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관절염
한 세기 다 하도록 목련이 피어도물기 오르지 않는 수척한 봄이다 삶인지 죽음인지 남인지 북인지어디로 간지 알고도 모르는행불자의 신원을 묻기 위해이 땅의 마을에는 목련이 핀다골목골목 삽작걸마다 목련꽃 등을 켜고행불자의 안전한 귀가를 기다린다 문경 유곡을 거쳐 동로면 어디로 갔는지끌려간 형의 이름은 행불자대를 이어 영원한 행불자 행불의 역사와 함께영원한 행불의 형제 해방공간 좌익활동 경력을 보호관리한다고우리나라 형을우리나라 군경이 끌고 가서돌려보내질 않았다 도망쳤네도망치다잡혀갔네월북했네납북됐네뜬구름 잡는 말들만 돌림병처럼허리 칭칭 감은 철조망을 돌아돌아왔다 산 자와 죽은 자어느 명단에도 없었다남에도 없고 북에도 없었다행불자의 아내는 파르라니 머리 깎고 산사로 가속세의 행불자가 되었다 목련꽃 봉오리처럼 똘똘한 세 살 다섯 살배기형의 두 아들까지 떠안은아우의 무릎뼈에서뼈로도 돌아오지 못한 형은평생을 시린 바람으로 울고 있었다 넘어야 할 삶의 허리마다레드컴플렉스 철조망에 걸려서무릎 꿇리는 관절 뼈가 운다가정파괴범 국가폭력 만행기막히다기막히다 낯색까지 막혀얼골을 잃어버린 뼈마디가철퍼덕철퍼덕 운다 남과 북서로의 이름이 올라 있는 형제의 살생부에군데군데 멍들어 떨어지는흰 주먹울음 쉬쉬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죽어 묻히고서 속절없는 아우기어이 곪아 터지는 관절의 말무덤 목련이 우둑우둑모가지뼈 꺾이고서야져버릴 이데올로기인가 보다이제는 인공관절 수술이라도 해야겠구나*얼골: 얼굴. 얼이 모인 골짜기. 얼은 곧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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