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 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을 언급하며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 대한 과거 비하 발언이 재조명되며 배우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비난에 직면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회동 뒤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어떻게 방어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9달 동안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일은 참혹하다. 죽은 어린이들과 절망적이고 굶주린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두 번, 세 번, 네 번이나 이주하는 모습"을 언급하며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외면할 수 없다. 고통에 무감각해져는 안 된다.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이 전쟁을 끝낼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 이상을 납치한 뒤 벌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인해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3만9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2%에 해당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6분 가량의 연설 상당 부분을 가자지구 민간인의 고통을 강조하고 휴전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하마스가 납치한 미국인 인질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협상에 대한 합의를 확보하기 위한 대화에서 희망적 움직임이 있었고 방금 내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말했듯 이제 협상을 성사시킬 때"라고 말했다. 이는 전날 미 의회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여전히 "완전한 승리"를 고집하며 협상 타결을 원하는 인질 가족들을 실망시킨 것과 대비되는 입장이다. 같은 날 해리스 부통령은 전날 벌어진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 균형 잡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은 25일 성명에서 "나는 이스라엘 국가를 궤멸하고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맹세한 악랄한 테러 조직 하마스와 연계된 모든 개인을 규탄한다"며 전날 시위대가 하마스를 지지하는 낙서를 남기고 미국 국기를 불태운 행위를 비판했다. 그는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를 지지하지만 반유대주의, 증오, 폭력은 우리나라에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 회동 뒤 연설 말미에서도 국민들을 향해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이 지역의 역사와 미묘함, 복잡성"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반유대주의, 이슬람 혐오 및 모든 증오를 규탄한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이날 연설은 해리스 부통령이 차기 대선 후보로 확실시된 뒤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힌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성명으로 주목을 받았다. 해리스 부통령은 그간 미 행정부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에 관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보다 조금 더 강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역할을 해 왔다.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실은 트럭에 굶주린 주민들이 몰리며 100명 이상이 숨진 참사가 발생한 며칠 뒤인 지난 3월 해리스 대통령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가자지구 구호 흐름을 크게 늘릴 것을 요구하고 "즉각적 휴전"을 촉구한 바 있다.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로 자처하는 바이든 대통령과는 달리 해리스 부통령은 시오니스트 여부를 묻는 질문에 직접적 답변을 회피해 왔다고 미 CNN 방송은 짚었다. 전문가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과 이스라엘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과 본질적으로 다른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하진 않고 있다. 마이클 싱 전 미 국가안보회의(NSC) 중동 담당 선임 국장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해리스 정부가 바이든 정부와 거의 비슷한 인력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책이 대체로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배우자 더그 엠호프는 유대인으로 반유대주의 반대에 앞장서 왔다. 다만 아직까진 수사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해리스 부통령의 모습이 약간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싱 전 국장은 <폴리티코>에 해리스 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본능적 지지"가 바이든 대통령보다 적을 수 있고 인권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의 가자지구 정책에 반대해 사실상 바이든 대통령 후보직에 대한 찬반 투표였던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에 투표하는 운동을 벌인 단체 '지지후보 없음 전국 운동(UNM)' 공동 창립자 왈리드 샤히드는 <뉴욕타임스>(NYT)에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조심스런 낙관론을 표명했다. 샤히드는 신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심각한 공감 부족을 개선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누가 후보가 되든 만만찮은 과제"이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친이스라엘 로비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와 민주당의 관계도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5일 추가로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줄였다. 지난 22~23일 5개 경합주를 대상으로 실시된 <더힐>과 에머슨대 공동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4곳에서 뒤졌고 한 곳에선 동률을 기록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위스콘신주에선 지지율 47%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동률을 기록했고 미시간주에선 45% 지지율로 1%포인트(p) 뒤졌으며 펜실베이니아주, 조지아주에선 각 46% 지지율을 기록해 트럼프 전 대통령(48%)에 2%p 뒤졌다. 애리조나주에선 44% 지지율을 기록해 가장 큰 차이(5%p)가 났다. 애리조나를 제외하면 모두 오차범위(±3.3∼3.4%p) 내 접전이다. 이는 이달 중순 경합주를 대상으로 한 에머슨대의 유사한 조사에서 나온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보다 해당 5곳 주 모두에서 앞선 결과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5~16일 수행된 조사에서 이들 주들에서 36~43% 사이 지지율을 얻었고 애리조나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에 10%p 뒤졌으며 가장 격차가 적었던 위스콘신에서도 3%p 뒤졌다. 25일 공개된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오차범위(±3.3%p) 내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24일 등록 유권자 114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등록 유권자 지지율은 46%,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8%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이달 2일의 같은 조사에서 등록 유권자 사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1%,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49%을 기록해 차이가 크게 벌어진 바 있다. 한편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과거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해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이 재조명되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밴스 의원은 2021년 7월 미 방송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해리스 부통령 등을 직접 지목해 미국이 "자녀 없는 캣 레이디(cat lady) 무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며 이들이 "자신의 삶과 선택에 비참해 하며 이 나라의 다른 사람들도 비참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발언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는 의미의 '캣 레이디'는 연애 및 결혼을 하지 않고 직업 경력에 집중하는 여성을 멸시하는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해리스 부통령은 2014년 엠호프와 결혼해 엠호프가 이전 결혼에서 얻은 콜과 엘라 두 자녀를 길렀다. 따라서 밴스 의원은 발언을 통해 선택에 의해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난임으로 인해 아이가 없는 가정 뿐만이 아니라 입양 가정, 재혼으로 얻은 자녀를 기른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미국 가정을 모두 공격한 셈이 된다. 밴스 의원은 당시 발언에서 동성 배우자를 둔 피트 부티지지 미 교통장관도 공격했는데 부티지지 장관은 2021년 8월 아이 입양을 발표하기도 했다. 25일 미 CBS 방송은 시트콤 <프렌즈>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관련해 "미국 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애니스톤은 밴스 의원에게 "당신 딸은 언젠가 (난임 시술 없이) 자신의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운이 좋기를 기원하겠다"며 "그(밴스 의원 딸)가 두 번째 옵션으로 체외수정(IVF)에 의지할 필요가 없길 바란다. 왜냐하면 당신(밴스)은 딸에게서 그걸 앗아가려 하고 있으니까"라고 꼬집었다. 해당 발언이 여성이 '직접' 자녀를 낳는 것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25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밴스 의원 발언이 여성을 출산 도구로 이용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시녀 이야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핸드메이즈테일>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배우자인 엠호프의 전처 커스틴 엠호프도 밴스 의원의 해당 발언을 비난했다. 25일 미 NBC 방송은 커스틴이 성명을 통해 밴스 의원의 공격은 "근거가 없다"며 "콜과 엘라의 10대 시절부터 10년 넘게 카멀라는 더그와 나와 함께 이들의 공동 부모 역할을 해 왔다. 카멀라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맹렬히 보호했고 언제나 곁에 있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카멀라의 딸인 엘라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콜과 나 같은 귀여운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자식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고 밴스 의원 발언을 반박하며 "난 내 세 명의 부모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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