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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편광필름 만들던 여성노동자, 불탄 공장 옥상에 오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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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LCD편광필름 만들던 여성노동자, 불탄 공장 옥상에 오른 까닭은? [홍명교 칼럼] 박정혜·소현숙의 10개월 고공농성을 향해 떠나는 '연대버스'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 위에서 두 여성 노동자가 300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활동가 명함을 들고 다니는 나 역시 지난 여름에서야 소식을 들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박정혜와 소현숙 두 노동자는 살을 에는 추위와 폭염, 폭우마저 견디며 지난 10개월을 공장 옥상에서 버티고 있다. 고공농성이라는 투쟁 전술이 환기하는 익숙하고 잔혹한 스토리가 이 공장의 노동자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공장 이름이 꽤나 복잡해 몇 번을 들어도 외워지지 않긴 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멀지 않다. 디스플레이 핵심 부품인 LCD편광필름을 생산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마주하고 있는 노트북 디스플레이도, TV 모니터도 모두 이 편광필름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결과, 니토덴코(日東電工)는 여전히 글로벌 편광필름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남아있다. 이토록 중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왜 공장 옥상 위에 올라야 했던 걸까? 남겨진 질문을 머리 속에 둔 채 두 발을 좀 더 공장 가까운 곳으로 옮겨보자.

재난과 위장폐업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모기업 니토덴코는 화학 및 전자부품 제조업체로, 1918년 일본에서 설립됐다. LCD나 OLED같은 디스플레이 광학 필름과 차량 내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영역에서 활발히 사업을 확장해왔다. 25년 전인 1999년, 니토덴코 자본은 한국에 진출하면서 경북 구미에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한 편광필름을 LG디스플레이 등에 납품했고, 적지 않은 이윤을 거둬왔다. 18년 동안 한국에서 거둔 매출만 8조 원에 달한다. 금속노조 법률원 장석우 변호사에 따르면, 니토덴코가 이 공장 영업을 통해 벌어들여 일본으로 가져간 돈은 6조3354억 원에 이르고, 이에 반해 세금은 410억 원밖에 내지 않았다. 세상에 이만한 수지가 어딨을까? 우리나라에서 ​​외투기업으로 지정되면 공장 부지 무상임대나 각종 세제 혜택 등 막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자본은 막대한 이윤을 거뒀으며,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땀흘려 일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거두는 모든 이윤은 노동착취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재작년인 2022년 10월, 이 공장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많은 것들이 불에 탔다. 결국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법인 청산을 결정하고, 모든 물량을 평택에 소재한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사는 전혀 수렴되지 않았고, 193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계속 일하고자 한 17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정리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일련의 모든 과정이 ‘위장폐업’이라고 보고 있다.

인권방침을 지키겠다는 거짓말

노동자들은 공장 철거와 해고를 막기 위해 노조 사무실을 지키고 투쟁에 나섰다.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화재 이후 이 공장의 물량을 평택에 위치한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옮겼으니 그 평택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한데 사측은 이 상식적인 요구조차 거부하고, 오히려 공격하고 나섰다. 지난 8월 말 한국옵티컬하이테크 사측은 노동자들의 부동산과 채권(임차보증금) 총 4억원에 대한 가압류 소송을 냈다. 수 조원을 벌어간 기업이 13명의 노동자 고용을 승계하는 걸 거부하고, 되려 가압류를 하다니. 믿기 어려운 잔인무도함에 입을 다물기 어렵다. 니토데코는 인권기본방침(人権通常方針)을 통해 "니토그룹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의 기본적 원칙과 권리에 관한 ILO 선언'에 따른 기준, UN '기업과 인권에 관한 지도원칙' 등 국제규범을 지지하고 존중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니토그룹이 90퍼센트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노동자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행위는 모기업의 약속을 앞장서 위배하고 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ited Nation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기업은 전문적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의 전문기관으로서 모든 해당 법률을 준수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가지며,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구제책을 요구할 권리와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니토덴코 자본이 지금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응답하지 않고 가압류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니토덴코 자본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외투기업이 국내에서 이렇게 파렴치하게 착취와 먹튀를 행할 때 응당한 조치를 할 책임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은 그 디테일과 뒤섞여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력과 국민 혈세로 매출을 올린 외투 자본이 자신의 책임과 약속은 깡그리 무시하고, 위장폐업이 의심되는 행위를 통해 착취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그 '디테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큰 도전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근래 노동자들은 언제나 뒤로 밀리고 패배하기만 하지 않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승리 소식이 패배 소식보다 덜 자주 들리는 건 사실인 것 같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과 일터는 언제나 그 드문 승리의 역사 덕에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온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승리들이 누적돼 확장돼 왓고, 법정최저임금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치열한 싸움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인상시킬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나 위장폐업에 맞선 치열한 투쟁을 통해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승리했는데, 이들이 승리하면서 거둔 경험과 판례들은 오늘 우리가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작은 싸움은 결코 작기만 한 싸움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미래를 위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역사는 서둘러 옆걸음치는 '게'이고, 돌을 마모시키는 부드러운 물방울이며, 수 세기에 걸친 긴장 관계를 깨뜨리는 지진이다. 때로 한 사람이 어떤 운동의 영감이 되거나 한 사람의 말이 몇십년 뒤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열정적인 몇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때로 그들이 거대한 운동을 촉발해 몇백만이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 그 몇백만을 똑같은 분노나 똑같은 이상이 뒤흔들면, 변화는 마치 날씨가 바뀌듯 우리를 덮친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투쟁은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와 저항의 역사를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것은 을밀대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체공녀' 강주룡이 만든 반제국주의적인 노동자 투쟁의 역사,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지키고자 했던 민주노조의 역사, 1980년대 경공업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폐업과 해고에 맞서 투쟁했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용접공 김진숙이 최전선에서 맞선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에 맞선 역사와 연결돼 있다. 우리에게는 이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싸움을 엄호하고 연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오는 11월 2일 토요일, 두 여성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300일을 맞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을 맞아 전국에서 노동자·시민 1천여명이 '옵티칼로 가는 연대버스'를 타고 구미에 위치한 농성장으로 모일 수 있도록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는 비교적 문턱이 낮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겐 낯선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은 없다. 두 여성 노동자가 2016년 처음 금속노조에 가입해 3년의 임금 동결을 뚫고 처음 임금 인상을 이뤄내고, 2022년 뜻하지 않게 화재를 경험하고, 올해 초 불에 탄 공장 옥상에 올라설 때의 심정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절망과 환멸의 감정이 공기처럼 휘감는 시대다. 만약 우리 시대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면, 다른 어떤 인플루언서나 '국뽕'으로 점철된 뉴스가 아니라, 절망에 맞선 인간의 승리에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 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자 했던 목소리를 잇는 이들의 싸움에 작은 불씨라도 보탤 수 있다면,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 '연대버스'에 함께해 동시대 최첨단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을 향해 연대하자.
▲지난 2월 3일 '3.8여성파업조직위'는 한국옵티칼 하이테크 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 오픈마이크 행사를 하고 있다.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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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사회운동이 마주한 곤경을 실천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플랫폼C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동아시아 사회운동과 교류·연대하고 있고,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 함께 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와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역서로는 <고양이 행성의 기록>,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공동역서로 <아이폰을 위해 죽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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