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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앞세워 '앵벌이' 하는 배드민턴 협회, '숟가락' 얹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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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앞세워 '앵벌이' 하는 배드민턴 협회, '숟가락' 얹지 마라

[정희준의 어퍼컷] 안세영, 맘껏 말하라

2000년 프로야구선수들이 선수협의회를 만들 때다. 한 구단 선수들이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에 구단 사장이 직원들과 들이닥쳤다. 입구를 지키고 선 팬클럽 때문에 선수들을 만나지 못하자 이 사장은 씩씩거리며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지들 월급 주는 게 누군데."

선수들을 대하는 구단의 시각이다. 선수들에게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착각한다. 머슴 보듯 한다. 실상은 선수들 덕에 자기가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 때문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후배 보호하며 회장과 선배의 사퇴 요구한 축구인들

대한축구협회가 절차를 무너뜨리고 대표팀 감독에 홍명보 울산현대 감독을 선임하자 축구계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 난국에서도 이영표, 박지성, 이천수 등 무수한 축구인들이 정몽규 회장과 홍 감독을 비판했다. 심지어 정 회장의 사퇴, 홍 감독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영표는 "나를 포함한 축구인은 행정을 하면 안 된다. 사라져야 한다"고 작심비판했다. 협회 뿐 아니라 선배 축구인들을 정확하게 조준해 직격한 것이다.

박지성은 인터뷰에서 기자가 "마무리하겠다"고 하자 "더 해도 괜찮습니다"라며 인터뷰를 길게 이어갔다. 그는 "너무 참담하다"면서 스포츠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보니 "결과가 과정을 이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며 바뀌지 않는 축구협회의 행정을 꼬집었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후배 박주호를 옹호했다. 그는 이런 발언을 하는 이유로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은 한국축구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금메달리스트 후배 죽이기에 나선 금메달리스트 선배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협회 비판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MBC 해설위원은 "누가 등 떠밀어서 국가대표 들어갔나"며 안세영을 직격하며 협회 옹호에 나섰다. 그는 또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협회나 감독, 코치들, 훈련 파트너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며 "선수 본인이 혼자 금메달을 일궈낸 건 아니지 않"냐는 발언까지 한다.

희한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협회나 감독, 코치들은 원래 편하게 놀고 먹어야 하는데 안세영 때문에 고생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들은 안세영 같은 선수들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월급 받는 사람들이다. 이상한 사람이다. 국가대표가 되면 그 모든 억압과 통제와 불합리와 폭력을 군말 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대회 개인자격 출전 문제, 스폰서 문제 이전부터 대한배드민턴협회는 부조리 가득한 조직이었다. 오죽하면 선수들이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대표선수 선발 문제로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겠나. 선수가 자신이 소속된 협회를 상대로 이러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협회 행정이 한 마디로 '막장'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입 다물고 있으라고?

특히 주목하는 점은 연초에 안세영 선수가 협회에 "선후배 문화를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시정 요구를 했다는 점이다. 협회가 대표팀 선수들을 군기와 얼차려문화를 통해 통제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협회는 왜 이를 용인해왔을까? 임원이나 감독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협회 친화적인 선배선수들이 알아서 후배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협회 입장에서는 매우 편하다. 그래서 많은 협회들이 이를 묵인, 조장하는 것이다.

왜 운동선수가 '복종'해야 하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협회는 "선수는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선수들에게 '복종'을 강요해왔다. '국가에 대한 충성'도 아니고, 이쯤 되면 군대보다 더하다. 연맹은 또 스폰서에 대한 것도 세세하게 제한했다. 협회 지정 경기복과 용품만 사용해야 하고 개인 스포츠 계약은 우측 옷깃 한 곳만 허용한다.

이렇듯 선수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위에서 언급했듯 '자기들 편하기 위해서'이다. 대표선수도 성적이고 뭐고 필요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둘째, 돈 때문이다. 배드민턴 용품기업 요넥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요넥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만약 안세영 등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스폰서십을 받기 시작하면 요넥스로부터의 스폰서십 액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협회의 살림살이를 줄여야 한다. 결국 국가대표 선수는 연맹의 돈벌이 수단인 것이다.

대표팀 선수는 협회의 돈벌이 수단

일부 체육계 인사는 비인기 종목이니만큼 협회 재정을 위해 일부 제한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능의 자백이다. 배드민턴은 아마도 축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생활체육 동호인들을 거느린 종목이다. 행사 때마다 이들이 지불하는 참가비는 다른 종목 단체들에겐 꿈 같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배드민턴협회는 임원이 무려 40명으로 축구협회보다도 많다. 그런데 회장 및 임원진이 지난 몇 년간 후원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음에도 운영이 되는 걸 보면 재정상태가 좋다는 방증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재정이 얼마나 풍족하기에 2018년 선수 6명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으로 대회 출전하는데 무려 임원 8명이 비즈니스석 타고 따라가나. 이거 선수들에게 써야 할 돈 아닌가. 왜 선수들이 번 돈으로 임원들이 공짜 해외여행을 하나.

방수현 위원은 인터뷰에서 "협회가 안세영 얼마나 특별케어했는지 밝혀질 것"이라 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특별케어'가 아니라 안세영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특별족쇄'를 채워 '특별통제'한 것이다. 사실은 협회가 선수들 혹사시켜 가며 앵벌이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다 협회 자신을 위한 것이다. 아닌가?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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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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