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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괴물, 나는 제일 앞 줄의 한사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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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희정은 괴물, 나는 제일 앞 줄의 한사람일 뿐" 김지은 "안희정 피해자 여럿...'정조'라는 말 들었을 때 죽고 싶었다"
"피고인의 기침 소리만으로도 심장이 굳었다. 벌벌 떨면서 재판정에 있었다. 내 개인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차고 어깨를 떠는 변호사를 봤다. '정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죽고 싶었다."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는 2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사건 결심공판에 출석해 안 전 지사에게 받은 피해와 '미투(#metoo)' 폭로 이후 2차 피해 등에 대해 증언했다.

김 씨는 "이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안희정 전 충남지사)이 내 의사를 무시하고 권력을 이용해 성폭행한 것"이라며 "용서할 마음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소장을 낸 뒤 통조림 속 음식처럼 죽어 있는 기분이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려야 했고, 기억을 유지해야 했다"면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피고인과 그를 위해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에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 혼자 입 닫으면 제자리를 찾지 않을까. 나 하나만 사라진다면 되지 않을까.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자책도 후회도 원망도 했다. 밤에 한강에 가서 뛰어내리려고도 했"지만, "내가 유일한 증거인데 내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날뛰겠구나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길이라 생각해 생존하려 부단히 애썼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재판 과정 중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마누라 비서'라는 처음 듣는 별명으로 (안 전 지사 변호인이) 몰아갔다. 나는 한 번도 이성적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며 "수행비서는 지사 업무에 불편함이 없게 하는 역할이다. 나를 성실하다고 칭찬하던 동료들이 그걸 애정인 양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는) 도망치면 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그럴 수 있겠나"라며 "지사 사람들에게 낙인찍히면 어디도 못 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평판 조회가 중요한 정치권에서 지사 말 한마디로 직장을 못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안 전 지사가 괴물 같아 보였다며 '이중적인 사람'이었다고 비판했다.

"가장 힘든 것은 안 전 지사의 이중성이었다. 외부에서는 젠더 민주주의 등을 말했지만, 지지자들 만나는 것도 피곤해했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는 인상을 썼다. 꾸며진 이미지로 정치하는 안 전 지사가 괴물 같아 보였다."

그는 "안 전 지사는 자신의 권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의 성을 착취하고 영혼까지 파괴했다. '나는 어떤 여자와도 잘 수 있다' 등의 말을 했다. 그건 왕자병이다"라고 말한 뒤, 안 전 지사를 향해 "피해자는 나만이 아니라 여럿 있다. 참고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제일 앞줄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피고인에게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한 행동은 범죄다. 잘못된 것이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를 향해서도 "이 사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피고인과 다른 권력자들은 괴물이 될 것"이라며 "나는 이제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의 희망이다"라고 호소했다.

[전문] 최후진술서

(발언의 기회를 주신 재판부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월 6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조림 속의 음식처럼 늘 갇혀 죽어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검찰 조사부터 재판 진술까지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8개월간 범죄를 당했던 악몽 같은 시간들, 도려내고 싶은 피해의 기억들을 떠올려야 했고, 반복되는 진술을 위해 계속해서 그 기억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매일 매일이 피해를 당하는 날 같았습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피고인과 피고인을 위해 이 법정에 나온 그 사람들의 의도적인 거짓 진술들로 인해 더없이 괴로웠고, 그들의 허위 주장은 여과 없이 편향되어 언론에 실렸습니다. 유무형으로 몰아쳐 오는 피고인의 힘 앞에 저와 함께해주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저는 힘에 겨워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저 혼자 입을 닫는다면 모두 다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 하나만 사라진다면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피해사실을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제 가족들이 겪는 이 고통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8개월 참았던 것 조금만 더 참아볼 걸, 나만 아팠으면 되는데 지금은 모두가 아픈 이 시간들.. 스스로에 대한 후회도, 자책도, 원망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밤에 한강에 가서 뛰어내리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밤을 지새우고 가족들이,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는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유일한 증거인데, 제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겠구나', '그런 시도를 방치하는 것이 부모님께 더 큰 죄를 짓는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꿋꿋하게 진실을 증명하고, 진심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파괴된 이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살고자 지금까지 노력했습니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생존하려고 부단히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7월 6일 법원에서의 진술 이후 다시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투 이후 지난 4개월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그날 재판정에서의 16시간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제가 답변을 할 때마다 의도적인 기침 소리를 내며 본인의 존재를 내내 드러냈습니다. 차폐막이 있었어도 피고인의 헛기침 소리와 움직임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움츠러들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 5인은 마치 저에게는 안희정이 5명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계속 저를 이상한 사람처럼 몰아가며 질문하였고, 제가 검찰에서 한 진술을 다르게 왜곡하거나 전혀 다른 단어로 질문하여서 제가 피고인 측 변호사님께 "그렇게 기존 제 진술과 다르게 말씀하시면 더 이상 믿고 질의에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러자 당시 변호사님은 "저 믿지 마세요. 피고인 변호사는 유도 심문할 수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감정을 흔드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는 듯 저를 보며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표정과 음성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피고인 측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 경선 캠프에지지 선언을 한 변호인 119명 중 핵심적인 인물로 지사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고, 저와도 지사의 행사장에서 자주 만나며 교류가 있었던 안 지사의 열혈 지지자입니다. 아는 사람에게 심문을 받는 것은 제게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그것도 진실이 아닌 내용으로 심문당하는 것은 이룰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이자 상처였습니다.

피고인의 변호를 위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변호인들을 이해하려 노력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재판정에서 무수히 많은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도 나와 같은 상황을 겪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아렸습니다.

지사로부터 성폭력과 숱한 성추행을 당했던 지난 8개월을 몇 배로 압축한 듯한 고통이 16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과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피고인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운 사람입니다. 피고인의 기침 소리만으로 심장이 얼어붙고, 머리도 굳어버렸습니다. 지난 범행을 압축한 듯한 16시간을 덜덜 떨면서 재판정에 있었습니다.

사건과 관련 없는 개인사를 파헤침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겨우 힘을 내서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는 제 개인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차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를 들썩이는 변호사들의 행위들을 바로 옆에서 보며 견뎌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정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긴 시간 진술한 증언들까지 모두 한순간에 수치스럽게 만들어 정말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게 어떤 심정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재판장님.

이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이 자신의 권력과 힘을 이용하여 제 의사를 무시한 채 성폭력하였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지사와 수행비서의 힘의 차이에서 오는 강압, 압박, 권력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한 성폭행이었습니다.

피고인은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가, 남녀 간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번복하고 연애고 사랑이었다 주장합니다.

피고인 측의 증인들은 저와 피고인이 마치 애인 관계였고, 제가 더 좋아해서 유혹하고 따라다닌 것처럼 '마누라 비서'라는 처음 들어보는 별명까지 붙여 사건을 불륜으로 몰아가고, 사건의 본질을 흩뜨리려 하였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한테 피고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사님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피고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수행비서는 지사님 옆에서 지사님이 업무하는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임무라고 인수인계 받았고,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때는 저의 이러한 열심을 성실하다고 칭찬하였던 주변 동료들이 이제는 법정에서 저의 그런 성실과 열의의 마음을 피고인에 대한 사랑인 양, 애정인 양 몰아가는 것에 다시 한 번 좌절하였습니다.

피고인과 주변의 측근들은 법적 책임만 피하면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서로 말을 맞춘 듯 상식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들로 저를 음해하는 증언들을 쏟아내고, 대선 경선을 하듯 일부 언론을 선동해 저의 마지막 남은 숨까지도 끊어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피고인의 진심이 담긴 사과를 원했지만, 이젠 더 이상 기대의 마음도 없고 용서할 마음도 없습니다.

피고인은 본인이 가진 권세가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피고인 주변의 모두가 피고인의 말에 반문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으며, 피고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진행해서 피고인 앞에 대령해 놓았습니다.

피고인은 그러한 떠받들어짐을 오랜 시간 경험하며 조직 내에서 제왕적 리더로, 추앙받는 종교인처럼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면서 호텔이나 차량, 오피스텔에서 나오지 않고 직원에게 지시하여 술이나 담배 간식 빵 등을 사 오게 시켰습니다. 좋아하는 품목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피고인은 그것을 늘 당연한 지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피고인의 측근들도 오히려 "피고인 정도 되는 사람을 모시는 너희들은 영광으로 알아라"라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였습니다. 민주적인 조직 아닙니다.

제가 피고인의 수행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피고인의 이중성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외부의 이미지를 중요시하며 민주주의와 인권, 젠더, 소통을 말해왔지만, 피고인 지지자의 접촉 또한 극도로 피곤해했고, 차량을 내리기 전에는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며 "행사는 시간 내에 꼭 끝내라", "더 피곤해지지 않게 니가 적당히 봐서 팬들 차단해라"고 지시했고, 행사 중에도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가자". "끝"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어 행사를 중간에 끊게 시켰습니다. 행사 중에는 팬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모습을 보였지만, 행사장을 빠져나오면 수행비서가 팬들 하나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며 짜증 내며 질책하였고,

충남에 홍수로 수해가 있었던 날에는 현장 방문을 10여 분 만에 서둘러 마치고, 당일 저녁에는 평소 자주 연락하던 여성과 식사를 하며 술에 취해 그 여성의 몸을 더듬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수행비서인 저에게까지 첫 해외 출장지에서 성폭력을 가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여성을 상대로 한 희롱의 말이나 원치 않는 성적 접촉들이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그럴 때마다 수치스럽고 괴로웠지만 저는 쉽게 피고인에 대해 터놓을 수 없었습니다. 피고인으로부터 늘 "함구하라"고 지시받았고,

"너는 나의 그림자다", "너의 의견을 달지 말라. 너는 나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끝까지 나를 지켜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세뇌되듯이 들었습니다. 피고인은 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정치인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이중성을 말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제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고인의 직간적접인 영향을 받는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행비서를 하는 동안 점점 피폐해져 갔고, 고민하고 주저하다를 반복하다 주변에 SOS를 쳐도 어느 누구 하나 알아차려 주거나 관심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의 실체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전임 수행비서에게 용기를 내어 피해사실을 얘기했을 때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그냥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보도를 보고 고민하던 차에 피고인이 저를 불러 미투 언급을 하였는데, 그 날에도 또다시 저를 상대로 범행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이 범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겠구나, 그날 저는 절망했고 무너졌습니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없던 그때에 대선 경선 당시 피고인의 수행팀장을 했던 선배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고, '함께 해주겠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고소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피고인의 경선 캠프에 오기 전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고 상사의 평가에 의존해 계약이 연장되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치권에 오면서 꼬리표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력서나 경력이 아닌 평판조회가 앞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힘든 개인사들을 겪으면서도 일에 집중하며 견뎌냈고,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저는 '안희정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약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캠프에 자원하여 갔습니다. 저 이외의 캠프원들도 대부분 '안희정의 팬'이어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작은 희망을 품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선배에게 머리를 맞거나 껴안고 볼에 입술을 갖다 붙이는 등 여러 폭행과 성추행이 안에서 있었음에도, 그걸 보고도 어느 누구 하나 제지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치권은 원래 그렇다며, 그냥 참으라고 하였고, 그런 부당함에도 말 못 하고 조직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오로지 일밖에 없었던 제게 직장에서 뛰쳐나온다는 것은 자멸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상상도, 엄두(내지)도 못했습니다. 피고인의 범죄 행위에 쉽게 뛰쳐나오지 못하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네 번이나 당했냐'고. 제가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잊어라, 잊어라. 이젠 그러지 않겠노라' 하더니, 왜 한 번 더 폭력까지 써가며... 다음 날엔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잊어라' 하고, 또 한 번 더. 최대한의 거절 의사를 표현한 저를 결국 제압하고 성폭행하고, 그리고는 '아름다운 스위스의 풍경만 기억하고, 다 잊어라, 잊어라, 잊어라' 하고, 그때마다 모든 걸 다 없는 기억으로 없애고 잊고 살아보려 했는데, 다시 한 번 더 불러서, '혹시 너 미투할 거냐?' 압박을 가하면서 성폭행하고... 왜 그렇게 네 번이나 제게 왜 그랬냐'"고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게는 네 번이 아니라, 각각이 한 번 한 번 다 다르게 갑자기 당한 성폭행이었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비서가 아니라 시간, 장소, 내용을 불문하고 업무를 시키면 24시간 언제든 달려가야만 하는 피고인의 수행비서였습니다. 지사가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거나, 심지어 어떤 일로 부르는지 말하지 않아도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2월 25일 마지막 범행 일에도 저는 피고인의 지시에 오피스텔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정무비서였지만, 여전히 피고인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지사의 영향권 안에 있는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모든 참모진은 지사가 부르면 갑니다.

특히 저는 근접수행만 하지 않을 뿐 피고인의 개인 이메일이나 일정 및 교류 인물을 관리하는 안희정 DB(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고, 수행은 아니지만 그 일정에서 있었던 일과 사람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만드는 일이었고 지사가 직접 지시했습니다. 너는 나의 보조기억장치라고 지사가 말했습니다. 정무비서가 되었지만 일의 내용으로 보면 이전과 다름없이 공·사적 영역을 아울러 수행하고 지사의 분부를 그대로 이행하는 비서였습니다.

그날 저는 상황이 어려워 '현재 약속 중에 있다, 많이 늦을 것 같다. 말씀하신 시간 안에 가기 어려운데 꼭 가야 하는 상황인지'를 에둘러 물으며 갈 수 없는 여건임을 밝혔지만, 피고인은 계속 연락하고 재촉했습니다. 그것은 지사의 강요였고, 저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야 했습니다. 다른 비서라면 다르게 했을까요? 저는 다른 비서라도 저처럼 거기에 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피고인이 부르면 가족과 저녁을 먹다가도 달려갔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피고인 사모가 술을 마셔 운전할 사람이 필요하다 연락이 오면 대리운전을 하러 달려나갔고, 한밤중에도 제 휴대폰에 착신되어 수시로 울리는 전화에 응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날 심한 짜증과 꾸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제 일상이었습니다.

'미투 이후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가장 힘든 날은 미투를 한 3월 5일이 아닙니다.

제게 가장 괴로웠던 날은 2월 25일 지사의 마지막 범행이 있었던 날입니다. 피고인은 당시 미투를 언급하며 "네게 상처가 되는 것을 알았다, 그때 괜찮았느냐, 미안하다"며 사과하듯 처음에 말을 꺼냈지만, 결국 제게 '미투하지 말라'는 압박을 드러내며 그날 또다시 성폭행을 가하였습니다. 어지럼증과 두통, 출혈이 왔고 몸도 너무나 아팠습니다. 참혹했습니다.

그렇게 제 입을 막았다고 생각한 피고인은 그다음 주인 3월 5일 오전에 미투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태연히 하였습니다. 추악한 진짜 모습과 달리 외부에는 민주주의, 젠더, 소통을 말하며 꾸며진 이미지로 정치를 하는 피고인은 괴물처럼 보였고 무서웠습니다. 참담했습니다.

3월 5일, 저는 한 언론사를 통해 피고인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숱한 2차 피해가 있었고 고통을 겪었지만, 그날은 저를 피고인의 범죄로부터 해방시켜 준,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날이기도 합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 자신의 존재가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걸 통해서 갖고 싶은 것,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건 무조건 하는 사람입니다.

피고인은 차기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그 위세와 권력을 이용해 그동안 연약하고 유약한 사람들의 노동도 착취했고, 성도 착취했고, 영혼까지 파괴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피고인 아래 있던 직원이자 약자였고, 피고인의 힘에 대항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피고인은 누구보다 그 위계서열을 잘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온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저한테 했던 말들 "나는 어떤 여자와도 잘 수 있다", "모든 여자들은 나를 좋아한다", "나는 섹스가 좋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니?"라는 말, 그건 왕자병이 아니라 치료받지 못한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를 숨기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피고인은 말로는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방식은 굉장히 폭력적이었습니다. 여성, 인권, 젠더 감수성이 중요하고, 이 사회에 대화가 없는 불통을 척결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피고인은 폭력과 불통을 행하고 있는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매번 '아닐 거야, 아닐 거야'라며 스스로를 부정했습니다. '실수셨겠지, 아니 술에 조금 취하신 거겠지, 앞으로는 안 그러시겠지.' 그런데 피고인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부르면 직원들이 올 것이고, 자신은 언제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은 교주처럼 추앙받는 사람들이 많음을. 스스로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피고인을 상사 그 이상, 이하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피고인과 교감을 하거나 그를 이성으로 보거나 동경해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사님이었고 제가 모시는 상사였을 뿐입니다. 피해를 당할 당시에도 저는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거절을 표현했습니다.

피고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피고인을 상사로만 대해 왔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피고인도 저를 참모로, 직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범행 이후 항상 사과할 때마다 "내가 어린 너를 가져서 미안하다, 내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너를 가졌다. 내 직원에게 부끄러운 짓을 해서 미안하다. 듬직한 참모로 나는 너를 신뢰하고 의지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씩씩하게 일하자"며 상사와 부하직원으로서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성관계로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사과를 들을 때마다 범죄의 기억을 잊으려 노력했고, 스스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되뇌기도 했습니다.

목석같이 누워있던 제게 피고인이 행했던 폭행들은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이 저를 범했을 때의 그 두려움은 지금도 소스라치게 괴로우며 치욕스럽습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다시 직원으로서 그 시간과 그 장소로 돌아가게 된다면, 저는 여전히 소리 지르지 못했을 것이고, 도망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제가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피고인의 무서운 눈빛에 제압당하고, 꼼짝달싹 못 하고 얼어붙게 되고, 피고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소리치고, 두 손으로 팔로 지사를 세게 밀쳐내고 문을 어떻게든 열어서 막 뛰어나와, 복도에서 뛰면서 다른 방문을 두드려서 "지사님이 저를 성폭력 해요" 외치면서 신고해달라고 소동을 일으켰어야 할까요?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어떤 피해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사가 지금 하라고 강요하는 것, 본인이 저에게 하려는 행동을 당하지 않으면 거기를 빠져나갈 수 없고 더 큰 불행이나 폭력이 올 것 같은 공포였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정치권의 사람들은 지사와 지사 사단의 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누구는 캠프에서 일하다 다른 대선 캠프로, 청와대로, 지사의 연구소로, 국회의원실로 갑니다. 그들이 모두 저를 낙인찍어버리면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지사님은 제 고용인이었고, 정무직은 다른 도청 공무원이랑 다른 고용이었습니다. 게다가 평판조회가 가장 중요시되는 정치권에서 저는 지사님의 말 한마디로 평생 절대 일을 못 구할 수도 있고, 계속 추천받으며 재취업할 수도 있습니다. 지사님의 한마디로 다 되는 일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대했던 피고인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를 공론화하고 세상에 저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저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일상이 파괴되고, 저도 가족들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말고 어떤 선택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피고인을 막고 싶었고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 지옥 같은 소굴에, 피고인에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피고인 눈빛에 대해 후배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정무비서가 된 이후에 그 후배가 제게 "언니가 그때 말했던 지사님 눈빛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지사님이 저를 자꾸 불러요. 저를 찾아요"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정무로 가서 지사의 소굴에서 벗어난 건가?' 생각했는데, '제가 아닌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는데, 그렇게 제가 겪었던 아픔을, 거기서 나오지 못했던 족쇄를 다른 누군가에게 혹시라도 채우게 되는 것 같아서, 제가 그걸 누군가에게 채우게 두는 방관자가 될까 봐 겁이 났고 그게 제 후배가 될까 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조건 막아야만 했고, 그게 저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사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제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전까지도 고심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피고인의 범죄를 세상에 말하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지금 스스로는 그게 범죄였음을 알겠지만, 인정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분명히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숨죽이고 말 못 하는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간 숨겨져 있던 비참한 피해자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피고인의 힘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참고 숨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피고인 안희정의 성폭행 피해자들 제일 앞줄에 선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쓰러지면 다른 이들도 함께 다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피고인 안희정에게 꼭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명백한 범죄자다. 당신이 가진 권력은 그렇게 악용하라고 주는 힘이나 지위가 아니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정의롭게, 약자 편에서 행복한 세상 만들라고 내가 힘을 보탰던 거지, 당신의 성 욕구를 풀라고 내가 그 조직에 있었던 게 아니다. 당신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남자인 적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사였고, 수직관계였다. 피고인은 나를 불러 성적 도구로 삼고 쾌락을 즐긴 것이다. 당신 스스로의 감정도 쌍방의 합의 같은 관계나 감정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제라도 나와 다른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사죄하고 마땅한 벌을 꼭 받아라."

재판장님,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법부에 간절히 청합니다.

이 사건은 정의 앞에, 법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한계로 인해 이런 사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은, 피고인과 같은 또 다른 권력자들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더 큰 괴물이 될 것입니다.

피고인과 같은 괴물들은 계속해서 속속들이 나올 것이고 대한민국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 힘의 차이에 의한 범죄입니다. 처음부터 피고인과 저는 상호 동등하거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합의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였습니다. 평소 위력적인 지시, 일거수일투족 수행, 틈 없는 공적 사적 일정 수발하면서 저의 공무원으로서의 노동권은 애초에 없었으면서도 또 매번 침해당했습니다, 업무의 연장선에서 갑작스럽게 저의 성적자기결정권도 제압당했습니다.

지금 사회가 말하는 갑의 횡포 연장선상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피고인 안희정의 행위는 권력에 의한 폭행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고 계신 재판장님.

저는 이제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지금 저를 살게 해주는 유일한 힘입니다. 부디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회의 통념을 깨 주십시오. 공정한 법의 판결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7. 27.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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