은 여전히 퇴행적인 선거정치에 매몰되어 있다. 기후 국회로의 전환이 실패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단기 선거 국면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기후운동과 기후정치가 만나는 접점을 기후시간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1대 총선을 2021년 파리협정 신기후체제라는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중요한 해로 규정하고 '기후국회·녹색사회 5대 전환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다. 여전히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일부를 간추려 재구성해 본다.
한국은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한계를 주목하면서 사회-생태적 체제전환을 민주적으로,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정확하게는 이미 지나쳤다. 2021년 본격적으로 출범한 신기후체제와 장기 지속될 저성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그에 부합하는 국가개조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2030년까지의 선거를 4~5년 동안 정치권력을 위임하는 입법부와 행정부 구성의 문제로 좁혀서는 곤란하다. 정권 유지냐 교체냐의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니라, 2030년, 나아가 2050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30년과 2050년을 내다보면서 선거를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권력과 문화권력 모두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다중의 계기로 상정하고, 기후 국회와 녹색 사회, 녹색 국가를 세우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국내외 변화상을 반영해 사회-생태적 체제전환에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기후국회·녹색사회 5대 전환 프로젝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이슈페이퍼 2020년 1호, 2020.3.11. 참조). 첫째, 배출제로는 녹색국가와 녹색사회의 원칙이자 전제이며, 전환 프로젝트에서는 시스템 해체적 관점(destruction functions)에서 배출제로를 실현하는 전략과제를 제시한다. 둘째, 그린뉴딜은 개념상 녹색전환 전 분야를 포괄할 수도 있지만, 노동·산업과 인프라스트럭처의 전환(commoning과 infrastructuring)에 초점을 맞춰 전략과제를 강구한다. 셋째, 탈탄소 에너지전환에서 제외되기 쉬운 탈핵을 포함해, 창조적 관점(creation functions)에서 양질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그 범위로 해서 연성에너지시스템 전환을 위한 전략과제를 제안한다. 넷째,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방향에서 에너지·기후 대응 및 전환의 자치·분권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과제를 종합한다. 다섯째, 정의로운 전환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전환과정에서 필수적인,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유용하고 타당한 전환정책(transition policy)의 틀을 구상하고 그에 따른 전략과제를 설계한다. 이런 전환 프로젝트는 한국이 2030년과 2050년 중장기까지 녹색국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구상하고 추진해야 할 핵심의제와 전략과제를 의미한다. 각각은 추상성과 구체성이 다르고 각자 고유한 의미와 체계를 갖기 때문에,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전환 프로젝트의 상호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 전환 프로젝트는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복합위기를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회적 파상력을 바탕으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개별 정책개혁 수준을 넘어 6공화국이라는 구체제에서 체체전환을 통해 신체제로 이행하는 전환론, 즉 새로운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2023년, 노회찬 5주기 추모 심포지엄 <복합위기 시대,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에서 예시한 '심층 녹색전환 국가'라는 새로운 공화국은 복합위기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민주적, 참여적 계획과 정의로운 전환 관리를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의미한다. 경제성장주의 생산-분배 시스템의 역사적 모델인 전통적 복지국가의 지속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전환적·생태적 공공성과 자율성의 원칙을 갱신해야 한다. 심층 녹색전환 국가는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적대와 경합 속에서 전환의 비전과 전략의 다양성을 전제·상정하는 공유비전과 공통지반을 추구한다('기후위기 시대, 녹색전환의 비전과 전략', 2023.7.5. 참조). 최근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우산 개념으로 만족한 나머지 그 의미가 '정의 없는 기후정의', '정의 없는 정의로운 전환', '전환 없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무딘 칼날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성찰과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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