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병의 처는 당시 아직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나이였다. 그녀는 어린 딸 둘러업고 아들은 걸려 매일 서대문구치소에 출근했다. 그러곤 문틈 사이로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어쩌다 남편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대법원 선고를 일주일 남겨둔 어느 날, 젊은 새댁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마음 착한 교도관의 배려로 꿈에 그리던 남편을 한 1분쯤 볼 수 있었다. 이걸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손 부여잡고 울기는커녕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제대로 맞출 수 없었던 만남이었다…새댁은 말도 못 붙이고 그저 남편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이 나쁜 이수병은 바짝 다가와서야 처자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딸을 보고는 딱 두마디. '많이 컸네. 많이 컸네.' 영문을 모르는 호송 교도관은 '어, 집에 있는 애 보고 싶어서 그래?' 하면서 빨리 가자고 독촉을 했고 남편은 웃으며 지나쳐 갔다. 1분!"
2002년 9월 16일,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고, 2005년 12월 7일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의 감춰진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법원은 사형수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남은 17명도 2008년부터 2013년에 걸쳐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것이 '또 다른 하나의 판결'이었다.
"두개의 판결"이라는 말은 '넌센스'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과거사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관심'때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살인당한 이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고의성 짙은 '심리적 살인'이 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살인'이 존재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믿는 수밖에 없다.
옥고를 치른 17명 중 16명의 가족들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들이 당한 정신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일단 재판은 진행됐고 2009년 6월 19일 관련자 16명, 가족 포함 총 77명의 원고 앞에서 법원은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미 17명 4명이 옥사,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한 후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6명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은 채 이미 세상을 등졌다. 국가가 "잘못했다"고 바로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34년.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그 34년 동안 살인을 당했거나 폭력을 당한 25명 중,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7명 뿐이다. 전창일, 강창덕, 김한덕, 김종대, 황현승, 이창복, 이성재. 젊어서 감옥에 간 이들은 이제 80대~90대 노인이 됐다. 살아서 '무죄'를 받아 다행히라고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수 있는가?
7명을 포함해 16명의 유가족 77명은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34년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배상받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 행위 책임을 인정했고, 지연 손해금의 기산일을 1975년 4월 9일로 했다. 국가가 잘못을 저질러 고통이 시작된 시점이니 합리적인 계산법이었다. 1심 재판 직후 이들 77명은 배상금의 65%인 약 400억 원 가량을 수령했다. 최종 판결이 나면 나머지 35%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2011년 1월 27일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지연손해금 가산일을 변경하는 파기 자판을 했다. 민사소송 항소심 변론 종결일, 즉 재심 무죄 판정이 난 이후(2008년~2013년)부터 배상금 이자를 계산을 해야 맞다는 내용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린 것이다. 파기 자판은 원심 판결의 일부를 깨고 대법원이 스스로 재판을 해 결론을 내리는 것인데,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와 유신헌법의 초안을 작성했던 '유신 시절'의 상징적 인물 김기춘 비서실장(오른쪽)ⓒ연합뉴스 |
4.9통일평화재단 문정현 이사장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대법원은 자판을 함으로써 피해자들이 파기환송심을 통해 위자료액을 다툴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사건과 형평성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기라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박했다. 인혁당 사건 재심 변론을 담당해온 법무법인 덕수의 양지훈 변호사는 "대법원이 '자판'을 해버리면, 그 자판에 대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판에 대한 재심 청구를 할수는 있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악의적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의 자판이 있자마자 중앙정보부를 모태로 하는 국가정보원이 신속하게 나섰다. 국정원은 대법원의 77명에게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자 16명의 유가족들 모두에게 소송을 걸었다. 국가가 지급한 돈 중 180억 원을 다시 토해 내라는 것이 소송의 골자다. 이를 두고 "국가가 살인 피해자에게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이자 고문'을 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왔지만, 국정원(남재준 원장)과 대한민국의 법률대리인 법무부(황교안 장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35년간 '고통'을 무시하고 "길게는 5년 정도만 '고통'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중정에 의해 최초 구속된 1974년부터 대법원이 '파기 자판'을 한 2011년까지, 무려 37년 만에 국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아들게 된 유가족들의 기분은 어떨까. 한 유가족은 "너무 어이없고, 두렵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고문으로 조작된 이 사건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강창덕 씨는 "경천동지할 일"이라며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국정원 앞마당에서 분신이라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16명의 유가족 77명 모두에게 건 소송 중, 첫 번째 재판 결과가 지난 4일 나왔다. 86세 강창덕 씨 소송 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강 씨 소송과 관련해 법무부와 국정원, 그리고 유가족 측에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요컨대 대법원 자판에 따른 배상액보다는 많게, 유가족이 애초에 받았던 배상액보다는 적게 금액을 조정하도록 양측에 권고한 것이다. 그러자 신형철 주심 주도의 대법원 판결을 받고 즉시 돈을 돌려받으려 했던 '대한민국 정부' 입장은 다소 난처해졌다. 정부가 14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법원의 권고 결정은 그대로 확정된다. 7일에는 구두선 씨도 비슷한 취지의 권고문을 받아들었다. 벌써부터 일부 보수언론은 정부에 이의 제기를 하라며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률 대리인은 법무부다. 법무부의 결정을 재가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형철 주심이 '배상액을 깎고 정부가 돌려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낸 자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나왔다. 소송의 주체는 정권이 바뀜에 따라 정부 구성원이 바뀌면서 후임 국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이어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 운운했다가 유가족에게 사과를 한 전력이 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인 2012년 11월 26일 그는 '유신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역사의 암흑기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어떻게 할지, 공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어가 있다.
이번 화해 권고 결정으로 미뤄보면 법원은 77명 모두에게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법무부가 법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머지 유가족들에 대한 소송에서도 자신들에게 다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경우 줄줄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유족들은 살아남아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하나의 전쟁'은 37년 전에 있었다, '또 하나의 전쟁'은 2013년에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국정원과 법무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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