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빈곤노인 위한 기초연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5년부터 격년 발표하는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한국과 같은 선별적(targeted) 기초연금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회원국 38개 중 34개국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저소득층의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 원리상으로는 한국과 비슷한 기초연금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선별적 기초연금은 상대적으로 넓은 수급범위와 낮은 소득대체율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국가별로 제도 세부 사항이 달라 단순비교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이를 감안하고 평균을 내면 OECD 국가의 선별적 기초연금 평균 수급범위는 28.2%, 소득대체율은 18.1%다. 한국 기초연금의 수급범위는 70%, 소득대체율은 7.4%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연금 개혁을 논의할 때면 한정된 예산 조건에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지급범위를 좁히고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매번 나온다. 지난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국민공론화위원회에서도 기초연금과 관련해 '수급범위 유지. 급여수준 강화'안과 '수급범위 축소, 하위소득자 보호 강화' 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운영하는 '최저보장연금'도 기초연금의 빈곤 방지 기능 강화를 위해 참고할만 하다. 제도의 얼개는 수급하는 연금이 적거나 없는 사람에게 소득이나 자산조사에 기반해 보충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독신 연금 수급자에게 주택급여도 따로 지급한다.② 저기간 가입자 등 위한 지원책
한국 국민연금의 또 다른 문제는 넓은 사각지대다. 늦은 취업, 여성의 경력단절 등에서 비롯되는 짧은 가입기간,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율 부담으로 인한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이 포함되는 지역가입자의 가입 기피 현상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2022년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은 19.2년, 18~59세 국민연금 가입률은 73.3%였다. 우선 필요한 대안은 미취업 기간 연금 가입기간을 인정하는 제도인 크레딧 확대다. 한국의 크레딧 제도는 출산, 군복무, 실업에 적용된다. 출산 크레딧은 둘째 자녀에 가입기간 12개월, 셋째 자녀부터 18개월이 인정된다. 군복무 크레딧은 6개월 이상 군 복무에 6개월이다. 실업 크레딧은 생애 중 최대 1년 보험료의 75%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OECD는 많은 국가가 3~4세 아이를 돌보는 기간에 양육 크레딧을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자녀가 2명이면 5%, 3명이면 10%, 4명이면 15%의 추가 보험료를 가산하는 스페인, 아이를 한 명 가지면 부모 중 1명에게 3년의 연금 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하는 독일 사례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밖에 늦은 취업과 관련해서는 학업 크레딧을 제공하는 스웨덴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프리랜서 노동자와 관련해서는 도급업자에게도 보험료를 부담시키는 노르웨이 사례가 있다. 이를 통해 프리랜서 노동자도 보통의 노동자와 같은 8.2%의 보험료를 낸다.③ 미래세대 위한 재정안정
재정안정의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한국 공적 연금의 특징은 낮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OECD 평균은 보험료율 18.3%, 소득대체율 51.7%인데 한국은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31.5%다. 급격한 고령화를 고려하면 우선 OECD 수준으로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OECD는 2021년 기준 회원국 38개국 중 24개국이 연금 재정자동안정화장치를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먼저 기대수명, 인구통계비, GDP 등 거시 경제 변수에 보험료율과 연금 수급액을 연동시키는 제도를 뜻한다. 기대수명이 늘면 연금 수급액을 낮추고, 생산가능인구가 늘면 연금 수급액을 올리는 식이다. 보험료만 정해두고 이자, 투자 수익률 등에 연동해 연금을 지급하는 확정기여형(DC) 연금도 안정화장치로 분류된다.안정화장치는 '탈정치화 연금정책'으로도 불린다. 한번 도입하면 보험료율과 연금 수급액을 둘러싼 정치적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다만 OECD는 안정화장치의 도입을 위해서는 제도 내용에 대한 열린 논의와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가 필요하며, 이를 유지하는 것도 정치의 역할이라는 점을 함께 강조한다. 이는 다른 모든 연금개혁 의제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연금개혁을 수행해야 할 22대 국회가 새겨야 할 말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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