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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조 콕스, 괴물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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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조 콕스, 괴물과의 싸움 [기고] 괴물은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어느 해 겨울. 확성기로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불신지옥'이란 주제로 말입니다. 왜 공공장소에서 꼭 확성기를 이용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펴는지 불만스러웠지만, 본인 생각에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한 명이라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 싶은 안타까움에서 나온 절규일수도.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앞에 가는 미친년아. 짧은 치마 입은 미친년아. 짧은 치마 입은 것을 회개해야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외치면서 그 사람은 괴물로 변했습니다. 괴물의 직선적 표현을 들은 존재는 분노의 눈길 한 번 돌리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도 항의 한 마디 못하고 사라진 듯합니다. 확성기 괴물 옆에는 2열종대 긴 줄의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괴물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최근 어떤 기업 회장의 횡포가 화제에 오릅니다. 지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뭐? 참내. 생각하고 말고 할 거리가 있나? 누가 봐도 미친놈이지." 원초적인 감정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감정이 바로 공포입니다. 과학자들은 뇌의 변연계를 설명하며, 우리가 공포를 마주할 때는 도망칠 것인지, 싸울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얼어붙는 것으로 마비될 것인지가 즉시 결정된다고 합니다. 도망쳐서 살 때도 있고, 싸워서 이길 때도 있습니다. 복불복으로 말입니다. 그 어느 것도 성패를 예상하거나 장담할 수 없습니다. 회피하고 싶은 역겨운 상황을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그 회장을 지금부터 그 괴물로 부르겠습니다. 그 괴물에 대한 뉴스가 나올라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 괴물이 없는 안전한 공간은 어디일까 하며.

지워버리고 싶은 괴물이 있다면, 반대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조 콕스. 인권운동가 출신의 영국의 국회의원입니다. 우리나라에 한 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바로 2년 전인 2016년 6월, 조 콕스 의원은 대낮에 한 극우주의자에게 몸에 두발, 머리에 한 발의 총격, 그리고 칼에도 더 찔려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관련기사 : 영국 의원 총격 살해범이 외친 "브리튼 퍼스트"는?) 조 콕스를 죽인 극우주의자를 그 괴물이란 호칭으로 불러보겠습니다. 그 괴물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책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한 존재를 무참히 없애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사라진 빈자리에 대해서는 당연히 생각을 안 한 것이죠. 괴물은 생각을 못하는 존재입니다.

정신분석가 파울 페르하에허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반비 펴냄, 2015)에서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이 사라져서일까, 세상엔 미친 사람들도 인구 비례로 항상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악일까 등등 다 때려치우고 한 가지에 집중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환경에 달려있다고 말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이란 어구를 써서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인간, 즉 괴물에 집중합니다. 우리 모두가 신자유주의적인 행동과 감정에 물들어 있으며, 많던 적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이라고요. 그래서 괴물을 없애려면 때려잡기보다 우리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올 초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전담하는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다시 한국에 들려옵니다. '외로움이란 전염병이 소리 없이 영국을 짚어 삼키고 있다'는 한 신문사의 헤드라인과 함께 영국사회는 외로움이란 감정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인데요. 외로움이 영국 경제에 320억 파운드, 한화로 47조 원의 경제부담을 끼친다는 판단때문이죠. 전염병이란 표현만으로 영국은 그 옛날 흑사병의 공포를 다시 되살리는데 충분했을 것입니다. 메이 총리는 국제정신건강의 날 연설에서 '국민들의 육체건강과 정신건강을 동등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또 재미난 수치가 등장합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피를 피우는 거라고 말이죠. 이런 설득력 넘치는 수치가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근거가 있는 것인가 찾아보니. 여기서 조 콕스 의원이 등장합니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2년 전입니다. 영국 사회는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조 콕스 의원이 죽은 6월에 맞춰 많은 이들이 '그레이트 겟 투게더(Great Get Together)'란 축제를 3일 동안 벌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길거리 파티를 열고 같이 식사하며 소통하는 것입니다. 또 조 콕스의 남편과 친구들은 조 콕스 재단을 만들고, 계속 연구작업을 합니다. 그 결과 '조콕스외로움위원회'의 2017보고서를 인용해 영국인구 6600만 중에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900만 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트레이스 크라우치 외로움 전담장관도 '시민운동가와 기업, 그리고 동료의원들이 힘을 모은다면 외로움과 싸우는 데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전체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트레이스 크라우치 장관은 최근 다시 정책수행이 지연된다는 이유로 사임했지만, 자살예방장관이 새로 임명되는 등 영국의 감정에 대한 정책대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은 단순히 외로움을 주제로 정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국민들의 감정에 대해 정부도 국가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개인을 넘어 기업과 지역사회를 포함하여 온 사회가 전면적이고 입체적으로 함께 대처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싸움이 우리 모두의 싸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한 기자가 '또*이' 회장을 잡겠다고, 자신도 '또*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이 기회에 괴물은 꼭 잡아 넣어야 한다고, '또*이' 기자를 응원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우리의 괴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링을 만들어 두 '또*이'를 세워 관음적인 욕구만을 채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모두 링에 올라 우리의 링을 만들거나, 링을 보는 관중석을 없애야 합니다. 나의 공포와 분노를 한 기자가 잘 해결해주기를, 좋은 법이 통과되기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나와 우리의 정서적 가치를 회복하는 행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눈앞의 괴물을 향해 밑에서 쏘아올리는 화살을 응원합시다. 그리고 괴물은 혼자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만 해도 좋습니다. 불법촬영영상물의 유통이 괴물의 수천억 원대 자산을 축적하게 합니다. 직선적으로 감정을 내뿜는 괴물을 양산해내는 메커니즘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면적이고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변연계를 전전두엽을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모두 정서적 가치회복을 위한 어려운 전쟁을 구석구석 일상의 영역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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