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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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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 <18> 행복한 매화나무
남자는 산에서 캐 온 어린 매화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맨 먼저 톱으로 윗동을 베어내 키를 낮췄다. 그 다음, 매화나무 밑동에서 위쪽으로 곧추선 가지 한 개만을 남겨두고 전정가위로 잔가지는 싹둑싹둑 잘라냈다. 그리고 작은 화분에 매화나무를 옮겨 심었다. 남자는 밑동 옆에 철심을 바짝 붙여 그 둘을 동여맨 후, 남겨둔 매화가지를 꺾이지 않을 만큼 굽혀 철심에 묶고 철사로 돌려 감았다.

서너 달쯤, 매화나무가 몽땅한 몸통에서 어린 가지들을 비죽비죽 돋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가지들을 톡톡 끊어냈다.

몇 달이 지나자, 매화가지가 죽을 힘을 다해 철사 바깥으로 삐져나와 고개를 쳐들었다. 그 가지가 반 뼘쯤 자라났을 때였다. 남자는 가지 끝을 옆으로 비틀어 철사로 감아 고정시켰다.

매화나무는 또다시 애를 써서 가지를 위쪽으로 뻗었다. 가지가 철사의 벌어진 틈새로 비집고 나가 계속 위로 향하는 탓에, 매화나무는 배배 꼬여 나선형으로 구부러져 자랐다.

남자는 화분에 꼬박꼬박 물을 주고 봄마다 분갈이를 했다. 몇 해 뒤, 매화나무는 몸을 꿈틀대며 하늘로 기어오르는 용의 형상이 되었다. 매화나무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남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더 이상 매화나무 가지를 옭아매둘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꽁꽁 감았던 철사를 풀고 철심도 뽑았다.

이른 봄, 매화나무 가지에서 선홍빛 꽃봉오리가 맺혔다. 남자가 꽃눈을 뜨기 시작한 매화나무 화분을 세상에 내놓고 선보였다.

"세상에. 신의 손인가 봐."

사람들이 나무를 다루는 남자의 솜씨에 탄복하며 매화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들의 칭찬에 매화나무는 꽃봉오리를 활짝 펼쳤다.

ⓒ한정선

어느 가진 자의 안방을 장식하고 있는 분재. 자격 미달 윤진숙 임명 강행과 결국 축소·은폐 수사로 검찰로 넘겨진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에도 저항하지 않는 다수 국민들을 보면서 안방의 분재를 생각했습니다. 주인의 끊임없는 시선과 손길에 완벽하게 길들여진 자연 말입니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우리들은 '판옵티콘(Panopticon)'으로 상징되는 '규율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 주체 즉 복종하는 주체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1980년대의 '혁명'은 1990년대 '저항'으로 대치되고 그 저항은 이제 '소수의 무기력한 저항'으로 점점 분재화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 속 도처에 저항이 있다고는 말하지만 딱히 손에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권력자는 국민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분재로 만들고 싶어 하고, 분재화된 국민들이 다수일 때 희망은 피안(彼岸)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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