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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명이 단돈 50만원도 못 빌리는 현실, 왜 이렇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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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수백만명이 단돈 50만원도 못 빌리는 현실, 왜 이렇게 됐는가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금융배제 문제의 해법 찾기
지난해 이맘때쯤 금융위원회는 '소액 생계비 대출' 시행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제도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은 서민금융진흥원을 통해 50만 원을 빌릴 수 있고 이자를 6개월 이상 성실하게 납부하면 50만 원을 더 빌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출 금리는 터무니없게도 대부업체 평균 대출금리 수준을 웃도는 연 15.9%였다. 거기에다 대출 조건도 까다로웠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신용평점이 하위 20%에 속해야 했고 연소득은 3500만 원을 넘지 않아야 했다. 또한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를 직접 방문하여 대면상담을 한 다음, '자금용도 및 상환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이렇듯 금리도 높고 대출 조건도 까다로웠지만 50만 원의 대출을 받기 위한 사람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상담 예약을 받기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예약자 2만5000여 명이 몰려 전산이 마비될 정도에 이른 것이다(KBS 뉴스, 2023.3.22.).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말까지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은 사람은 13만2000명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소액 생계비 대출' 총 규모는 915억 원이었고,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은 58만 원이었다. 대출 재원은 은행권 기부금으로 마련되었는데, 은행들은 2024년과 2025년에도 각각 500억 원씩 추가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첫째, 단돈 50만 원을 제도 금융기관에서 빌리기 어려운 사람이 우리 사회에 두껍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개인 신용평가 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을 기준으로 신용 점수가 700점(1000점 만점) 미만인 사람은 800만 명가량이다. 이는 전체 평가 대상자의 16%를 차지한다. 이들이 제도 금융기관의 대출 문턱을 넘어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긴급한 자금 수요가 생길 때 대부업체나 사금융을 이용해야 한다. 둘째, 대출 재원이 정부 재정이 아니라 금융기관 기부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정책금융상품이라는 모습을 띤다. 그렇지만 그 재원을 정부 출연금이 아니라 기부금에 의존한다는 면에서 소액 생계비 대출을 진정한 정책금융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서민금융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서민금융진흥원 재원은 주로 금융기관 기부금, 복권 기금, 휴면 예금 등에서 나온 것이다. 서민금융의 운영 재원을 재정으로 마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의 역할이 소극적이고 간접적이며 제한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당연히 서민금융 재원은 금융배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그 규모가 턱없이 모자라고 안정성과 지속성에도 문제가 있다. 셋째,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의 대출 금리가 연 15.9%로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취급하는 다른 상품들도 금리가 높은 편인데, 예컨대 서민금융진흥원이 100% 보증하는 '최저 신용자 특례보증' 상품이나 '햇살론 15'의 대출 금리는 대부업 대출의 평균금리 수준에 가깝다. 금리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소액 생계비 대출을 실행하는 서민금융진흥원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터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2016년에 휴면예금관리재단(미소금융중앙재단)을 모태로 대형 은행 중심의 금융기관들이 출자하여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한 기관이다. 이 기관은 미소금융, 햇살론, 국민행복기금 등을 취급한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금융위원회 산하의 기타 공공기관으로서 공적 성격을 갖지만 대형 은행들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직의 성격이 서민금융진흥원의 운영 행태에 영향을 준다고 봐야 한다. 곧, 서민금융진흥원은 순수한 정책 논리를 따르기보다 시장 논리를 우위에 두면서 정책 논리를 감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금융상품에 고리대 수준의 금리가 설정되고 매우 엄격한 회수 가능성 기준이 도입된다. 그 결과 정책금융상품의 대출 대상에서 최하위 신용 등급은 제외된다. 예를 들어 국회 예산정책처의 '금융 공공기관의 정책금융 운영 현황 분석(2022)' 자료를 보면 서민금융진흥원 대출 대상자의 대부분은 신용등급 10등급 가운데 6~7등급에 몰려 있다. 제도 금융기관 이용 여부를 가름하는 경계선이 바로 이 등급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듯 서민금융진흥원은 정책 기관으로서는 한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서민금융진흥원이 정책 서민금융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서민금융진흥원이 취급하는 금융상품마저 올해에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민금융진흥원이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업무계획(안) 자료에 따르면 올해 햇살론을 포함한 정책 서민금융 공급 목표액은 5조7800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6조8300억 원보다 1조 원 넘게 줄어든 규모이다. 물론 복권 기금 운용계획이나, 경제정책 방향의 변경으로 서민금융 공급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서민금융진흥원의 설명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서민금융 수요가 대규모로 존재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기능마저 축소한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방향이다. 오히려 현재는 금융배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금융 배제 문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후유증

그렇다면 일부 계층이 제도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데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거나 평균 수준보다 더 높은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금융배제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특징을 나타내는데, 이에 대해서 먼저 보기로 하자. 첫째, 금융배제는 특정한 시기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특정한 시기란 1980년대 후반 이후를 말한다. 미국, 유럽 나라들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의 외환 위기를 계기로 금융배제 현상이 두드러졌다. 금융배제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중반 무렵이다. 선진국들에서 금융배제 현상이 초기에는 지점 폐쇄에 따른 접근성 제한과 같은 공간적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지리학자들이 이에 관심을 보였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네오 그람시언) 지리학들인 레이션&드리프트(Leyshon & Thrift)가 1990년대 중반에 쓴 논문에서 금융배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금융배제는 화폐자본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 상황에서 발생한다. 사실 1980년대 이전에도 금융배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의 금융배제는 축적된 화폐자본의 부족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금융이 가장 풍부한 시기에, 금융기관들이 대출 대상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려고 영업력을 집중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오늘날의 금융배제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금융배제는 신용할당과도 다르다. 신용할당이란 은행이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차입자에 대해 대출을 거절할 때 생긴다. 이 신용할당도 화폐자본의 부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금융배제와는 다른 현상이다. 따라서 신용할당의 해법인 이른바 차입자와 대출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의 해소만으로는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셋째, 금융배제와 약탈적 대출이 동시에 나타난다. 금융배제는 일부 계층을 제도 금융에서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약탈적 대출은 저소득 계층까지 금융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금융배제와 약탈적 대출은 서로 모순되는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금융배제와 약탈적 대출은 화폐자본이 과잉인 상황에서는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도 금융기관이 일부 사람들을 밀어내는 동안 그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금융업이 발달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의 대출은 대체로 약탈적인 고리사채 형태를 띤다. 넷째, 시장 중심 금융제도를 따르는 나라들의 금융배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금융제도는 보통 은행 중심 제도와 시장 중심 제도로 나뉜다.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은행을 통해 이뤄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에 비해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주식, 채권 발행 등 자본시장을 통해 이뤄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영국과 미국은 시장 중심의, 그리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 특징을 나타낸다. 물론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가 점차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제도가 여러 면에서 은행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이행했다. 그런데 대체로 영미식 시장 중심 금융제도에서 금융배제 문제가 더 심각하게 전개된다. 다섯째, 대형 금융기관들이 금융배제를 주도한다. 금융배제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대형 금융기관들이 주도한다. 금융 구조조정 이후 인수합병을 통한 금융기관 대형화와 겸업화 추세는 여러 나라들에서 공통적인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덩치가 커진 금융기관들은 경쟁 압력의 증가로 이윤의 원천을 소비자 금융 시장까지 넓혀 갔다. 여기에는 대기업들이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하기 시작했다는 사정도 있었다. 대형 금융기관들은 소비자 금융 시장에서 부유층 중심의 영업 전략을 펼쳤는데, 이는 금융배제의 확대로 이어졌다. 여섯째, 금융배제는 가계 부채의 증가와 관련을 맺으면서 증가한다. 가계 부채는 자산(부동산, 주식) 구입을 늘리려는 부유층의 차입, 미래의 임금소득을 담보로 삼은 저소득층의 교육비, 의료비, 긴급한 생계비 차입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부채의 증가를 통해 경기를 유지하려는 정부 정책은 가계 부채 증가에 부채질을 한다. 이 경우를 벨레피오레(Riccardo Bellofiore)라는 학자는 개인에게 떠맡긴 케인즈주의(privatised Keynesianism)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곧, 정부가 재정 지출의 확대가 아니라 개인 부채의 증가를 통해 경기 확장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들은 이러한 금융배제 현상이 나타난 이유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기의 금융 규제완화, 금융 자유화와 그에 이은 반복적인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1970년대 초에 미국은 '닉슨 선언'을 통해 금-달러 교환 정지를 선언한다. 그 이전에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규모가 달러 발행량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달러를 보유한 외국의 중앙은행이 이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 미국은 이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는 달러 발행에 대한 족쇄가 사라지면서 실제로 달러의 발행량과 유통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미국은 늘어난 달러가 다른 나라들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자본이동 자유화 요구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로 흘러 들어간 달러가 자본으로서 운동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기업 주식이나 자산을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했고 이자율이나 환율도 자유롭게 움직여야 했다. 이는 금융자유화 요구로 나타났다. 달러 발행·유통량이 늘어나고 자본·금융자유화가 이뤄지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매킨지 보고서와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80년의 세계 총생산은 11조 달러, 세계 총금융자산은 12조 달러였다. 이것이 2010년에는 각각 63조 달러와 219조 달러로 늘어난다. 30년 사이에 세계 총생산 대비 세계 금융자산 총액이 약 1배에서 3.5배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금융의 팽창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자본·금융 자유화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금융위기가 크게 늘어난다. 예컨대 미국은 1980년대 초반의 저축은행 위기와 1980년대 후반의 은행 위기를 겪었다. 영국이나 유럽 국가들도 1980년대에 은행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북유럽 국가들과 멕시코가, 1990년대 후반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환율 위기에 이은 금융위기를 겪었다. 세계은행 소속의 연구자들인 할락&슈무클러(Halac & Schmukler)는 금융위기 이후에 대체로 금융자산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통상 인수합병을 통한 금융구조조정이 이뤄지는데 그 결과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진전된다. 이렇게 대형화한 금융기관들은 업무비용 절감을 추진하면서 수익성 중시의 영업 관행을 굳혀 나간다. 또한 대형 금융기관들은 금융위기 이후에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복지 수준이 하락한 현실을 배경으로 부유층 개인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금융기관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마케팅 전략을 추구한다. 그 결과 제도금융에서 배제된 계층이 대규모로 형성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위기 이후 대체로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금융배제 계층이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 고물가 등으로 상환 능력이 떨어지며 빚을 갚지 못하는 서민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금리 연 15.9%)을 당일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의 연체율은 11.7%로 집계됐다. 지난달 17일 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주요 나라들은 금융배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융배제는 신자유주의 시기 이후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현상이다. 금융자유화 이후 금융배제의 대상은 주로 청년, 일시적·잠재적 실업자 등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력의 손실을 의미한다. 노동력의 손실은 장기적인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나라들은 금융배제를 어느 정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쫓긴다. 실제로 여러 나라들은 금융배제에 정책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그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국가가 직접 나서서 대응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영국은 금융배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기구인 '사회배제국'을 설치하고 '금융 포용 펀드'를 만들어서 금융배제 문제에 대응한다. 프랑스는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는 '금융자문위원회(CCSF)'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서 금융배제 문제에 대응한다. 미국은 재무부 출연으로 지역개발 금융기관 펀드(CDFI)를 만들어서 지역은행, 협동조합, 비영리기관을 통해 금융배제 문제에 대응한다. 둘째, 독일, 네덜란드 등 금융배제 문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나라들은 금융업 협회의 자율적인 헌장이나 실천 강령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금융배제 문제에 대응하도록 장려한다. 이와 나란히 이 나라들은 기존의 지역·서민금융기관을 활용하여 금융배제 문제에 대응한다. 셋째, 비주류 금융기관을 통해 대응하는 유형이다. 유럽위원회는 금융 서비스 제공 기관을 주류 기관과 대안 기관, 그리고 이윤 지향의 영리 기관과 사회 지향의 비영리 기관으로 나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를 때 대형 상업은행들은 주류의 이윤 지향 영리 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러 나라들에서는 금융배제에 대응하는 기관으로 상업은행이 아니라 사회 지향적인 비영리 대안 금융기관을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사회 지향적인 비영리 금융기관이라 할 수 있는 (지역) 공공은행을 설립하여 금융 배제 문제에 대응하려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편 금융배제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기구들의 관심을 받는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배제를 다루는 여러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기구들은 금융배제에 대한 대응으로 금융포용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금융포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다. 2009년 G20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는 저소득 계층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금융포용 전문가 그룹(FIEG)'이 구성되었다. 2010년 6월 G20 토론토 정상회의는 혁신적 금융포용을 위한 원칙이 채택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열린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는 금융포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출범시켰다. 2017년 G20 함부르크 정상회의에서는 <금융포용 행동 계획(FIAP)>이 채택되었다. 이 계획은 금융 관련 국제기준을 마련하거나 금융 부문을 평가할 때 금융포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 금융 소비자 보호와 금융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금융배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전에는 대부업 합법화, 서민금융기관의 소액 신용대출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완화 정책을 폈는데 이러한 정책들은 사실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고리사채를 합법화해줌으로써 그 피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부 주도로 서민금융상품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2016년에는 서민금융진흥원을 출범시켜 이 기구가 서민금융상품을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금융배제 대책의 실행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대형 은행들이 주요 주주인 주식회사 형태의 서민금융진흥원이 담당하고 있다. 물론 서민금융진흥원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구이지만 은행들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온전한 정책금융을 담당하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서민금융진흥원의 운영 재원마저 기부금, 복권기금, 휴면예금에 의존하고 있다.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재정 투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주요 나라들에 대비한 우리나라의 금융배제 대응은 굉장히 소극적이고 전시적이며 따라서 당연하게도 금융배제, 고리사채, 불법추심, 과중채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금융배제는 고리 사채, 채권 추심, '신용불량자' 문제 등에서 보듯 사회적 긴장 수준을 높인다. 또한 금융배제는 노동력의 손실을 가져오고, 복지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 경제발전에도 걸림돌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국가는 역량을 동원하여 금융배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가는 중재자와 법 제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는 약탈적 대출을 제한하는 법,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공공적 역할 부여하는 법 제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청년 학생이나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계층에 대해서는 제도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어야 한다. 소득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더라도 현재 지고 있는 부채가 너무 많아서 이자를 사실상 감당할 수 없는 계층에 대해서는 부채 재조정이나 탕감, 회생과 같은 '법적 영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할 능력을 잃은 계층에 대해서는 사회정책 차원의 채무 탕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복지를 늘려서 의료비, 학비 등의 긴급한 자금 수요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대책은 금융배제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을 확보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여러 정치세력과 정부는 금융배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훨씬 근본적인 구상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은 저신용자(신용 7~10 등급)는 230여만 명이고 이들이 받은 대출의 합계 금액은 23조 원가량이다. 이들을 정책금융으로 흡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이른바 양적완화를 통해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는 정책을 편 바 있다. 여기에서 착안하여 일부 금융 활동가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양적완화'를 주장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금융기관을 위해서 했듯이 일반 국민을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자는 데에 있다. 2013년에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학생 대출 공정성에 관한 은행 법'을 제출한 바 있다. 이 법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저금리로 빌려줄 학자금을 중앙은행이 대는 돈으로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법 제75조는 정부가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은행에 국채를 인수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국은행의 국채 인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법규상으로는 어쨌든 정부는 한국은행에 국채를 인수시키는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사문화한 이 조항을 살려서 정부는 국채를 한국은행에 인수시키고 그 돈을 바탕으로 저소득, 저신용 계층에 대한 정책금융을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금융을 전달하는 체계도 공공기구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 형태는 (서민금융) 공사가 될 수도 있고 과거 국민은행과 같은 서민금융 전담 은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지역) 공공은행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지역) 공공은행 설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공공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단체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형태의 공공은행의 설립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단돈 50만 원을 제도 금융기관에서 빌릴 수 없는 계층이 수백만 명이 존재할 만큼 우리나라의 금융배제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고 정책금융 전달체계도 획기적으로 바꾸는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도움 받은 자료>

금융위원회, <불법사금융 피해를 입지 않도록 「소액생계비대출」을 신청하세요>,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3. 3. 21.

금융위원회, <소액 생계비 대출 13.2만 명에게 915억원 지원>,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3. 12. 26.

서민금융진흥원, <2024년 업무계획(안)>, 국회제출자료, 2024.

국회 예산정책처, <금융 공공기관의 정책금융 운영 현황 분석>, 2022.

KBS, <KBS 뉴스>, 2023.3.22.

코리아크레딧뷰로(KCB), 홈페이지, //www.koreac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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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email protected])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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