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에게 아침이 설레는 삶을!
무도하고 무자비하게 검찰과 사법의 권력을 마구 남용하여 우리사회의 '치명적 재앙'이 된 윤석열 정권은 더구나 민족의 역사와 국가주권의 이해를 포기한 종미친일의 예속적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이에 윤의 무리를 심판하고 처벌하자는 분노의 외침이 일상에서 차고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릇된 일을 바로잡고 이를 고쳐 나가는 것은 응당한 것이고 현 시점에서 절체절명의 시대과제적 요구를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무도한 한줌의 검찰 법비 세력을 심판하고 이들을 정치권에서 축출하면 대한민국에 쉬이 새날이 열리고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과거에 대하여 간략하게 복기해 보고자 한다. 1960년 이래 4.19혁명과 부마와 광주의 항쟁을 거쳐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군부 독재를 종결시켰지만, 이후 한국은 시장만능주의에 포획되어 장사꾼 이명박과 아바타 박근혜의 시대를 겪어야만 했고 촛불 혁명을 이루며 어렵게 새로움의 가능성을 열었건만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문재인 집단으로 인하여 오늘의 재앙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를 격하게 비판하며 최근 어느 미디어 언론 매체에 기고한 정범식 생명평화 민주주의 연구소 이사장의 칼럼 일부를 아래 인용해 본다."생명평화운동’은 보수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환상과 헛된 희망고문을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한국 보수야당의 과오와 한계를 지적하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당시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여 국민적 좌절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왔던 장본인이다. 오늘날 더욱 기승을 부리며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정부에서 도입되었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남북의 신뢰를 흔들고, 전 국토를 개발대상으로 만들어 부동산 폭등과 불평등을 심화시킨,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터에 군대를 파견한 당사자는 노무현 정부였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합의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개헌만 빼고 다할 수 있는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의 자구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극우 검찰독재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은 문재인 정부다."
한마디로 구한말 이래 누적된 인적 물적 기반과 구조의 재구성 내지 혁파 없이는 설령 민주개혁을 표방하는 정권이 집권에 성공한들 상기에 언급된 '악순환의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보이는 모습은 민족의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채 지난 백여 년을 유영하면서 누적해온 한국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반영이자 반민족매판의 기득세력이 깊이 뿌리내린 잔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분노하고 심판하여 검찰과 사법의 개혁을 이루는 일은 분명코 중요한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에 좌표를 제시하고 희망을 찾아가기에는 참으로 역부족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제3 세계권에서 어렵게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업을 일구어내어 세계인들에게 모범적 발전국가로 주목을 받는 한편, 미국과 쌍벽을 이루며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노동의 강도가 강장 극심한 사례로 거론되는 등 상위계층 중심의 과두적 사회이며 출생률이 0.7이하로 떨어지면서 인구 절벽으로 장래에 국가의 소멸이 예측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매우 극심한 양가적 대비이다. 이미 공칭 GDP 3만 불(구매력 지수로는 5만9000불)이 넘어선 지 오래이건만, 성숙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논하기는커녕, 후진국 형의 민생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정치권의 일상적 용어로 등장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기본적 조건과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결핍국가임을 반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고사하고 야권의 일부에서 여전히 양적인 신성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칭 GDP 5만 불에 세계5대 경제대국 등을 운위하고 있다.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가계 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운데 전 인구의 20%인 천만 명 가량이 천형적인 절대빈곤 속에 갇혀 있고, 젊은 세대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한 체 ‘이번 세상엔 망했다’고 외쳐대는 상황에서 GDP 5만 불이 무슨 소용이며 허울뿐인 경제 5대 강국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미 일단의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기후와 생태 등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탈성장을 선언하면서 기존의 경제학과 정책분야에서 관행적 평가로 삼았던 양적 성과와 효율이라는 기준을 지속과 회복 그리고 삶의 질로 대체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추구해가야 할 방향은 GDP 성장 또는 경제강국론이 아니라, 사회현안의 해결을 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출생률을 제고하여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능력중심에 따른 극심한 경쟁적 개인주의가 아니라 함께함에 기초한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축소시키고 생태 및 기후 환경과 개별적 삶 그리고 사회적 제 조건에서 포용 및 회복과 지속의 조건을 형성해 가는 일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굴하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해 갈수 있는 역동적 기회가 주어지는 ‘모두에게 공정한 열린 사회’이어야 하며, 이에는 혁신을 동반하는 참여와 공유, 배분과 순환의 고리가 핵심 내용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기본사회라는 전략을 실천 가능한 정책의 수준에서 가열차게 꾸준히 추구해 가야 하며, 기본사회의 프로그램에는 기본소득, 기본금융(자산), 기본주거, 평생교육 등이 포함되어 시행되고 확장되어야 한다.문제는 총선 이후에 전개될 한국사회의 실력과 모습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모든 개인들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 복지라는 관점에서 독일식 포용적 안전사회 또는 북유럽이 추구하는 인민의 집으로서 역동적 복지국가를 거론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발기인이자 공동대표로 8년을 수임한 필자로서는 매우 익숙한 개념들이다. 19세기말 전기의 발명으로 대규모 제조업이 형성되면서 노동자 조직이 강력해지고 사회주의 사상이 팽배해지면서 사회가 불안해지자 이를 통제하고 무마하기 위하여 도입된 독일의 사회보험 제도는 전후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인간 존엄을 중심으로 깊이를 더하고 메르켈의 기민당에 의해 사회 포용의 폭을 넓혀 갔다. 1930년 이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스웨덴의 사민당이 중심이 되어 비그포로스와 뮬레르 등 걸출한 인물들의 선의적 경쟁, 인구문제를 중심으로 사회공학을 정책으로 안착시킨 뮈르달 부부의 노력, 렌-마이드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산업혁신 정책 등으로 북유럽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성공사례는 제2차 산업혁명과 이후 서비스업이 확장되어 여성이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조건과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사회경제적 정책이 결합된 시대적 배경을 삼고 있었기에, ICT로 통칭되는 정보통신 산업이 주도하고 인공지능과 로봇 등 지식경제(혹은 4차 산업)가 본격화 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 경험의 사례로서 참조할 수는 있겠으나, 복사하여 적용하기에는 어려움과 무리가 따른다. 초연결사회의 인테넷을 기반으로 도입되는 인공지능과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는 로봇 산업 등으로 오늘 이 시점에 혁신첨단 기술산업의 메카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 지역조차 수만 명의 관리직과 개발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실직을 당하고 있다. 미국 사회가 낮은 실업률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며 불안정한 소위 프레카리아트라는 비정규직의 확장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집단서방의 사회경제 모습에 대하여 파이낸스-타임즈(FT)를 대표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금융경제평론가로 평가받는 마틴 울프는 작년에 출간된 <The Crisis of Democratic Capitalism>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1달러 1표’로 전락하고 있는 서구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조만간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민주주의의 본질인 ‘1인 1표’를 회복하지 못하면, 서구사회는 군사물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체제 경쟁에서 중국(그리고 러시아)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또한 스텐포드 대학의 명예 교수이자 <The market power of Technology>의 저자인 모르드개 쿠르츠(Mordecai Kurz) 박사는 인류 대부분의 일상을 지배하는 정보통신 기술이 거대기업에 의해 독점되고 이를 소수의 소유주 이익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민주주의 일반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198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소수의 기술 지배적인 기업이 소비자와 노동자 등 사회 전반에 희생을 강요하면서 해당 부문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경제로 변모했습니다. 그리고 영구적인 시장 지배력과 함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일종의 정치 권력으로 등장합니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의 2024년 3얼 15일자 칼럼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한계에 봉착한 서구의 정당중심 선거제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대체하기 위하여 집단지성이 가능한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가 가능한 '시민권력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민의회를 도입하여 선거법 개정과 주요 현안을 숙의의 과정을 통하여 지혜를 모으고 합의를 모아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 냈으며, 프랑스에서도 기후변화와 노란조끼 사태를 대응하기 위하여 전국민 대토론회를 거쳐 무작위로 선정된 150 명의 일반시민회의를 소집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가능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인류의 모든 지혜를 누적시키며 발전해온 과학기술은 물과 공기와 같이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는 공유재로 받아 들어야 한다. 적정한 IP의 도입 등 혁신의 동력과 계기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과학기술의 성과와 혜택은 개별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해당 국가공동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류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져야 마땅하다. 인류 대부분의 일상을 지배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특성상 거대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소수의 소유자 이해 중심으로 운용한다면 결국 인류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모두의 참여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지점이다. 사회경제의 영역에 있어서도, 위의 마틴 울프가 언급하였듯이,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초래한 자본과 사적 소유 중심의 운용에서 사회적 책임과 소비자인 일반국민적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하며, 시장기제의 활력과 균형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운용의 성과가 공정하게 배분되고 순환되고 공유되는 방식으로 유도되어야 한다. 이에 역동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기반의 기업중심 활동에 더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상생과 연대를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의 과감한 확장이 바람직하다. 미래의 경제에는 협동조합을 포함한 제3 섹터영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필수적인 것일 것으로 판단된다. 2024년 현재 한국사회는 과시적 능력주의와 지나친 경쟁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결핍의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나눔의 부재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과 안전망의 강화가 아니라 축소를 지향하면서 1% 상층 부자들에게 감세를 강행하는 윤석열 정권은 현실파악 능력이 부재한 청맹과니 내지는 두뇌가 없는 좀비 집단으로 보여진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과학기술의 혜택을 공유하고 사회경제의 운용 성과를 공동체 모두에게 배분하는 선순환적 기반을 준비해 가면서, 새로이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계형 일자리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여 꿈을 실현하고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공정한 기회의 열린 마당을 열려야 한국사회의 최대 현안 출생률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필자가 새로이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작성한 ‘정치경제학 초고’에서 제시한 인간의 일반적인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는 내용에 담겨 있으며, 20세기에는 케인즈가 쓴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필자는 확신하건대, 오는 총선에서 대한민국의 현명한 유권자들이 목불인견 파렴치한 윤석열 집단을 추상같이 통쾌하게 심판할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총선 이후에 전개될 한국사회의 실력과 모습이다. 복수혈전과 같이 일단의 무리인 법비 집단을 처벌하고 검찰개혁을 이루는 것을 넘어서, 정치의 구도와 제도에 새로운 패러다임 즉 시민주권의 시대를 준비하며 유례없는 위기와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여 빈틈없는 미래비전과 기치지향의 정책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중심에는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꿈과 가치있는 삶의 실현을 위한 슬로건 ‘아침이 설레는 삶’이라는 지향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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