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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바라기와 땅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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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바라기와 땅바라기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16>
먼산바라기와 땅바라기라고 불리는 두 기린이 있었다.

먼산바라기는 매양 목을 늘이며 먼 곳을 바라보아서, 땅바라기는 늘 땅만 내려다보고 다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늘 잰걸음을 치는 땅바라기가 먼산바라기에게 다가갔다.

"우듬지에 닿을 만큼 키가 컸는데 뭐 하러 계속 키를 키우니?"

땅바라기가 키를 늘이고 있는 먼산바라기에게 물었다.

"아주 멀리 내다볼 수 있을 만큼 키가 크진 않았거든."

먼산바라기는 높은 나뭇가지 사이에 걸어둔 목을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오늘 밤 우리가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급한 일 아니니?"

땅바라기는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데 키만 키우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 볼멘소리를 했다.

"키를 더 훌쩍 키울 거야. 그래서 열매나 잎이 많은 나무를 한눈에 찾아내고 맹수들이 숨은 곳도 미리 알아낼 거야."

땅바라기의 핀잔에도 먼산바라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 곳도 좋지만 발밑을 살펴야 해."

땅바라기는 힝 콧바람 소리를 냈다. 기린 친구들이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었던 이후부터 땅바라기는 익숙한 길도 매번 다시 살폈다.

땅바라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발굽으로 땅을 톡톡 두들겨대며 걸어갔다. 땅바라기의 뒷태를 바라보던 먼산바라기의 눈이 커졌다. 땅바라기와 가까운 곳, 키 높은 수풀 너머로 몸을 낮춘 수상한 움직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악, 수풀 너머를 봐."

먼산바라기가 비명을 지르며 경고했다. 번쩍 고개를 치켜든 땅바라기가 반대편 쪽으로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맹수들도 그와 동시에 수풀 속에서 튕겨 나와 땅바라기를 바짝 뒤쫓았다. 얼마 가지 못해 땅바라기는 맹수들에게 둘러싸였다.

마침내, 먼산바라기의 목이 먼 숲을 넘어다 볼 수 있을 만큼 길어졌다. 하지만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목을 돌돌 감고 다녀야만 했다.

어느 날, 붉은 개미들이 먼산바라기의 발목을 물었다. 먼산바라기가 붉은 개미들을 털어보려고 발굽을 쿵쿵거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다시 발굽을 투 툭, 긴 목을 펴고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먼산바라기는 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뚝거리다 쿵 넘어졌다.

ⓒ한정선

우리는 종종 현실(現實)이라는 이름으로 이상(理想)을 쉽게 접어버립니다. 또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도외시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병서(兵書)인 <육도·삼략>은 "현실의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도모하는 자는 수고로우나 공(功)이 없고, 먼 것을 버리고 가까운 것을 도모하는 자는 편안하기는 하나 끝이 있다"는 말로 두 극단을 경계합니다.

사실 이상주의자는 가장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땅에 발을 딛지 않는 이상은 공상(空想)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가능한 꿈을 꿔라. 그러나 리얼리스트가 되라"고.

안철수 전 교수가 대선 이후 82일 만에 귀국해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정치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노원병이라는 지역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로 우리 앞에 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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