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통치되고 있는 것일까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고 2년이 지났다. 윤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이뤘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총선에서 역대 보수정부 중에 가장 큰 패배를 당했다. 그럼에도 '국정 방향은 옳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변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 황우여 비대위원장 임명 등도 그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원내대표까지 이철규 의원이 차지하게 된다면, 총선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스타일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점점 더 하락하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2년간 그토록 낮은 지지율을 거듭하고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변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왜 국정 방향 자체는 옳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왜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자유를 그렇게 많이 말하는데, 민주주의는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윤석열 정부는 아무렇게나 통치되거나, 아예 통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엑스포 유치 실패 등에서 보듯이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에서 실패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운이 없는 일이거나, 전 정부가 잘못 세팅해 놓은 일이거나,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문제라고 여긴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그래서 이것은 '부주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일관성 있는 국정 기조이자 통치 신념이다. 이것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이 통치되었던 박근혜 시기와는 또 다른 형태의 국가 관리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면,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에서 그러하다. 윤 정부에는 적극적인 경제정책도, 재정정책도, 산업정책도, 복지정책도 없다. 할 줄 몰라서 안 한다기 보다는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의외의 곳에서 적극성을 보인다. 당내의 이견을 배제하고, 의회주의를 배격하고, 사법권력으로 야당과 노조를 공격하고, 정부가 지원한 사업들에서 조그만 부정이라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왜 그러는 것일까?왜 박정희가 아니라 이승만이었나
한 가지 실마리는 윤석열 정부가 앞선 두 번의 보수정부와는 달리 박정희 신화를 폐기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보수의 복고적 비전은 박정희였다. 그런데 이 정부는 박정희를 버리고 보수의 상징으로 이승만을 앞세웠다. 그것은 이 정부의 여러 정책 기조와 사실 잘 맞아 떨어진다. 박정희는 미국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미국도 박정희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달랐다. 그는 때로 미국의 뜻을 어겨가면서까지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이것은 이승만의 전기 작가이자 미국의 정치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의 견해다). 박정희는 불과 4년 전에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북한과 7.4 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하면서 적대적 공존을 추진했다. 이승만은 달랐다. 그는 '공산·전체주의'와의 타협 없는 대결을 선호했다. 윤 대통령도 그러하다. 이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전체주의 진영과의 전쟁터다. 미국의 편에 단호히 서야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국가주도의 성장 정책이라는 점에서는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모독이었다. 기본적으로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때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국가란 그 선택이 공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외에 다른 할 것이 없다. 만약 국가가 기업의 일을 대신하려고 한다면 거기서는 비효율과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정경유착이 발생했는가) 이런 부정부패를 일소할 의무가 법을 집행하는 엘리트들, 곧 검사들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유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엄단을 약속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자유'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통치는 아무렇게나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는 윤 대통령이 경제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인생의 책'으로 27년이나 끼고 다녔다는 프리드만의 <선택할 자유>에 따라 통치되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최소화하며, 카르텔을 척결할 것, 모두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리드만의 요구 사항들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80년대에 한국에 이식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최종 버전, 혹은 세계적으로는 이미 폐기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후진적 재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프리드만은 최소한의 소득보장제도인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사실 모든 복지를 폐지하고, 이것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김종인과 유승민은 이점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이 프리드만을 반만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스승은 프리드만 뿐은 아니다. 프리드만은 시장의 자유에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국가의 통치에 대한 많은 부분은 사실 그의 스승격인 하이에크가 제시한 바가 있다. 하이에크는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유, 곧 사적 권리 대한 침해를 일삼는 행위를 막기 위해 의회주권에 맞서는 '법 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이에크의 '법치주의'는 국가가 자유(사적 권리)를 해치는 일체의 세력을 물리침으로써, 자유를 수호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법치는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부패와 모든 형태의 경제 범죄를 척결하고, 경제적 교환 과정에 안정적인 틀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어디서 많이 본 말과 풍경이 아닌가?선택할 자유는 누구에게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사법고시 9수를 했다. 그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에 가는 것까지는 '타고난 머리'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9수를 할 수 있으려면 집안의 도움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9수를 하게 된 이유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느라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이야기에 따르면 후배들을 이끌고 산으로, 술집으로 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결국 윤 대통령이 9수를 '선택'할 수 있었던 자유는 그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큼 머리 좋은 사람도 아버지가 대학교수가 아니었다면, 9수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사시 9수는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8번 실패해도 9번째 일어날 수 있는 넉넉한 집안 사정을 증명한다. 물론 어떤 이들과 조금의 차이는 있다. 3루에서 홈으로 들어 올 때, 누군가는 천천히 걸어 들어오지만, 누군가는 희생플라이에 전력질주를 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도 전력질주로 홈 플레이트를 밟았을 것이다. 그래서 노력할 자유란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윤석열이 2루나 3루에 도착할 때까지, 아웃카운트를 8번이나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누구의 자유이고, 누구의 공정일까?※ 이 글은 <내전, 대중혐오, 법치>(피에르 다르도 외. 정기헌 역. 2024. 원더박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