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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경영 참여,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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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동자의 경영 참여,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김윤태 칼럼]<2>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부각했다. 지난 7월 22일 참여연대와 우리리서치가 조사한 '경제민주화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0.1%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현재 경제민주화의 쟁점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서두른 대기업 위주 정책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촉발했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단가를 후려치고, 슈퍼마켓과 빵가게로 동네 상권까지 위협하자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 이제 모든 경제문제의 근원이 재벌의 탐욕 때문인 것처럼 공격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한국 재벌의 탐욕은 가공할 수준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부유층은 특권적 신분이 되었고, 소수의 특권층이 대물림을 하고 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벌 2세, 3세가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기업을 물려받고 있다. 미국의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을 망치게 된다"고 말했지만, 한국에서 재벌의 세습은 우수한 유전자를 세습하는 것처럼 당연한 논리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선출되지 않은 재벌의 힘은 국가 정책을 좌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20세기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국가

지금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쟁에는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18세기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사유재산과 경영자의 권력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19세기 유럽의 노동조합운동의 경제 민주화 요구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국유화를 지지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페이비언협회를 주도한 시드니 웨브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결과는 정치조직뿐 아니라 부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 통제"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 반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다른 사회민주주의라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대신 철도, 전력, 통신 등 주요 산업만 국가소유 또는 공공소유로 바꾸었다. 사적소유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혼합경제(영국), 사회적 시장경제(독일), 기업자주관리(유고슬라비아), 임노동자 기금(스웨덴) 등 다양한 논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국가'가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독점자본의 사적 소유가 가장 집중되었지만, 가장 평등주의적 복지국가를 유지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떻게 경제자유화가 경제민주화로 변신했는가?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재벌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부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정부는 단계적인 경제 자유화 정책과 함께 재벌 그룹의 가족 지배와 경제 집중을 제한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이 때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도입한 경제 자유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재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그 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도 집권 초기마다 재벌들의 기업 확대와 족벌 경영을 약화시키기 위해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기업 공개 등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치적 수사와 달리 재벌의 경제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그러자 1990년대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등장하면서 재벌 개혁은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제기한 경제민주화 요구 역시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민단체가 재벌 개혁의 모델로 참고한 것은 1930년대 미국의 독점규제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김재익의 경제자유화 이데올로기는 시민운동에 의해 경제민주화로 둔갑했다. 188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지배했던 대규모 기업합동집단(트러스트)은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연방정부의 조세개혁을 통해 해체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부를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산업구조조정을 비롯한 뉴딜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러스트가 해체되면서 주식시장을 통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대규모 은행과 투자은행, 사모펀드가 사실상 대기업을 통제하면서 미국은 주주 권리, 이윤 중시 경영을 강조하는 주주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이러한 경제모델은 정부와 거대 은행이 함께 대기업을 통제하고 노동조합, 소비자,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유럽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매우 달랐다.

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논리가 재벌개혁을 주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재벌개혁을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는 상당수 시중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고 대우, 삼미, 해태 등 다수의 재벌그룹을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이 당시 많은 시민단체는 재벌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주요 재벌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나타나 '총수 경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소수의 주식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챙기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재벌 총수의 기업 지배를 개혁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주 가치를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은 미국 월가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여 재벌 대기업을 공격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당시 재벌의 불법 상속과 세습을 비판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순수한 동기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선한 도덕적 의지와 달리 구조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외국자본은 더 많은 주주 배당을 요구했다. 주주 가치를 실현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당연한 노력일 것이다. 이에 따라 재벌 대기업은 새로운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의 노력은 줄이는 대신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재벌개혁론은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이 되었다.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이론은 한국에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부 시민단체의 노력을 통해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경제민주화는 지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경제 민주화 논쟁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1960년대 이후 서구와 북미의 경제에서 경제 민주화의 쟁점은 작업장 민주화, 산업 민주주의의 확대, 노동자의 경영 참가 등이다. 노동자 기업, 협동조합, 종업원 주식소유 제도(ESOP) 등 다양한 노동자 소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시에 이윤 배분제와 같은 소득 배분 참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위한 공동결정제도, 노동자의 기업 이사회 참여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실현되었다. 이렇듯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다양한 정책 대안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매우 제한적이다.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금산 분리 등 주요 정책과 제도 개혁의 방향은 주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어떻게 한국의 대기업이 장기적 성장동력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지, 어떻게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고 우수한 인적자본을 강화할지,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지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재벌 총수 일가가 물러나고, 경쟁을 강화하고, 투명성이 커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민은행처럼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고, 현대모비스처럼 비정규직 채용만 늘리고, 쌍용자동차처럼 해외자본이 떠나버려도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되 찾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한했다. 재벌 대기업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새로운 참여적 발전모델은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조직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대기업도 노동조합, 소비자, 시민사회조직과 갈등적 관계가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서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을 추진하는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종업원지주제, 노동조합의 이사 선임,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통한 산업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복지국가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요구하라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불법 상속 엄벌과 같은 개별 제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유형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이다. 현재의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를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로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라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민생과 연결된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상공인과 서민이 공감하는 불공정 하도급,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사회보험 확대 등이 부각되어야 한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의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이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식 경제체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작동하는 경쟁, 효율성, 투명성의 원리가 곧 바로 사회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지지한다고 해서 사회통합의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 대신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를 주목해야 한다. 정부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사협력 체제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필수 요소이다.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해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생산성과 평등주의적 복지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복지국가를 통해 효과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실행하고,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사회적 타협을 추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노사간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기업의 주주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김윤태의 '한국의 재벌과 발전국가: 고도성장, 독재, 지배계급의 형성'(한울출판사, 2012년 출간예정)에서 인용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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