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사회적경제분야와 관련해, 협동조합 아이쿱이 지난 7년간 사회적경제 파트너들과 상호거래, 역할,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6회에 걸쳐 관련 사례를 소개합니다. '협동조합 경제'를 응원합니다.(편집자)
길을 걷다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다. 왠지 무안해 다시 만나지 않기를, 그와 내가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던 적이 있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개성, 희소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같은 옷, 같은 가방은 얼마나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같은 옷, 같은 가방에서 소속감. 동지애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야구경기장에서 응원하는 팀의 팀 응원복을 같이 입고 짜릿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여기 소속감뿐만이 아닌 같은 가방을 들었다는데 반가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제리백’이다.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한 '제리백’
26살 늦은 나이에 제품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하고 꿈을 위해 나아가던 박중열 '제리백’ 대표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핀란드 유학을 떠났다. 핀란드 내에서도 처음으로 개설 된 '지속가능한 디자인학과’를 택한 박중열 대표는 '제 3세계의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다. 그의 주제논문 감독관이 우간다 국적이라 자연스럽게 우간다에 관심이 갔다. 그렇게 우간다로 봉사 활동 차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박중열 대표는 상하수도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아이들과 여성들이 수km에 달하는 거리를 제리캔이라는 물통을 이고 들고 나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10살 정도의 아이들이 10L, 그보다 큰 아이들은 20L에 달하는 물통을 양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물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은 언제든지 교통사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박중열 대표는 그 모습을 보고 '제 3세계의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감이 왔다고 한다. 그렇게 고안된 것이 '제리백'이다. 제리백은 제리캔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석유통 같은 물통을 넣어 등에 메고 다닐 수 있게 디자인된 가방이다. 이 가방은 형광반사판(리플렉터)이 부착되어 어둠속에서도 쉽게 눈에 띄어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아프리카 지역에 원조를 하고, 봉사활동을 갑니다. 현지인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죠. 하지만 교육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직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죠. 저는 그 사회에 적용하기 쉽고 특정지역에 맞는, 그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중열 대표는 2015년 우간다 현지시장에서 재봉틀 2개를 구비하고 현지 여성을 고용하여 '제리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봉제기술이 없던 현지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가방을 만드는 한편 핀란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족한 자금을 충당했다. 1년에 5-6개월 동안 우간다에서 지내면서 점차 사회적 가치를 지닌 '제리백'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 확립되었다.
한 개 팔면 한 개 기부
제리백은 1+1 기부방식으로 우간다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소비자가 국내에서 제리백 가방을 하나 사면 우간다 아이들에게 제리캔을 담을 수 있는 제리백 하나가 기부되는 방식이다. 이 기부방식으로 지금까지 6,500개의 제리백이 우간다 캄팔라 지역 현지 아이들에게 제공되었다.
"우간다 캄팔라 지역 아이들은 한 번도 자기 책가방조차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제리캔을 담아 등에 메고 다닐 수 있게 고안된 가방이지만 아이들은 책가방으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책가방이든 물통 가방이든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면 고마운 일이죠."
'제리백'은 현재 한국에서는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가방을, 우간다에서는 기부되는 가방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방이 판매되는 만큼 우간다 아이들에게 가방이 기부되고, 현지 여성 봉제공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처음 2명으로 시작했던 우간다 공장에는 매니저를 포함하여 현재 13명의 여성 봉제공들이 근무하고 있다. 아기를 데리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우간다 여성 봉제공들, 박중열 대표는 그들이 아이와 함께 좀 더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조성해 주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응원하고 함께하는 아이쿱생협 조합원
윤리적 소비를 중요 가치로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자연드림 온오프라인몰을 운영하는 아이쿱생협은 2012년부터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경제 파트너들의 판로제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2018년, 22곳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아이쿱생협 단일 매출이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50억 원에 달했다.
제리백은 2016년 아이쿱생협 사회적경제 입점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처음으로 아이쿱생협 소비자조합원을 만났다. 입점 첫 해인 2017년 '제리백' 전체 매출액 중 20%는 아이쿱생협에서 소비되었다.
이처럼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에게 제리백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제리백이 지닌 사회적 가치는 물론 디자인, 가격, 품질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환경, 인권, 일자리, 공생 등 사회적 가치를 지닌 제품 소비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제품의 디자인은 물론 원단,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도 관심 있어 합니다. 원단이 천연제품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고, 제품제조 과정에서 어떤 불공정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제리백이 조합원들에게 빠른 공감을 얻었다고 봐요.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가격보다는 가치를 더 우위에 두고 선택하시죠."
박중열 대표는 '제리백'이 아이쿱생협 소비자조합원의 까다로운 소비성향을 만족시켰다면 향후 생협시장을 넘어 외부 유통업계에서도 품질 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이쿱생협 입점 3년차, 이제 제리백은 아이쿱생협을 넘어 다른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도 관심을 두고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두레생협이다.
"사회적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적인 성장입니다. 아이쿱생협 28만 명의 조합원들은 제리백에 있어 가장 든든한 후원자들이죠. 사실 사회적경제 유통 및 판매지원의 많은 경우가 한시적인 이벤트 판매가 대부분입니다.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를 이룰 수 있도록 아이쿱생협과 더불어 사회적경제 기업들과 상호간의 파트너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공감의 힘으로 품질, 디자인으로 승부
앞으로 '제리백' 박중열 대표의 목표는 뭘까? '제리백'은 2019년 5월 중으로 서울 성수동에 제리백 플래그샵을 오픈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온라인으로만 만났던 제리백을 오프라인에서 체험하는 등 교육, 제품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그는 또한 제리백이 대한민국, 아프리카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포부도 밝혔다. 작년 미국 LA법인을 설립하며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그리고 소셜브랜드로 가장 중요한 소비자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간다 현지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부터 정기적으로 우간다 여행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기부라고 하면 호혜적인 입장에서 누군가에서 뭔가를 베푼다고 생각하시죠. 설사 상품이 있더라도 그 품질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제리백은 호혜적인 관계는 지양하고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트렌디한 제품을 생산해 품질과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길을 걷다 제리백을 메고 가는 누군가, 그와 내가 통하는 이심전심에 기꺼이 다가가 악수라도 나누고 싶다.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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