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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도 당한 직장 내 괴롭힘, 아이돌도 노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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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도 당한 직장 내 괴롭힘, 아이돌도 노조가 필요하다 [인권의 바람] 아이돌 노동자가 당하는 착취 직시하고 연대해야
뉴진스는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무대효과가 난무하고, 쟁쟁한 아이돌들이 활동하던 시기 수수하고 청량한 콘셉트로 독보적인 인기를 휩쓸었다. 이런 뉴진스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화두가 된 것은 2024년 9월 11일 라이브 방송이었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본명 '팜 하니')가 라이브 방송에서 발언하며 팬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폭로했다.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가 하니를 향해 인사하자 해당 그룹의 매니저가 인사하지 말라며 하니에게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제지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으며, 고용노동부는 뉴진스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을 배정했다.
▲걸그룹 뉴진스가 11일 유튜브를 통해 민희진 전 대표의 복귀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아이돌은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이 데뷔 후 전속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인 7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뜻의 속어다. 이러한 아이돌 전속계약 기간은 2009년 당시 보이그룹 동방신기 일부 멤버들이 소속사와 소송을 벌이며 관례가 됐다. 이 소송에서 동방신기 멤버들이 승소하며 13년으로 정해져 있는 전속계약이 아이돌 노동자의 직업 특성상 너무 길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연예계에는 아이돌 전속계약을 최대 7년으로 정하는 표준계약서가 도입되었다. 아이돌은 근로계약서 대신 표준전속계약서를 쓴다. 계약상 아이돌 노동자 개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겉보기에는 동업 관계이다. 하지만 소속사가 자본을 투입하고 아이돌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제공한다. 이 점에서 아이돌과 소속사의 관계는 명백히 노사 관계가 된다. 숙명여자대학교 이종임 교수는 2019년 문화연대가 주최한 테크노미디어문화포럼에서 아이돌이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기획사에 고용된 노동자”라고 발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 활동은 상품화된다. 음반과 콘서트 티켓을 사고, 음원사이트를 구독해 노래를 듣는다. 무료로 숏폼 챌린지, 음악방송 등을 접해도 모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인기를 얻은 아이돌이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광고 촬영 등으로 수입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결국 아이돌이 소속사에 부를 가져다주는 노동의 주체, 노동자이다.

뉴진스는 구제받을 수 있을까?

직장갑질119는 뉴진스가 받는 대우를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지만 실제로 구제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인 근로기준법 76조의 2, 76조의 3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만 적용한다.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폭력과 괴롭힘을 대상으로하는 ILO 제190호 협약은 2019년 채택되었으나 아직 대한민국은 비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 12월 중요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사업주가 특수고용노동자인 골프 경기보조원(캐디)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할 직접적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해당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줬고, 결국 피해자가 자살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제77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 조치’를 근거로 직장 내 괴롭힘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로 봤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아이돌 노동자들 인권침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1위를 하며 스타가 된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은 2022년 말 활동 당시 강도 높은 스케쥴이 화제가 됐다. 한 팬이 올린 영상에는 9월 19일 중국영상통화 팬싸인회, 적십자 홍보행사, 20일 대구 영남대 축제, 대기업 행사, 21일 제천 세명대 축제, 대기업 행사, 22일 여주대 축제 23일 음악방송 생방송 24일 연세대 축제, 밤에 파리로 출국, 25~27일 파리 스케줄, 28일 귀국, 29일 대전 충남대 축제, 청주 충북대 축제, 30일 음악방송 MC스페셜무대 사전녹화, 음악방송 생방송, 성균관대 축제, 수원 아주대 축제, 10월 1일 팬싸인회, 2일~6일 파리 스케쥴을 했다며 20일간 쉬는 날이 없이 해외 일정을 두 번이나 소화했다. 연습 시간까지 포함하면 주 52시간은 까마득히 넘길 것이다. 아이돌 노동자들은 무리한 스케줄에 다치기도 하고, 아파도 무대 위로 올라와 공연하는 경우도 많다. 팬과 아이돌이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 채팅 어플 등은 심야시간까지 상시적으로 해야한다. 만약 이렇게 노동하다가 우울증, 공황 장애 등을 호소해도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산재 인정은커녕 오히려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아이돌 그룹 '더 이스트라이드'의 경우 PD가 각목이나 야구배트로 아이돌 멤버를 4년 간 지속적으로 폭행을 했다. 아이돌 그룹 TRCNG의 경우 모든 멤버가 적정한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가혹행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멤버 전원이 당시 만18세 미만이라 아동학대로 소송이 진행됐다. 성희롱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모 걸그룹의 멤버가 자신이 MC로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AV배우로 데뷔하라는 성희롱을 듣기도 하고, 해당 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짧은 하의 아래에서 앵글을 잡는 등 성희롱이 공론화되어 팬들 사이에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생활을 침해하는 연애 금지 조항, 극단적인 다이어트 강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인권침해만 해도 셀 수 없다. 이러한 인권침해는 아이돌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무관하지 않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표정, 목소리, 외모를 유지하고 자신의 본래의 감정을 억누른다. 팬싸인회, 실시간 채팅 어플, 라이브 방송 등 24시간 미디어에 노출되어 연습생 때부터 소속사에 의해 감정을 철저히 통제된다. 하지만 아이돌 노동자들은 문제제기를 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도 어렵다. 아이돌은 우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꿈을 파는 직업이라고도 불리는 아이돌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다 보면 그 중 극소수가 유명한 아이돌 스타가 된다. 자신의 꿈만 바라보며 어린 시절부터 수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해온 이들은 섣불리 회사를 옮기지도, 다른 진로를 찾기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가수 츄(CHUU)가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첫 번째 미니앨범 '하울'(HOWL) 발표회에서 과거 '오늘의 소녀' 활동 당시 소속사와 분쟁 과정을 설명하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한 노동의 대가도 받지 못하는 ‘정산금’ 문제

걸그룹 ‘이달의 소녀’는 정산금을 받지 못해 당시 멤버 츄(본명 김지우)를 시작으로 전속계약 해지 소송이 이어졌다. 츄의 활동으로 소속사는 8억6000만원의 순수익이 발생했으나 츄는 정산금을 받을 수 없었고 전속계약이 부당하다는 소송 끝에 츄가 승리했다. 그나마 활동이 활발한 아이돌들은 정산을 통해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1년에 30여개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한다. 그리고 이들 중 극소수만 알려진다. 그러면 데뷔하지 못한 대부분의 연습생이나,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노동의 대가를 인정 받는 것은 고사하고 빚을 떠안게 된다. 전문가들은 전속계약의 형태를 지적한다. 전속계약은 기본적으로 소속사와 개인 간의 동업 관계로 보고 있다. 소속사가 자본을 투자하면 개인은 노무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아이돌 전속계약의 형태는 이런 동업의 형태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연습생 기간 한 명의 아이돌 멤버로 만들기 위해 투입된 비용을 데뷔 후 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갚아야 하는 구조이다. 레슨비는 물론 심한 경우 소속사 직원 월급까지 청구한다. 연습생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이렇게 부담할 비용이 커진다.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수입이 발생하면 연습생 때 소속사가 투자한 비용을 먼저 공제한 후부터 아이돌 노동자와 소속사 간의 정산 비율을 정한다. 심한 경우는 이 비율을 1:9로 정하기도한다.

아이돌도 노동조합이 필요해

누리꾼들은 뉴진스의 폭로에 분노하며 뉴진스의 상징인 토끼 캐릭터에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씌우고 조끼를 입혔다. 엄연히 따지면 뉴진스의 폭로가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이돌 노동조합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제기되어왔다. 아이돌 팬덤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주로 ‘트럭시위’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소속사의 미온적인 악플러 대응을 규탄하거나, 위험한 안무의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게 팬미팅 장소나 음향 같은 팬덤의 요구사항이 중심이기도 하고, 다소 지엽적인 부분으로도 트럭시위가 벌어진다. 아이돌 멤버의 연애가 알려져 “당신은 왜 팬을 배신했습니까”라며 트럭을 보낸 경우도 있다. 때문에 팬들의 트럭시위로는 아이돌 노동자로서 권익을 찾아가기에 한계가 많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한다. 2023년 미국 할리우드 배우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을 벌였다. 노동조합은 118일 간 투쟁을 지속했고, 배우 최저임금 인상, 스트리밍 플랫 재상영 분배금, AI로부터 배우 권리보호 등의 내용이 담긴 단체협약을 맺었다. 대한민국에도 가수노동조합이 있다. 하지만 전속계약 구조, 문화산업 속 위치 등 아이돌만의 특수한 산업구조가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이돌 노동자를 대변할 강력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내 아이돌’을 진정 위하는 일

팬들은 대부분 화려한 아이돌 이면의 고충을 잘 알지는 못한다. 아이돌이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인지 알기는커녕 노동자일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해서 춤과 노래를 따라했고, 앨범을 사 모았다. 아이돌이 힘든 일 하나 없이 완벽한 요정인 줄 알았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아이돌은 여전히 그러한 존재인 것 같다. 나름 오랫동안 아이돌을 좋아했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아이돌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돌 노동자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어떤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직시하는 것, 그리고 목소리가 있다면 연대하는 것이 팬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내 아이돌’을 진정 위하는 일이 아닐까? 전세계의 ‘덕메(덕질메이트)’들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돌 알고 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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