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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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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 [기자의 눈] 1964년의 검찰과 2013년의 검찰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있다.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검찰 조직은 논리적 완결성과 함께 단 하나의 이성을 가진 거대한 '법인격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리바이어던'이어야 함을 스스로 요구하고, 또 스스로 요구받는다.

이런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과거 독재 체제에서 악용돼 왔다. 1964년 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복기해보자. 1964년 8월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고, 서울지검 공안부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서울지검 공안부의 담당 검사들은 구속 연장 만료일인 9월 5일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소를 거부했다. 몇몇 검사는 사표까지 냈다. 그러자 신직수 당시 검찰총장은 당직 검사인 정명래로 기소 검사를 바꾼다. 시쳇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검사들이 기소를 거부하니, 사건 내용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검사가 공소장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기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하에서는 이 검사든 저 검사든 상관없음을 검찰 스스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 이후엔? 고문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검찰은 재수사를 해야 했다. 그 결과 처음에 기소된 인원의 절반 이상(26명 중 14명)이 공소 취소로 풀려났고, 나머지 12명도 형량이 훨씬 가벼운 혐의로 공소장의 내용이 바뀌었다.

'검사동일체'의 정점에 앉아 있던 신직수 검찰총장은 이것에 책임을 졌나? 그렇지 않다. 그는 잘나갔다. 서슬 퍼런 유신 체제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긴급조치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장도 역임했다.

기자에게 49년 전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 건 <동아일보>의 한 기사였다. <동아일보> 온라인판에 "'브로커 검사' 해임…'막무가내 女검사' 정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것은 15일 새벽이었다. <동아일보>가 지목한 '막무가내 女검사'는 최근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31일(온라인판)에도 <절차 무시하고 무죄 구형 '막무가내 검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임 검사를 '막무가내 검사'로 몰아갔다.

언론의 '네이밍(naming)'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막무가내 여검사'로 낙인찍힌 임은정 검사에 대한 대검 감찰본부(이준호 본부장)의 징계 청구 결정이 16일 내려졌다. 정직. 무거운 징계다.

임 검사에 대한 중징계가 청구된 계기는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장 사건의 재심 공판이다. 윤길중 전 간사장은 1961년 5.16쿠데타 후 기소돼 1962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5.16쿠데타 세력의 혁신계 탄압에 휘말린 윤길중 전 간사장은 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임 검사는 이 사건의 재심 공판과 관련해, 부당하다고 느낀 상부의 지시에 맞섰다.

'막무가내' 검찰, 그렇게도 '항소'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나?

▲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미니홈피
임 검사는 지난달 28일 '윤길중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하겠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상관'인 김국일 공판2부장검사는 "당시 판결문에 나타난 당사자 진술이 고문·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수사·재판 기록도 없다"는 점을 들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구형할 것을 주문했다. 임 검사가 이를 거부하자 김 부장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을 재배당했다. 임 검사는 그것도 거부했다. "징계도 감수하겠다"며 법정의 검찰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써 붙였다.

'윗선'에서 '항소'를 전면 배제하지 않은 것을 임 검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윗선'은 공판 검사를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대검 감찰본부가 이런 임 검사에게 중징계를 청구한 것을 보면서 '인혁당 사건 재배당' 사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윗선'의 명으로 바뀐 공판 검사는 '윗선'의 입맛에 맞는 구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찰은 그간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하는 대신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는 것을 관행처럼 읊조렸다. 엄밀히 말하면 항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실제로 김지하 시인이 '오적 필화 사건' 무죄 취지 선고 유예에 대해 '왜 무죄가 아니냐'며 항소하자,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고 했던 검찰도 이에 맞서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존심' 싸움 같은 느낌도 들지만, 검찰은 긴급조치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여러 번 항소를 해 비난을 자초한 전력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선에서 승리한 것과 임 검사 사건이 맞물리는 것도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유죄를 전제하고 수사, 기소를 했는데 구형이 '무죄'면 논리적 모순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과거사 재심 사건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얘기다. 과거사 재심 사건은 기본적으로 법원이 내렸던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법원이 숙고해 재심 결정을 내렸는데도, '논리적 완결성'이나 '무결점주의'를 이행하고자 검찰이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른바 '법 감정'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수십 년간 국가 권력이 씌운 누명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의례적으로 항소하지만 이들에게 항소 기간은 피 말리는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의미가 크다. 임 검사는 무죄 구형 직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저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크게 생각했다. 비겁하게 구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임 검사의 말에는 이 같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런 임 검사가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막무가내 검사'일 뿐인가? 임은정 검사와 '윗선' 중 누가 '막무가내'인가? 이 대목에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던 검사들과 '기소 의견'을 밀어붙였다 망신당한 신직수 검찰총장 중 어느 쪽이 '막무가내'였는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에 "'막무가내' 검찰, 임 검사 '무죄 구형' 막으려 해"라는 제목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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