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주거권에 미치는 영향은?
기후위기가 주거권이 미치는 영향은 주택 및 사회기반시설이 충분히 보급되지 못한 국가뿐 아니라 경제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허리케인 하비(Harvey)로 휴스턴, 해리슨 카운티에서 주택 30만채 이상이 손상됐다. 2019~2020년 호주에서는 들불 대화재로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주택 3000채 이상이 소실됐다. 2022년 7월 뉴질랜드 남섬 서부 해안에서 발생한 홍수로 2000명 이상이 대피하고 주택 500채 이상이 파손됐다. 2021년 유럽 중부에서 발생한 폭우·홍수로 독일에서 130억 유로, 네덜란드에서는 2억 유로 상당의 주택 피해가 발생했다. 2021년 미국 주택의 약 10%가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았고, 약 1450만 가구가 허리케인, 산불, 겨울폭풍, 홍수 등 심각한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저소득층 임차인은 기상이변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요인을 주택 보험료에 반영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2021년 10월 미국 재난관리청(FEMA)이 홍수 보험료 책정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방법론을 발표함에 따라 기후재난 위험지역에 있는 주택은 연간 보험료가 1만 2000달러까지 인상됐다. 국제사회에서 주거권은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right to adequate housing)'로 불리며,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사회권규약 제11조에 포함되어 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의하면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는 단순하게 지붕이 있는 주택을 가질 권리를 넘어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와 함께 부담가능한 비용으로 사생활, 적절한 공간과 입지, 보안성, 조명 및 환기, 시설 및 설비가 확보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가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특히 취약계층의 열악한 집이 기후재난 상황에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집은 추위와 더위 등 혹독한 위부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지만 취약계층의 집은 기후재난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위기가 대부분 지역에서 물 부족, 식량난, 건강, 도시, 주거지, 인프라에 영향을 미치며, 일부 지역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거주불능지’가 되어 이주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적정 주거(inadequate housing)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재난으로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국제인권기구에서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 제4호에 따른 적정 주거의 구성 요소를 충족하지 못하는 거처를 '비적정 주거'로 개념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옥·고(지하, 옥상·옥탑, 고시원 등 주택이외의 거처)'가 비적정 주거의 대표적 유형이라 할 수 있다.국내 기후재난 거주시설 피해 증가…지원체계 미흡
최근 국내에서도 폭우, 산사태, 산불 등 기후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특히 지하, 옥탑,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에서 화재, 폭염 등 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주거지에서 생명권을 침해하는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주거비를 지원하는 주거급여 수급자와 주거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의 희생이 반복되고 있다. '2022년도 재난피해 회복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요 재난피해가구의 피해 내용 중 ‘거주시설 피해’가 80.3%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의 고시원에서 전열기구로 인한 화재로 7명이 사망했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0년 12월에는 경기 포천시의 비닐하우스에서 여성 이주노동자가 한파로 사망했다. 2021년 7월 서울 서대문구의 옥탑방에서는 혼자 살던 장애인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2022년 여름에는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지하주택 침수피해로 4명이 사망했다. 관악구에서는 여성 노동자, 발달장애인, 아동으로 구성된 일가족 3명이, 동작구에서는 여성 수급자가 사망했다. 반복되는 기후재난에도 불구하고 재난 발생으로 집을 잃은 피해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임시주거지 제공, 대체 주거지 마련 등을 위한 지원체계는 매우 미흡하다. 2022년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거의 없었다. 최근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난 피해 가구 중 65.4%는 아직 주거환경이 복구되지 않았고, 37.1%는 중앙·지방정부의 주거지원을 받지 못했다. 또한 재난 피해자 절반 이상(57.7%)은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응 평가도 7개 항목 중 6개가 3점(보통) 미만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주거부문의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강조되고 기후위기로 인한 주거권 위협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주거부문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7%는 주거용 건물에서 발생하며, 비주거용 건물과 건설산업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까지 모두 합하면 약 38%에 이른다. 2022년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정의로운 전환을 향하여: 기후위기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고서를 통해 주택에서의 탄소 저감과 에너지효율화 개선뿐 아니라 기후위기 영향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주요국 그린리모델링 증가, 한국은 예산 삭감·지원 중단
기후재난으로 주택의 상태 및 에너지효율 개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주거부문의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정책 논의가 에너지빈곤층 지원과 탄소중립을 위한 주택개량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에서 주거 부문이 미약하게 다뤄지고 있고,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도 부족하다. 신축 건물에 대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은 주로 비주거용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고, 2023년부터 일부 신축 공공건축물의 인증을 의무화했지만 대상이 제한적이고 에너지자립률 기준이 높지 않아 한계가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20년부터 15년 이상 경과한 공공임대주택을 대상으로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시작했으나 2023년 이후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민간 주거용 건축물 개량에 대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 민간 주거용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에 소극적이며 2024년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이자 지원 사업은 중단되었고 지원 방식이 변경될 계획이다.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중앙·지방정부의 책무가 규정됐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내용 대부분은 고용과 산업정책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를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주거 문제의 심각성과 취약계층 인권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주거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가 제안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거정책의 방향은 모든 사람과 모든 집에서의 주거권 실현, 기후재난 대응 및 피해복구 지원체계 강화, 기후위기 시대에 부합하는 주거품질 규제, 주택의 기후복원력 향상이다. 이에 따른 10가지 정책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오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기후위기를 의제화하고 기후유권자를 발굴하려는 운동이 진행 중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시작하는 '기후위기와 주거권' 총선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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