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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 계속 실패하는 악순환에 빠진 철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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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 계속 실패하는 악순환에 빠진 철도 정책 [철도 유감] ④ 신자유주의가 떨구고 간 곪디 곪은 종기

2024년에는 KTX가 스무살이 된다. KTX 개통 20주년은 한국 철도 발전의 상징적 의미를 갖지만, 한국 철도가 처한 현실을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철도는 기술적, 정책적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받지만, 그 이면엔 '민영화'의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 따라 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KTX 노선을 떼서 민영화하겠다는 구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SRT를 새로 설립해 '같은 노선 위를 달리는 두 열차 운영 회사'라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민영화의 우회적 물꼬를 텄다.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한 데 이어 관제를 분리하려는 시도 역시 꾸준히 진행됐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기후 위기 시대 서민의 발이 되고 있는 전국의 철도 노선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KTX 20주년, 감격스런 축하도 의미 있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현실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KTX 20주년을 맞아 [철도 유감]을 기획해 글을 싣는 이유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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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유감]① 선거철이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철도 지하화는 '미친 짓'이다

[철도 유감]② 역대급 삽질 '철도 지하화'에 80조? 그 돈이면 전국 철도망 하나 더 깐다

[철도 유감] ③ KTX 안전을 위해 상하분리의 덫 걷어내자

북위 37° 34′, 동경 126° 59′를 중심으로 그 반경 50KM 안팎에 사는 인류의 상당수는 평일 아침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 싸인다. 잘 조화된 매스게임이거나 거대한 자연 현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소용돌이의 실체는 출근길이다. 기껏해야 길이 200미터가 조금 넘고 폭이 10여미터 남짓한 공간을 꽉 채워 대기하던 사람들은 직육면체 깡통의 문이 열리면 작은 틈을 찾아 쇄도해 들어간다.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이토록 좁은 공간에 몰아 넣을 수 있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목적을 가진 수 천 명의 사람들을 한날한시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이 힘이야 말로 현대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원천이다. 금강하구둑에서 펼쳐지는 가창오리 떼 군무는 수천수만 마리의 새가 만들어내는 카오스 속 조화에 넋을 잃게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거대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평일 아침 경의중앙선 왕십리역 승강장이나 신도림역 환승 공간, 그리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강북구간, 건대입구역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강남방면 7호선을 타면 된다.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보고 싶다면 김포 골드라인이나 9호선도 있다. 더구나 이것은 새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다. 모빌리티 이론의 대가 존 어리(John Urry)는 인간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의 많은 양상이 어떤 의미에서 '이동' 중이거나, 집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제 집은 행복한 쉼터가 아니라 다음의 이동을 위한 대기 공간으로 변했다. 이동은 인간 삶 그 자체가 되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을 가든, 2달 전 예약된 병원 진료에 가든,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사면받기 위해 교회에 가든, 팀장에 깨질 각오를 하고 밤새 만든 보고서를 챙겨 출근을 하든 우리는 이동해야 한다. 또 이런 이동을 위해서는 인간은 이동수단에 올라타야 한다. 모빌리티는 이제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계급적인 것으로 진화했다. 모빌리티를 정치학 관점에서 접근했던 미미셀러(Mimi Sheller)는 현대 사회의 이동은 차별과 양극화를 내재한 채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누가 이동하고 무엇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결정 짓는 거대한 불평등이 존재할 때, 이동이 에너지 소비에 기초한 권력의 행사일 때, 언제나 '이동 특권층’들은 에너지를 과잉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미미셀러)

미미셀러가 말하는 과잉 소비 에너지를 현재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본다면 에너지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소비하는 연료로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자산이 대단히 편향적이고 일방적으로 한 곳,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어느새 수도권 교통의 핵심은 강남 접근성이 되어 버렸다. 김포에서도 인천에서도 고양과 일산에서도 모든 길은 강남을 목적지루 두고 싶어 한다. 동탄, 용인, 안성, 평택 같은 서울 남쪽 도시도 마찬가지다. 강남을 중심에 놓고 일정 거리를 불록화 시켜 색을 칠해보면 단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색색의 동심원들은 결국 소득 수준을 나타낸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강남에서 멀수록 더 많은 고생과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강남과 수도권 사이, 수도권과 지역 사이의 간극은 차이 일까 차별일까?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는 양극화라는 이면도로로 진입한 지 오래다. 경제적 격차는 교육과 생활환경, 문화 격차를 만들어냈고 지역 격차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 이 격차는 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어떤 격차들은 사람들이 차이조차 느끼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사람들이 어떤 지역에서는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린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그나마 시달릴 만원 버스나 기차조차 존재하지 않았거나 설령 존재했더라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수서에 고속철도역이 생겼는데도 오랜동안 지방 도시와 수서를 잇는 고속 열차가 운행되지 않았고 최근에야 생색내기로 몇 편 달리는 현상도 자연스러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네트워크는 기능하는데 관료들의 고집이 시민들의 편익을 무시한 결과이다. 관료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이 역시 지독한 지역 차별의 다양한 종류 중 하나일 것이다. 모빌리티의 특성은 거대 인프라를 전제로 한다. 한 번 자리 잡으면 세기를 넘어 그 체제가 유지된다. 인프라는 그것이 포함한 도시와 지역의 생활 패턴을 규정해버리고 바꾸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불균등과 불평등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 KTX가 20년이 되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고속 열차의 등장은 철도는 물론이고 한국 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내기도 했다. 서울과 주요 도시 간 이동 시간 대폭 단축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성공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이 성공은 고속 열차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발현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이다. 이 당연함 위에 전체 철도망의 유기적 발전을 통한 철도 수송분담률 확대가 동반되어야 했다.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은 전체 망의 호환성과 조화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도와 다른 교통수단이 조응하여 철도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정책이 진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KTX 20년 동안 나란히 진행된 국토부의 철도 정책은 KTX와 한국 철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국토부의 20년 철도 정책은 철도공사 코레일의 경영효율화를 위한 경쟁체제 수립과 유지에 몰두했다. 이러다 보니 미래 지향적 대한민국 교통정책이라는 큰 그림이 아니라 철도공사가 수익을 얼마나 많이 올리는 것인가가 매년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와중에 코레일의 주 수익원인 고속철도 운영을 쪼개 SR을 만들었다. 국토부는 경쟁체제란 매로 코레일을 채찍질해 경영효율을 이뤄내겠다고 장담했지만 국토부가 든 매는 사랑의 회초리가 아니라 쇠몽둥이였다. 고속철도 회사가 갈라지자 차량 운영 효율성도 떨어지고 지역 고속철도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했다. 일반철도 기능 강화는커녕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주기적으로 밝히는 미래 철도 계획에는 자신들의 철도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이 깔려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신자유주의가 떨구고 간 곪디 곪은 종기가 커다랗게 퍼져있다. 문제는 철 지난 경제학 이론에 근거한 빈약한 논리와 정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토부의 철도 경쟁체제 정책은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국토부가 기존 철도 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20년 동안 일관된 신념으로 추구해온 자신들의 정책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 계속 실패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결계에 빠져 버렸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이끌어 간다는 관료들의 무한한 자신감이 관료 과두 지배체제와 만나면 대통령도 국회도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아성이 된다는 것을 지난 역사는 보여줬다. 총선이 끝났다. 거대 양당은 지난 선거 때 앞 다투어 철도 관련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공약들은 노골적으로 거대 토건 개발로 "당신들의 집값을 올려드릴게요"라는 시그널을 담아냈다. 이 공약들을 찬찬히 정리해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수도권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다. 철도 지하화 공약은 그 선두에 설 것이고 국토부는 앞장서서 깃발을 들것이다. "공정한 차별"이 숭배되는 한국에서 모빌리티의 불균형은 배제의 방식을 더욱 넓고 정교하게 뿌리내리게 한다. 대규모 토건 사업의 종착역은 지역을, 장애인을, 세대를, 빈부를 갈라 차별하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모른다.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역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몰리고 있고, 인구절벽 밑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인들은 오늘만 살 것 같이 일하고 있다. KTX 교통 혁명 20년을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이유다. KTX 20년, 성과는 품에 안고 문제는 극복하여 한국 철도가 더욱 탄탄한 공공철도로 거듭나는 반전의 역사를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문화제조창 중앙광장에서 열린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사업 착공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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