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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도 학생인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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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도 학생인권이 필요합니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학생인권 보장의 책무는 정부에 있다
2003년부터 교사로 일해 왔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더디게 변화하는 곳 중 하나라고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은 분명한 변화들을 목격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교사로서 내가 처음 마주한 학교는 나의 유년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공공연한 체벌이 존재했다. 교사들끼리 "학생을 때려서 오늘 체력이 달린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신규 교사들 앞에서 체벌의 필요성을 조언이랍시고 말하는 사람들을 2017년까지 보았다. 나 역시 저연차 교사일 때 때려서라도 학생들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강압에 가까운 조언을 듣곤 했다. 사람을 때리기 싫었고 때릴 수도 없었다. 때릴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양심적 판단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학생을 때리고 나서 벌어질 학생과 보호자의 반응이 걱정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학생을 왜 때리지 않냐고 하던 사람들은 나의 그런 걱정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신규 교사였던 나는 매일 학교에서 실패했고 매일 퇴근하고 울었다. 학교는 내가 학생일 때도 끔찍했고 교사일 때도 끔찍했다.

학생인권이 불러온 변화

그러다 교직 경력이 5년쯤 되었을 때 교육부가 체벌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내렸다. 칼같이 학교 사회가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공연하게 체벌로 학생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지 않게 되었다. 체벌하지 않고 학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지침과 연수가 나왔고 교사들끼리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들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때리거나 때리지 말거나 사이에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나에게 교육당국과 학교 공동체가 유의미한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즈음부터 내 귀에 "청소년인권",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했었다.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나의 교직 경력이 10년을 넘어가던 2016년 무렵, 학교 대표로 공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시 대표 수업이라 다른 학교 교사, 장학사 50여 명 앞에서 수업을 공개했다. 제법 긴장되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하는 수업이라서이기도 했지만 수업의 주제가 '소수자성 드러내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안전한 공간에서 드러내고 공감받는 교육적 계기를 수업으로 설계한 것이었지만 '소수자성'이라는 말이 공격받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 달리 수업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좋은 수업을 보았다고 소감을 전했고 교장, 교감, 장학사도 수업 프로그램이 좋았다며 따로 자료를 받아 가기도 했다. 그때 내가 학교를 끔찍해하지 않고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내가 학생일 때 싫었던 일을 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학교는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학생들의 다양성을 격려하며 민주시민으로서 함께 인권 보장의 방법들을 탐색해 가는 교사의 모습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인권교육 연수가 풍성하게 열려 다른 교사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인권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학생과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둔 수업 혁신 연수가 끊임없이 열렸다. 주말에 열리는 연수인데도 교사 수백 명이 모여 결국 다들 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는 일이 제법 많았는데, 그야말로 시대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두 지역에서 교직 생활을 했지만 모두 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이어서 실제로 학생인권조례를 학생으로든 교사로든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그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학생인권 옹호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학생인권조례의 구체적 내용들이 전 지역에서 학교 내 인권 보장 상황을 진일보시켜 온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교사로 살고 성장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인권이 부족한 게 문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일부 정치인들은 '학생인권이 과잉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생인권 과잉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최 모르겠다. 두발과 복장 단속을 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 휴식할 권리가 어떤 상황에서 과잉될 수 있을까? 더구나 한국은 매번 유엔 인권 기구로부터 어린이·청소년 인권 실태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권고받는 나라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가 지나치게 제한되고, 학업 강요가 살인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알고 있듯이 한국의 10대 자살률은 매우 높고 공적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불안한 삶은 학교 교육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인생을 망치는 결정적 오점이 되게 한다.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그 파급력을 줄이기 위해 학교와 다투어야 한다. 결국 학생들과 보호자들은 교사에게 점점 민감하게 대하게 된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밖에 없다. 인권이 과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이 부족한 것이다. 신고나 민원 외에는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구체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학생과 교사가 갈등이 있는 경우 중재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독박교실'을 그저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한다. 사회에서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맞물려 결국 서로를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지금 이야기되는 학생과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사회에는 평등이, 그리고 학교에는 더 많은 인권이 필요하다.

인권 보장은 정부의 책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들린다. 교사가 겪는 폭언, 폭력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것이 교사로서 납득되지 않는다. 작년, 한 교사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소위 '교권 4법'이 개정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법 내용을 보면 교사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일례로, 보호자가 학교를 찾아와 교사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영상을 촬영하였다면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교사는 구제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교권보호위원회 관련 법에 따르면 영상이 배포되었을 때만 교권 침해이고 촬영은 교권 침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의 없는 촬영은 교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는 법을 제정해 두고 오히려 학생인권을 탓한다. 교사의 안전한 교육 활동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국회가, 시도의회가, 교육당국이 자신들의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학생과 교사를 대립시키는 것은 기만이다. 나의 인권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내 옆의 사람들이 나에게 잘해 주면 나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인권과 도덕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인권 보장의 책무는 정부에게 있다. 인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정부의 책임이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인권 보장 책무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에 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은 평등하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축소시키지 않으면서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 제공할 의무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에게 있다. 학생인권을 보장할 책무가 교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할 의무가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착각이 만연한 것은 정부가 인권 보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남 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교사와 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
▲지난 5월 13일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교사 단체 긴급 기자회견 모습.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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