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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술자' 尹, 노동자를 '조삼모사' 원숭이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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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법기술자' 尹, 노동자를 '조삼모사' 원숭이로 보나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윤석열의 '노동약자보호법'에 도사린 이데올로기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the Great Degeneration)>이란 책에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법기술자의 지배'(the rule of lawyers)로 타락한 현실을 개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새로 법률을 만들어 '과도한 규제'와 '부패한 제도'를 양산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서 '법의 지배'가 '법기술자의 지배'로 타락한 대표적 영역이 노동 문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등 무수한 노동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노사법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인 '노동약자보호법'

법기술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노동법 조항을 개정하고, 그 해석을 보완하며, 나아가 적용을 확대하려는 사회적 대화와 정치적 논의를 조직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이런 저런 논리를 만들어 현행 법제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우기면서 자꾸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노동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논리의 통합성을 사회적 통합성보다 중시하는 이들의 논리에서 핵심은 노동시장 상층에 적용하는 법률을 노동시장 하층에 적용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시장 하층을 위한 법률을 따로 만들어 법제도에서 상층과 하층을 분리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노동시장이 분단되어 있다면서 노동법도 분단시키자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분단과 양극화를 빌미로 제도적으로 '노동법의 분단과 양극화'를 노리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평생을 법기술자로 살아온 이력에 걸맞게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법 분단과 양극화'의 선두에 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민생토론회에서 "거대 노조에서 소외돼 있는 미조직 비정규 근로자"를 위해 '노동약자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노동시장 양극화' 빌미로 '노동법 양극화' 추진

대통령은 '노동약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의 토론회 발언에 따르자면 "노동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동약자의 대척점에 "이념으로 무장한 기득권 노조 카르텔"을 내세웠다. 윤 대통령의 '노동약자보호법' 구상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등 기존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을 이른바 '노동약자'에게 확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노동약자보호법'의 배후에는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으로 영구히 분리하려는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 분단체제'를 완성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의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적용을 거부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진심으로 노동약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법의 지배' 원리의 출발점인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하면 된다. 다시 말해 "기득권 노조 카르텔"에 속한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이 누리는 법률적 권리와 이익의 법제도적 적용을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에는 관심이 없다.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이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을 점진적으로 통합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기술자 가운데 한 명인 윤 대통령은 노동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을 모색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를 위한 법제도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본심은 노동자를 일류와 이류로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법률가의 지배'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선언문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각국 정부가 근로시간과 안전보건 등 노동기준을 통일적으로 적용하고 노동기본권을 노동시장 하층까지 보편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1776년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사회가 부패 단계에 이르면 지배 엘리트들이 정치와 경제에서 '지대 추구'(rent-seeking)에 몰두한다고 썼다. 2014년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에서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는 엘리트의 지대 추구가 '법의 지배'를 대체한 '법률가의 지배'라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썼다. 그리고 2024년 윤 대통령은 '노동약자보호법'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 대상을 차별적으로 분단시킴으로써 한국의 노동 문제를 '법률가의 지배' 하에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본질적으로 그의 '노동약자보호법' 제안은 한국 지배 엘리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분할통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로 보는 권모술수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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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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